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커뮤니티의 풍경들]
응보적 해결책 아닌 구성원 깨진 관계 바로잡는데 초점
지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가족과 커뮤니티의 풍경들’을 연재한 전남대 인문학연구원 HK+ 가족커뮤니티 사업단 교수진이 올해도 칼럼을 이어갑니다. 본란은 넓은 범위에서 가족과 커뮤니티에 대한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성찰을 시도합니다. 사업단은 ‘초개인화 시대, 통합과 소통을 위한 가족커뮤니티인문학’이라는 주제 아래 인문학적 성찰과 상상을 바탕으로 열린 가족, 신뢰와 조화의 공동체 문화를 연구·확산하는 데 매진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우리 사회는 이념이나 세대로 인한 갈등, 남녀 간 갈등, 노사 분쟁, 이웃과의 갈등 등 여러 영역에서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관계 맺으며 사는 사회에서 갈등은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지만, 최근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인해 사회 갈등이 지나치게 증폭되거나 확산된다는 점에서 갈등 해소의 방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내가 속한 공동체나 커뮤니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소한 불편함도 SNS를 통해 표출되면 거짓되거나 편향된 정보, 자극적인 전개, 사이다 같은 결말 등으로 인기를 끄는 게시물이 된다. 게시물이 인기를 끌고 지속적인 관심과 주목을 받으면 특정인을 향한 인신공격과 마녀사냥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처럼 과도한 갈등은 사람들 사이에 불신을 불어넣어 공동체 전체를 침묵시키고, 구성원끼리 서로를 적대시하게 만든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를 옹호하는 사람들과 피해를 호소하는 이를 옹호하는 사람들 간의 대립이 완강하게 지속되면 공동체 또는 커뮤니티가 파괴되거나 해체될 수도 있다.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은 처음에는 별것 아닌 듯 보이는 조그마한 갈등의 불씨였을 수 있다. 사람들은 갈등이 발생하면 빠르게 상황을 판단하고 한쪽 편을 들려 한다. 누군가의 입장에서 작성된 글만을 읽고 사건의 개요를 파악하거나 댓글 등 집단 분위기에 휩쓸려 확증편향에 빠질 때 흔히 이런 일이 발생한다.
공동체와 커뮤니티를 지속시키고 보다 공정하고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갈등을 전환하고 구성원 간의 상호의존적 관계망을 세심하게 돌보는 작업이다. 갈등에도 불구하고 모두에게 소중한 공동체의 해체를 바라지 않는다면, 공동체 내의 갈등을 국가의 공식적인 사법절차를 통해 해결하기보다는 공동체 내에서 비공식적인 갈등 해결법을 모색해보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여기에 참고할 만한 것이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 개념이다. 미국의 범죄학자이자 갈등전환학 대학원장인 하워드 제어의 『우리 시대의 회복적 정의』에 따르면, 회복적 정의는 ‘잘못된 행동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응보적 정의와는 구별되는 정의에 대한 다른 철학이자 대안적인 패러다임이다. 회복적 정의는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처벌이나 통제가 아니라,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와 공동체 구성원들이 피해를 회복하고 깨진 관계를 바로잡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이 과정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대면하여 소통하거나 대리인이 각자의 요구를 전달하는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며, 피해자와 공동체가 입은 상처를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는 자신의 행위가 갖는 의미와 자신이 끼친 영향을 충분히 인지하고, 이해하며, 인정함으로써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조치를 시작할 수 있다. 피해자 또한 사건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얻고, 자신에게 필요한 요구조건을 전달함으로써 가해행위나 가해자가 끼치는 통제에서 벗어나고 과장된 두려움과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회복적 대화는 가해자로 하여금 진정한 책임을 지도록 도우며, 이를 통해 피해자가 서서히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올 수 있게 돕는다. 공동체는 피해자에게 일어난 일이 잘못된 일임을 확인하고, 피해자의 요구를 듣고, 돌봐줌으로써 존중을 통해 피해자의 치유를 도와야 한다. 이는 공정하고 견고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회복적 정의는 ‘전환적 정의’(transformative justice)이기도 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또는 공동체와의 관계에 생겨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은 단순히 과거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갈등을 회복적 정의의 접근법을 통해 살펴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한우리 전남대 인문학연구원 조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