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이 만난 사람] 파리 패럴림픽 탁구 동메달 김정길 선수
‘경상도 사나이’ 오직 탁구에 꽂혀 광주 정착 20년

2024 파리 패럴림픽 탁구 동메달리스트 김정길 선수가 서구 장애인실업팀 탁구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 파리 패럴림픽 탁구 동메달리스트 김정길 선수가 서구 장애인실업팀 탁구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광주엔 탁구로 세계를 재패한 숨은 고수들이 도처에 있다. ‘2024 파리 패럴림픽 MS4 부문 남자 단식’ 동메달을 딴 김정길 선수(39)도 그중 하나다. 젊은 시절, 척수 장애 진단을 받았지만, 장애를 잊고 몰두할 수 있었던 탁구에 누구보다 진심이다.

 오로지 탁구 하나만을 바라보며, 타지에서 광주로 타향살이하던 그의 여정에 수많은 땀이 묻어난다. 2024 파리 패럴림픽 동메달리스트 김정길 선수를 만났다.

 20년 전인 2004년 3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다. 산악 자전거 서킷을 타던 중 낙상 사고를 크게 당한 것이다. 큰 병원인 대구영남대병원으로 이송됐지만, 하반신 마비가 동반되는 ‘척수 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의 나이 불과 19살이었다.

 살면서 한 번쯤은 ‘귀인’을 만난다고 하든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수개월의 입원 생활을 이어가던 중 휠체어 업체 관계자에게서 “젊은 나이니 운동하면 좋겠다”는 권유를 받았다. 좌절하기엔 너무 어렸던 김 선수는 여러가지 스포츠 종목 중 탁구를 택했다.

 그는 “탁구를 해본 적도 없었지만 두렵지도 않았다”며 “구미시 장애인복지관에서 탁구를 접했는데, 계속 하다 보니 장애를 잊고 몰두하기 좋은 매력적인 스포츠였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탁구 연습과 경기로 굳은 살이 생긴 김정길 선수의 손.
20년 넘게 탁구 연습과 경기로 굳은 살이 생긴 김정길 선수의 손.

  20년 전 청천벽력 같은 사고로 인생 바뀌어 

 그의 말마따나, 탁구는 몰두하기 제격이었다. 탁구를 향한 열망은 전문체육인으로서의 꿈으로 진일보했다. 생활체육 수준을 넘어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었던 김 선수는 불현듯 광주가 눈에 띄었다. 광주가 전국에서도 탁구 국가대표 코치가 많은 곳이란 정보를 접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재며, 젊음을 허송세월하기 싫었던 김 선수는 운명을 개척할 광주행을 실행했다.

 그는 “이전까지 광주에 와본 적도, 지인도 없었지만 탁구를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며 “코치님 도움으로 집을 구했고, 탁구를 칠 수 있는 서구국민체육센터와 가까운 풍암동에 정착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어엿한 ‘광주 사람’이 된 김 선수에겐 이제 몰입의 시간만이 남았다. 기본기인 포핸드, 백핸드부터 다시 배웠다. 오전 8시까지 출근하듯 매일 체육관으로 갔다. 오전 오후 가릴 것 없이 3파트씩 탁구를 쳤고, 명절에도 고향에 가지 않고 연습에만 몰두했다.

 손 마디가 찢어지고, 다시 굳은 살이 덧대는, 인고의 세월은 고스란히 실력으로 체화했다.

 김 선수는 20년 넘게 국내외를 넘나들며 100여 건 국내 국제대회에 출전했다. 그렇게 2009년 ‘슬로바키아 오픈대회-휠체어 장애인’ 부문에서 당당히 첫 국제대회 금메달을 따냈다. “정작 시차에 적응 못해 세상 모르게 자버려서 시상대에 서지 못했다”며 김 선수는 웃음을 보였다.

 최고 권위의 장애인 국제대회인 패럴림픽행은 하늘이 점지해 준다고 한다. 매년 선발하는 국가대표 선발전과 달리, 올림픽 출전권은 개인의 세계 랭킹 누적 점수로 정해진다. 수년간 국제대회에서 얻은 점수를 세계 랭킹 15등까지 유지해야 출전이 가능한 것이다.

 김 선수는 “이기면 점수를 획득하고, 지면 점수가 깎이고, 이런 수많은 과정을 겪으며 개인 랭킹을 15위권까지 유지해야 한다”며 “2009년부터 점수를 쌓아온 끝에 랭킹 4위로 파리 패럴림픽에 출전했다”고 설명했다.

 김 선수는 이미 다수의 올림픽(패럴림픽)서 막강한 실력을 입증했다.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2012 런던 장애인올림픽 남자단체 은메달 △2016 리우 장애인올림픽 남자단체 금메달 △2020 도쿄 패럴림픽 남자단체 은메달 등이 주요 이력이다. 20년 지기이자 선배인 김영건 선수와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가며 이뤄낸 성과다.

2024 파리 패럴림픽 탁구 태국 완차이 선수와의 준결승전에서 김정길 선수가 공을 받아치고 있다. 사진=광산구장애인체육회 제공.
2024 파리 패럴림픽 탁구 태국 완차이 선수와의 준결승전에서 김정길 선수가 공을 받아치고 있다. 사진=광산구장애인체육회 제공.

  “탁구 유능한 코치 많아 광주서 운명 개척”

 영광 뒤 상처도 컸다. 잦은 부상이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휠체어에서 상대방 공을 받아쳐야 하니, 비장애인보다 어깨 인대와 근육 손상이 더 잦았다. 2011년부터 어깨 통증이 서서히 생겼다. 리우 올림픽 합숙 때는 통증이 극심해 재생 주사를 맞으며 훈련에 매진했다는 김 선수. 부상 정도가 심각해 수술도 생각했지만, 트레이너 권유로 재활 운동에 전념했다.

 올해 8월의 파리 패럴림픽은 그래서 더욱 간절했다. 그간 개인 메달은 없었기에 새로운 기록을 써내고 싶었던 것. 그동안의 국제대회에선 훈련량으로 승부했다면, 이번 대회에선 대진에서 마주칠 수 있는 세계적인 선수들의 경기를 영상으로 보며 오랜 시간 분석했다. 이렇게 패럴림픽 스포츠 등급 ‘MS4’ 부문에 출전한 김 선수는 세계 랭킹 1위인 태국 완차이 선수와 준결승전(4강)에서 맞붙어 남자 단식에서 값진 동메달을 땄다.

 이젠 광주를 대표하는 장애인 선수이지만, 여전히 탁구는 질리지 않는 재미를 선사한다. 그래서 그의 꿈도 소박하다. 꾸준히 실업팀 소속 현역들과 호흡을 맞춰가며 즐거운 탁구를 계속하는 것이다.

 김 선수는 “출전 체급이 다 달라도 실업팀 소속 선수들은 대부분 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탔을 정도로 내공이 출중하다. 서로 정보와 전략을 나눈 세월이 길어서 이젠 눈만 봐도 어디로 칠 지 안다”며 “서로를 믿고 함께, 오래, 탁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문석 기자 mun@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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