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곰순의 귀촌일기] (94)곰돌곰순이네 추석 풍경
곰돌곰순은 한재골로 바람을 쐬러 가다 대치 마을에 매료되었다. 어머님이 다니실 성당이랑 농협, 우체국, 파출소, 마트 등을 발견하고는 2018년 여름 이사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마당에 작물도 키우고 동네 5일장(3, 8일)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막걸리에 국수 한 그릇으로 웃음꽃을 피우면서 살고 있다. 지나 보내기 아까운 것들을 조금씩 메모하고 사진 찍으며 서로 이야기하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 연재를 하게 되었다. 우리쌀 100% 담양 막걸리, 비교 불가 대치국수가 생각나시면 대치장으로 놀러 오세요 ~ 편집자주.
“자기야, 이제 출발해야지, 벌써 10시가 넘었어.”
“그러니까. 가면서 회도 사야지, 도착해서 수육도 해야지,…”
금방 끝날 거 같던 출발 준비가 시간이 더 걸립니다. 오전 10시 출발하면서 찾으러 가기로 했던, 대치장 떡방앗간 송편은 찾아온 지 벌써 두 시간이 지나갑니다.
“이제 출발해야지, 벌써 12시가 넘었네.”
곰돌곰순이네 가족은 전국에 흩어져 살기에 1년에 네 번 만납니다. 그런데 작년 가을 추석부터 중부지방 모처에서 보기로 결정했답니다. 장소와 날짜 등은 곰돌곰순이가 알아보기로.
숙소 잡기가 가장 어려운 일인데, 이게 끝나면 이미 가족 행사 준비는 절반 이상 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중부지방이어도 서해안쪽이나 강원도쪽보다는 큰누님 사시는 옥천 주변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여름 어머님 생신 때 해마다 참석했던 큰누님 가족을 못 보아서 모인 가족들이 많이 서운해 한 터라.
여름 어머님 생신 이후부터 곧바로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생신 모임에서 리조트나 호텔은 아무래도 조심스럽다 보니 우리 가족만의 오붓한 시간을 갖기가 어렵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10인 내외의 방을 찾기도 어렵고. 그래서 서둘렀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국공립 휴양림은 매월 말일 12시가 되면, ‘땡~’, 하고 홈페이지 예약 창이 열리는데, 순식간에 동이 납니다. 마치 명절 열차표 예매하는 거 마냥. 민간 휴양림도 추석 두 달 전부터 예약이 거의 차 있습니다.
그래서 펜션을 알아보게 되었답니다. 곰순이 여행사와 현지 주인과 직접 상담하는 등 며칠 동안 나름 수고와 실력을 발휘한 끝에 충북 옥천 금강 변에 있는 ○○펜션을 예약할 수 있었습니다.
한숨 돌리고 나니, 벌써 9월. 식단을 준비합니다. 15일 오후에 도착하니, 저녁식사, 식사 후 회식, 16일 아침식사, 점심식사, 모두 네 끼. 헤어지는 이틀째 점심은 근처 맛집을 예약하니, 준비할 건 세 끼. 인터넷으로 주문할 것, 담양에서 준비할 것, 회와 막걸리는 현지 조달, 수육은 도착해서 하고.
그런데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맞이한 15일 오전부터 올라갈 준비가 끝이 없습니다. 인원이 초과 되니 이불은 아주 얇은 걸로 몇 개, 베개는 대용으로 수건을 많이. 올라가는 길에 여기저기 인사드리자고 했던 게 늦어질 거 같아 따로 인사드리다 보니, 시간은 더 늦어지고, 시계를 보니 1시가 넘었습니다. 가다 휴게소에 들러 점심을 해결하기로 합니다.
드디어 출발. 연휴가 길어서인지, 오랜만에 온 가족을 만난다는 기대 때문인지, 사진으로만 본 펜션은 어떨지, 근처 풍경과 바람 쐬면서 쉴 곳은 어떨지 하는 마음으로 많이 설렙니다.
금강 바라보며 가족의 우애를 다지다
휴게소에 들러 식사를 하고 출발하려니 이미 예상 도착 시간을 훌쩍 넘겨 버려 가장 먼저 도착한 넷째형님께 장보기를 부탁했습니다. 한참 후 넷째형님이 전해 주신 소식. 펜션이 옥천과 가까워 조카와 함께 읍내 마트를 들렀는데, 주차장에 차가 들어갈 수가 없다고. 조카는 차를 대지 못하고, 주변을 도는 걸로 하고, 형님이 걸어서 마트를 들어갔더니, 사람이 이동할 수가 없을 지경이라고. 결정적으로 회가 없다고.
곰돌곰순이 이야기를 나눈 끝에 대전 부근을 지나게 되면 톨게이트를 나가 대전시로 들어가서 대형마트를 찾아 우리가 장보고 가자고. 다행스럽게 톨게이트 멀지 않은 곳에 마트를 찾았는데, 여기도 주차장에 차를 대기가 어렵습니다. 시간이 걸려도 풍성한 저녁 식사를 위해 회와 탕감, 현지 막걸리 등을 사서 펜션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해 보니, 온 가족이 이미 다 도착해 있습니다. 반가운 인사들을 하고, 짐을 풀면서 음식을 정리하는데 음식과 샤인머스켓이 풍년이었다는. 넷째 형님은 회 대신 꽃게탕을 준비했고, 근처 식당에 수육을 부탁해 놓았다고. 곰돌곰순은 샤인머스켓 농장을 하는 동네 형님께 몇 박스를 주문해서 가지고 갔는데, 큰형님댁도 온 가족이 맛보자며 큰 박스를 가지고 오셨다는.
창밖으로 흐르는 금강을 보면서 음식 이야기와 얽힌 에피소드와 사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식사 자리가 자연스럽게 저녁 회식 자리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어두운 바깥 풍경이지만 가로등 불빛을 품에 안고 흐르는 금강의 모습이 멋스러웠습니다.
늦어지기 전에 가족회의도. 가족 통장에서 벌초 지원, 어머님 용돈 인상, 모임 때 가족 회비 정례화, 네 번의 가족 모임 회비의 차별화 등 미리 준비했던 가족 회의 안건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모두가 박수로 결정하고, 자리가 끝날 때까지 막힘이 없었습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산책과 식사, 이어지는 커피 타임. 막내 동서가 정성스레 내려준 드립 커피 이야기와 밤사이 생각해 보니 보충해야 할 가족회의 안건들에 대한 이야기에 또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갑자기 찾아온 손님들에 가족들이 모두 놀랐답니다.
대전에 살고 있는 큰누님 둘째딸과 조카사위가 외할머님 가족분들이 이곳에 오셨으니 찾아뵌다고. 아침 6시부터 집을 나서 대전 성심당을 찾았는데 한 시간 이상 줄 서고, 계산할 때도 또 기다리고. 그래서 아침도 못 먹은 체로 바로 왔다고. 일 때문에 바로 가야한다면서도 조카사위의 차(녹차, 홍차, 보이차 등)에 대한 중국 견문록을 들으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또 훌쩍 지나갔겠지요.
정지용 생가를 찾아서
점심 먹기 전 주변을 드라이브하면서 호수 근처 2층 팔각정에 오르니 바람이 아주 시원했습니다. 역시, 윗공기는 다르구나. 사방이 탁 트인 2층 팔각정에서 마른 호수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또 가족 회의에서 미진한 부분들이 나오더라는. 그래서 다시 논의해서 정비한 후 또 박수로 결정했다는.
회의가 많은 조직은 문제가 많다던가. 그런데 어째 미진한 부분들을 채워갈수록 모두가 아주 깔끔하다며 더 좋아했다는 후문이 들려옵니다.
점심은 옥천 구읍에 위치한 실가리를 넣어 맵지 않게 만든 코다리 요리식당. 소문난 맛집. 모두 별미였다고. 식사 후에는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정지용 생가를 찾았습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
가면서 보니 관광지 조성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 생가에 도착하니 넷째형님이 30여 년 전에 이곳에 답사를 왔었는데, 그때는 주변이 논이었고, 개천도 진짜 실개천이었다고. 생가 모습도 지금과 달랐다며 그때의 풍경을 자세히 묘사해주셨습니다. 듣고 있던 큰형님도 20여 년 전에 왔을 때도 지금과는 달랐다며 또 부연 설명해 주셨습니다.
듣다 보니 현재의 생가와 주변 풍경이 얼마나 변했는지 조금은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원형 그대로 보존했으면 하는 마음도 들고, 밀려오는 관광객들에 대한 편의를 도모해야 하기도 하고, 근처에 조성된 상권의 이익들도 고려해야 하고, 이 모두를 아울러야 하는 지자체의 정책도 고려해야 하니, 지금의 변한 모습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답니다.
그럼에도 과거의 생가와 현재의 생가가 이렇게 변했다니, 원형이란 무엇일까, 그 안에 담긴 정수, 아우라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계속 일었겠지요. 어쩌면 모두가 생각하게 되는, ‘관리’와 ‘볼거리’와 ‘이름값’에 맞게 생가를 정비하는 게 보존일까, 하는 생각일 수도 있겠습니다.
놀라운 뒷이야기. 연휴 마지막 날 오후에 가족 카톡방에 동영상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셋째 형님이 머물렀던 펜션과 주변 풍경, 가족 사진들로 기억에 남을, 가족 동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온 가족이 놀랐다며 고맙다고, 수고했다고. 아마 앞으로 계속해서 기록처럼 보존되고 기억되겠지요. 모임 때마다 이런 기록들이 만들어지고 보존된다면 그만큼 추억들 또한 생생하게 또 다른 현실이 되어, 살아가는 가족 모두에게 커다란 힘이 되지 않을까요. 설레고 힘이 되었던, 곰돌곰순이네 추석 풍경이었습니다.
곰돌 백청일(논술학원장)·곰순 오숙희(전북과학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