[백청일의 독서일기] (48) 호밀밭의 파수꾼, J.D. 샐린저
필자는 그 동안 책을 읽고 조금씩 메모해 온 내용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토론'하고자 글을 쓰게 되었다. 내용은 책 소개와 정리, 간단한 소감, 또는 깊이 있는 분석과 평가 등 책에 따라 달라진다. 읽기 편한 대화체 형식으로 서술하고 1차 목표는 100권이다. 100권을 쓸 수 있게 만드는 힘은 독자들과의 건강한 토론이라 믿고 있다. <편집자주>
파리 올림픽은 끝났지만 안세영 논란으로 한동안 시끄러웠습니다. 안세영은 2024년 8월 5일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단식 금메달 시상식 후 가진 기자회견장에서 폭탄 발언을 했습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다친 무릎 부상이 심각했음에도 안이하게 대처한 대표팀에 실망했다며 대표팀이랑 계속 가기 힘들다고.
안세영의 배드민턴 대표팀에 대한 작심 발언은 여러 이슈들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한쪽에서는 몇년 동안 구슬땀을 흘리며 꿈의 무대에 올라 메달을 딴 다른 배드민턴 선수들이 뭐가 되느냐, 더 나아가 다른 종목과 선수들의 노력과 성과까지도 묻혀버렸다는 비판이 거셌습니다.
하지만 어린 선수가 수년 동안 배드민턴 대표팀 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원망이 쌓였으면 온전하지 못한 몸으로 기어코 금메달을 따서 그 자리에서 협회의 문제점을 폭로하겠다고 의지를 다졌겠느냐는 우호적인 여론이 높았습니다.
안세영은 이후 가진 인터뷰에서 2018년 처음 국가대표로 선발된 후부터 2024년 파리 올림픽 금메달까지의 원동력이 “분노”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연합뉴스 2024.8.6.). SNS를 통해 “선수들에 대한 관리”와 “권력보단 소통”에 대해서, 자신이 한 말에 대해 “한번은 고민해 주시고 해결해 주시는 어른이 계시기를 빌어봅니다”며 이해를 구하기도 하였습니다(중앙일보, 2024.8.21.).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 이용대 선수의 억울한 징계 사건과 정경은 선수의 국가대표 좌절 사건이 다시 거론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용대 선수는 세계 반도핑기구 검사관들이 한국에 세 차례 방문하여 검사를 시도했음에도 협회 측의 안이한 대처로 검사에 불응한 선수가 되어 1년 징계를 받은 바 있습니다. 정경은 선수는, 리그전 성적 50%, 심사위원 평가 50% 평가로 자신보다 성적이 낮은 선수가 대표팀에 선발되었다며, 심사위원 3명이 본인 팀 선수들을 자기 손으로 직접 심사하는 납득할 수 없는 선발 시스템을 투명하게 공개해 줄 것을 호소하기도 하였습니다(헤럴드경제, 2024.8.6.).
안세영 선수의 발언 이후 배드민턴 협회가 자체조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문체부가 나서 협회에 제동을 걸었고, 장미란 차관이 나서 안세영 선수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현재는 문체부에서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문체부는 9월 내로 진상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로 하였습니다.
안세영 선수의 고향인 전남 나주시는 8월 31일 성대한 환영식 축하와 함께 안세영 체육관 건립, 안세영 거리 조성, 유소년 배드민턴 교실 추진을 공식화 했습니다(뉴스1, 2024. 8.31). 안세영 선수는 SNS를 통한 입장문에서 “저도 아직 부족한 것 투성이고 모자란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기에 두렵지만 나서게 됐습니다”고 밝혔습니다(조선일보, 2024.8.16.).
우리 사회의 정치, 사회, 경제적 현실을 보면 안세영의 분노와 외침이 비단 스포츠계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는 건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거 같습니다. 오래된 문제들과 터져 나오는 문제들에 대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회의 어른’이라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비리들과 거짓말과 변명과 협박, 거짓선전과 선동, 가짜뉴스, 분노와 원한을 동원하는 정치에 광적으로 열광하는 지지까지, 그야말로 천태만상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
오늘은 이런 맥락에서 출간 당시부터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세기의 신드롬을 만들었던, 그리고 2024년에도 화제가 되고 있는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어른들과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분노, 다양한 문제 제기를 거칠게 풀어내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그 겉모습보다 ‘그 안에 담긴 의미’에 주목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먼저 간단한 작품 소개와 배경, 그리고 주인공 콜필드의 성격을 살펴본 후, 그가 왜 박물관에 가고 싶어했는지, 여동생 푀비에게서 어떤 희망을 발견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작품 소개와 배경
‘호밀밭의 파수꾼’은 1951년 미국에서 출간 이후 공격적 언어 사용, 알콜 남용, 매춘, 혼전 성관계 등으로 격렬한 찬반 논쟁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콜필드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위선적인 기존 사회에 저항하고 본연의 순수한 가치를 찾으려는 청소년들의 성장통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케네디 대통령을 저격했던 암살범 장소에서 이 책이 나왔다고 하고, 존 레논 암살범은 체포 직후 모든 사람이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해서 ‘암살자의 책’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호밀밭의 파수꾼, 위키백과/나무위키).
미국 도서관 최다 대출 베스트셀러, 타임지 선정 100대 현대 영문소설, 전 세계 누적 판매 7000만 부 돌파, 한국에서 20여년 동안 매월 100권 이상 꾸준히 팔린 ‘최장 스테디셀러 1위’ 등의 수식어들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따라다니고 있습니다(sports W, 2024.7.16.). 미국에서는 해마다 30만 권이 팔리고 있을 정도로 현대 미국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이기도 하고,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로도 꼽히고 있습니다.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16살로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펜시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지독한 골초인데 결핵을 앓고 있습니다. 선생님, 친구들과도 그리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네 과목이나 낙제를 했고 학업에 전념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날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콜필드는 이전에 다녔던 후튼고, 엘크톤 힐즈고등학교에서도 적응을 잘 하지 못해 펜시 고등학교로 온 처지였습니다. 크리스마스 휴가가 끝나도 학교로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는 학교의 통보에 콜필드는 아예 미리부터 집이 있는 뉴욕으로 돌아갈 작정으로 학교 기숙사를 나와 버립니다.
작품은 콜필드가 학교에서 나와 집에 도착하기까지의 며칠 간의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현재는 병원에서 요양을 하면서 독자들에게 “지난 크리스마스 무렵, 녹초가 되어 여기까지 내려와 요양하기 직전에 일어났던 미친 짓거리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는 회고형식의 소설입니다.
콜필드의 성격과 특성
흔히 청소년기를 가리켜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합니다. 기존의 것들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져가는 시기이기도 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의문과 문제제기를 합니다. 주인공 콜필드도 마찬가지인데 가슴 속에 ‘화’가 가득 차 있습니다. 머리 속에서는 끊임없이 문제 제기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스스로 결론을 내기를 반복합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 생활에도 쉽게 적응을 하지 못해, 친구들, 선생님들과도 사이가 좋지 못합니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학교 선생님들을 신뢰하지 않는데, 선생님들을 “사기꾼”으로 묘사하면서 이들이 있는 학교를 “증오”합니다.
“하즈라는 교장은 내가 머리털 나고서 처음 보는 희대의 사기꾼이었다구, 저 늙은 서머보다 10배는 더 엉터리였지. 그는 일요일에 자가용을 타고 학교를 찾아온 학부모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하고 돌아다녔어. 아주 매력적이고 친절한 태도로 말이야. 그런데 별 볼 일 없는 학부모다 싶으면 태도가 싹 달라지는 거야. …. 어떤 학생 엄마가 뚱뚱보라든가 시골티가 물씬 풍긴다든가, 아니면 아버지가 유행이 다 지난 어깨 넓은 옷 따위를 입고, 촌티 나는 흑백 콤비 구두라도 신고 있으면 말이야. 하즈란 놈, 가볍게 손을 잡고 억지 웃음을 짓다가 그대로 슬쩍 지나쳐 버리지. 그러고는 다른 부모한테 가서는 한 반 시간 정도는 지껄인다구. 난 그 따위 짓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 그게 날 미치게 만들었다니까. 구역질나서 정말 돌아 버리겠더라구. 나는 그 빌어먹을 엘크톤 힐즈를 증오해.”
콜필드의 모든 걸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가 말하는 대로 따라가 보면, 우리는 콜필드가 사기꾼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가리켜 보통 ‘속물근성’에 젖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즈 교장 선생님은 교육의 가치보다 돈과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데, 문제는 그걸 거리낌없이 드러낸다는 겁니다. 고등학생인 콜필드가 알아차릴 정도로. 그런 삶의 방식이 익숙해져 있기에 자신이 얼마나 외모에 따라 부자와 빈자를 차별하면서 지내는지 무감각해져 버린 것도 모릅니다. 콜필드가 ‘위선자’라고 욕을 하는 게 이해가 되지요.
이와 같은 모습은 다른 어른들에게서도 발견됩니다. 콜필드가 학교를 떠나 호텔에 숙박하면서 저녁 시간에 지하에 있는 나이트클럽에 가게 됩니다. 청소년임을 알아 보는 어른들에게 어른이라고 속여가면서 세 명의 여성이 있는 테이블에 합석합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의 여성인 마티와 춤을 추다 갑자기 당대의 유명한 영화배우 게리 쿠퍼를 보았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 뒤에 아주 웃기는 일이 벌어진 거야. 테이블로 돌아오자 마티가 다른 두 사람에게 방금 게리 쿠퍼가 나가더라고 말한 거야. 내 원 기가 막혀서 그걸 들었을 때의 래번과 버니스가 벌인 법석은…자살이라도 할 듯한 모습이더라니까. 그 여자들은 아주 흥분해서 마티에게 게리 쿠퍼를 보았냐고 물었어. 그러자 마티는 그저 힐끔 보았을 뿐이라고 대답하는게 아니겠어. 난 정말 죽는 줄 알았어.”
콜필드가 비판하고자 했던 건 어른들의 ‘허영심’이겠지요. 연예인에 열광하는 거야 오늘날에도 비슷할 텐데 콜필드의 문제의식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거지요. 흔히 “광적으로 열광한다”고 말하는. 문제는 이런 광증이 얼마나 심했으면, 이 장소에 있었는데 보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자살이라도 할 듯한 모습”을 보이는지, 그리고 거짓말을 한 마티 또한 보았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태연하게 “힐끔 보았을 뿐”이라고 말하는지. 어쩌면 웃기지도 않는, 희극 한 편을 보는 듯합니다.
콜필드의 문제의식은 사회의 ‘추모 문화’로 이어집니다. 남동생 앨리는 빨강머리인데 화를 잘 내지도 않고 영특해서 콜필드가 매우 아꼈습니다. 그런데 앨리가 11살 때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앨리가 죽은 날 콜필드가 얼마나 이성을 잃었는지, 울분을 터트리며 자기 집 차고 유리창을 주먹으로 깨고 다녔는데, 자신의 주먹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 상처로 주먹을 잘 쥐지 못합니다. 비만 오면 주먹이 쑤시니 비를 좋아할 수도 없었겠지요.
가족들은 앨리를 추모하러 앨리의 무덤을 방문하곤 합니다. 콜필드도 몇 번 함께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동행하지 않습니다. 아끼고 사랑하던 남동생 앨리였는데, 왜 그럴까요.
“날씨가 좋으면 우리 부모는 종종 앨리의 무덤에 찾아가 꽃다발을 놓고 오곤 했어. 나도 몇 번 따라가다가 집어치워 버렸지. 그런 돼먹지 않은 묘지 속에 있을 그 애가 보기가 싫었다구. 죽은 시체와 비석들에 둘러싸여서 말이야. 햇살이 비칠 때는 그래도 좀 낫지만 우리가 갔을 때 두 번-두 번이나-비가 왔거든. 그건 끔찍했어. 그건 녀석의 비석에도, 녀석의 배를 덮고 있는 잔디 위에도 내렸지. 온 사방에 비가 내렸으니까. 묘지에 참배하러 왔던 사람들은 모두들 황급히 자기 차로 뛰어가더군. 그게 날 미치게 만들더라구. 그치들은 차에 앉아 라디오를 들어가며 근사한 저녁을 먹으러 어딘가로 가겠지-앨리만 빼고 말이야. 그건 정말 참을 수 없었어. 물론 묘지에 묻힌 것은 그의 육체이고 영혼은 하늘나라에 있다는 헛소리들은 나도 다 알지만, 그래도 못 참겠는걸. 난 단지 앨리가 거기 있는 걸 원치 않는 거야. 넌 그 애를 몰라. 만약 알았더라면 내 심정을 이해할 거야. 해가 나올 때는 그런대로 괜찮은데 해는 제가 원할 때만 나온단 말이야.”
앨리는 여전히 자신이 사랑하고 아끼는 동생인데, 죽은 것도 알고, 그래서 무덤에 묻힌 것도 아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추모하러 왔으면 다른 그 어떤 것보다 죽은 앨리를 추모하는 일에 가장 열성을 쏟아야 하는데, 그깟 비가 온다고, 비가 오게 되면 무덤 속 사람들이 더 춥고 힘들 텐데, 그런데, 그런 죽은 사람들 곁을, 어찌 그리 쉽게 떠나는지, 그런 모습들이 콜필드 자신을 “미치게” 만듭니다. 그래서 비가 싫습니다. 앨리를 떠올리게 하니까.
어쩌면 이렇게 순수한 학생이 있을까, 할 수도 있고, 아이고, 애가 아직 덜 컸네, 아직도 어리구만, 할 수도 있습니다. “살아간다는 것”, “인생”,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하는 말의 의미에 대해, 콜필드는 아예 이런 말 자체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지요.
우리는 앨리의 죽음을 받아들이면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무덤에 있는 애가 내 동생 앨리라는 걸 알면서도 앨리는 여전히 내 가슴 속에 살아 있다고 믿고 있는, 공존할 수 없는 모순과 역설적 상황이 콜필드를 휘어 감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콜필드만 그럴까요? 우리 모두 경험했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경험하게 되겠지요.
박물관, 순수
뉴욕에 도착한 콜필드는 집으로 가기 전 어린 시절 토요일마다 선생님과, 친구들과 박물관에 갔던 걸 떠올리고 박물관으로 향합니다. 콜필드가 박물관을 좋아한 건 “모든 것들이 언제나 같은 장소에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10만 번을 다시 가 본다 해도” 에스키모, 인디언 여자, 모든 것들이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오직 자기 자신뿐인데, 그런데 그것도 “자신이 많이 늙었다든가” 하는 그런 건 아닙니다. 그보다 옷이 달라져 있다든가, 부부싸움 소리를 들었다든가, 하는 건데, 그걸 딱 꼬집어서 무어라고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콜필드를 휘감고 있는 걸 박물관을 생각하는 콜필드에게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박물관에 도착했는데, 푀비를 떠올리며, 푀비가 없다는 생각에 갑자기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 역설적 장면에서도 드러납니다.
“난 하염없이 걸으며 내가 옛날에 그런 것처럼 푀비도 토요일이면 그 박물관에 가는구나 하고 생각했지. 내가 옛날에 보던 걸 그 애는 어떻게 보고 있을지, 그리고 보러 갈 때마다 그 애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생각해 보았어. …. 어떤 물건들은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하는 법이지. 그런 것들은 그냥 큰 유리 상자에 넣어 그대로 놔둬야만 하는 거야. …. / 근데 웃기는 일이야. 박물관에 당도했는데 갑자기 100만 달러를 준대도 거기에 들어가고 싶지가 않은 거야. 단지 마음이 끌리지 않았어. …. 뭔가를 기대하며 그 멀고 먼 공원길을 걸어왔는데 말이야. 만약 푀비가 거기 있었다면 들어갔겠지만 그 애는 거기 없었거든.”
콜필드가 박물관을 좋아하는 이유는 모든 물건이,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방문하는 나의 모습과는 상관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방문하는 나의 모습 또한 달라졌지만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겉모습은 달라졌겠지만, 박물관에 존재하는 “있는 모습 그대로의 그 모든 것들”처럼 내 “안의 모습” 또한 달라지지 않았다는 거지요.
콜필드의 내적 갈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화해도 변화하지 않는, 변화할 수 없는 가치가 있는 거처럼, 자신 안에도 변화하지 않는 그 무엇인가가 있는데, 그것을 지키고 싶어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세상의 변화하지 않는 가치를 대할 때 자기 자신 또한 그에 맞는 자세, 의지, 마음, 생각 등을 가져야 한다는 거. 그건 결코 변해서는 안 된다는 거.
변화할 수 없는 가치.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그걸 ‘순수’라고도 하고, ‘초심’이라고도 합니다. 콜필드가 좀더 성장하면 그걸 ‘진리’, ‘사랑’, ‘인’, ‘자비’ 등으로 확장시키겠지요.
박물관은 그런 존재를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곳인데, 그런데 그곳에 푀비가 없습니다. 콜필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박물관에 존재하는 “있는 모습 그대로”보다 더한 거라는 걸 암시하고 있습니다.
기꺼이 비를 맞이하는 파수꾼, 콜필드
청소년기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꿈과 희망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고민하고 고민해도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모르겠고, 다양한 진로를 경험해 보고 싶고, 꿈이 자주 바뀌기도 하고, 어느 날 갑자기 청명한 하늘에 마른 날벼락이 내리듯 사랑이 찾아와서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내 안의 어떤 그 무엇인가가 황량한 겨울 논에 눈에 보일 듯 말 듯 보리싹이 올라오는 거처럼 싹이 올라오는 걸 느끼기도 합니다.
콜필드도 그런 경험을 합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자신보다 앞서 걷고 있던 어느 가족. 아빠, 엄마로 보이는 사람들이 앞에서 걷고 있고 뒤에는 조그만 아이가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걷고 있습니다. 그런데 맙소사, 그 아이가, 인도와 차도 경계석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즐거워하며 뒤따라 걷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 순간, 흘러오는 아이의 노랫소리가 콜필드의 귓가를 때리면서 가슴 한쪽이 울립니다.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를 잡아준다면.”
끝이 보이지 않게 드넓게 펼쳐진 호밀밭, 그 사이로 아이들이 뛰어 놓고 있는데, 사방이 낭떠러지입니다. 콜필드는 그곳에서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는 걸 지켜보는데, 다만, 아이들이 낭떠러지 쪽으로 가게 되면 잡아주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느낍니다.
집에 도착해서 드디어 푀비를 만납니다. 푀비는 콜필드가 잘못 들었다며 ‘호밀밭의 파수꾼’ 노래 가사를 정정해 주기도 하고, 콜필드가 피운 담배 냄새를 의심하는 엄마에게, 자신이 한번 경험해 보았다며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가출을 결심한 콜필드를 따가라겠다며 생떼를 부리다 혼내는 오빠에게 삐지기도 하지요.
작품의 후반부는 콜필드와 푀비의 주고받는 대화부터 시작해서 놀이동산까지의 과정이 가슴 두근거리게 하면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게 합니다. 박물관에까지 갔던 콜필드가 단지 푀비가 없다는 이유로 돌아선 이유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
작품의 결말 부분은 콜필드가 지금까지 어렴풋이 한 가닥 방향성은 잡았는데 여전히 흐릿하게만 느끼고 있던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명확하게 깨닫는 장면입니다. 손에 꼽을 명장면이기도 한데, 콜필드의 깨달음이 자신을 괴롭히던 ‘비’를 극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러한 비가 ‘이전의 자신’과는 다른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주고 있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기독교의 세례식을 상징하는 거로도 볼 수 있습니다.
“제기랄, 비가 또 억수같이 퍼붓더군. 정말 양동이로 퍼붓는 것 같았지. 애들을 기다리던 부모들은 모두 조금이라도 젖지 않으려고 회전목마 지붕 밑으로 뛰어들어 갔지만 난 그냥 벤치에 앉아 있었어. 난 그대로 젖고 말았는데 특히 목 부분과 바지는 더했지. 내 사냥 모자는 상당히 도움이 되었지만 어쨌든 난 온통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어. 그래도 신경 쓰지 않았어. 푀비가 목마를 타고 돌고 또 도는 걸 바라보며 갑자기 너무도 행복해졌지. 사실 너무도 행복해서 큰 소리로 외치고 싶더라니까.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어. 그냥 그 애가 푸른색 코트를 입고 도는 모습이 끝내주게 보기 좋았던 것뿐이야. 제기랄, 너도 꼭 봤어야 했는데.”
안세영 선수의 분노의 외침이 울림이 있는 건, 자신과 가족과 자기 집단/세력/정당의 이익을 위해 지위와 돈과 힘을 이용하고, 온갖 비리가 드러났음에도, 철저하게 부정하고 떠넘기면서 이를 밝히려는 사람/집단을 오히려 독재로 규정하면서 사회의 온갖 문제들을 떠넘기는 원한과 분노의 정치가 일상이 되고 있는 시대에, 그럼에도 이건 아니라는 문제의식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콜필드의 문제제기가 사라지지 않을 거처럼, 우리 사회 안의 그런 문제제기 또한 지속되기를 바라봅니다.
백청일(논술학원장)
■ 참고문헌
호밀밭의 파수꾼, 재롬 데이비드 샐린저, 하서출판사(1999).
호밀밭의 파수꾼, 위키백과.
호밀밭의 파수꾼, 나무위키.
고향 나주서 기쁨 가득 안세영 “저 다운 배드민턴 보여드릴 것”, 뉴스1, 2024.8.31.
안세영 “배드민턴, 양궁처럼 체계적이었으면…분노가 내 원동력”, 연합뉴스 2024.8.6.
안세영 폭로로 본 K능력주의…개인, 조직의 상생 방법 찾아야, 중앙일보 2024.8.21.
이용대 억울한 징계, 정경은 국대 좌절…안세영 폭로, 이유 있었다, 헤럴드경제, 2024.8.6.
입장문 올린 안세영 “불합리한 관습 바꾸자는 것…협회, 외면 말길”, 조선일보, 2024.8.16.
‘호밀밭의 파수꾼’ 탄생 비화…‘호밀밭의 반항아’ 8월 21일 재개봉, sports W, 2024.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