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 교육도, 물놀이도… 늘 시민 곁에
강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사람들로 인한 혐오 모습도 병존
2020년 황룡강 장록습지가 국가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지 4년이 지나가고 있다.
광주의 첫 번째 습지보호지역이자 국내 첫 번째 도심습지보호지역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장록습지는 광주의 우수한 자연을 대표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장록습지를 안내할 때마다 듣는 이야기가 있다. 어른이든 아이든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이렇게 우리 가까이에 멋진 경관을 가진 또 편하게 쉴 수 있는 장록습지가 있어서 참 좋다.’는 말이다. 키 큰 억새숲을 뛰어가는 고라니를 만날 수 있는 곳, 봄이면 연둣빛 신록을 아낌없이 자랑하는 버드나무숲의 경관이 멋진 곳, 보랏빛 멀구슬나무 꽃이 뿜어내는 향긋한 내음과 해질녘 노을빛을 받아 불게 물든 강물을 만날 수 있는 곳, 이른 아침 재잘대는 새들의 소리, 밤에는 풀숲에서 열리는 수많은 곤충들의 합창을 들을 수 있는 곳. 가을밤, 깜깜한 산책로를 조용히 걷다 보면 반딧불이를 만날 수 있는 행운도 얻을 수 있는 바로 이곳이 장록습지이다. 이제 광주의 습지와 생물다양성들을 이야기할 때 장록습지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곳이 되었고,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발걸음으로 생물다양성을 체험하고 알리는 중요한 공간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습지, 생명을 가득 품은 습지가 광주에 또 있지 않을까? 자연의 모습을 잘 지켜온 야생동식물의 서식처가 되고 있는, 생태계가 우수한 습지를 시민들과 함께 찾아보면 어떨까? 그래서 시작한다. ‘보호지역 확대를 위한 영산강-황룡강 우수습지 답사’. 이제 우리가 직접 걸으며 만나는 습지의 모습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한다.
(편집자주)
8월이 갔다. 그리고 9월이 왔다.
새벽에 조금씩 느껴지는 시원한 공기가 여름이 지나가고 있음을 알려주지만 아직 한낮의 태양은 여전히 뜨거운 시간.
광주 우수습지 답사팀은 8월 한 달 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하고 이번 달은 광산구 선동, 황룡강에 위치한 임곡습지를 찾았다. 강가의 바람과 바닥에 뒹구는 나뭇잎이 가을이 오고 있다고 알려주니 괜스레 마음이 들뜬다. 모두들 같은 마음인지 풍선처럼 부풀어 둥둥 떠다니는 마음들을 나누며 발걸음을 시작해본다.
황룡강은 그동안 3번에 걸쳐 만난 영산강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영산강이 쓸고 닦아 잘 정리되고 정돈된 느낌이라면 황룡강은 감추고 있는 것이 많은, 찾아야할 보물들이 숨겨진 비밀의 공간, 날것의 느낌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아마도 주변에 고층건물이 안 보이고, 넓은 강 사이에 역시나 넓게 차지하고 있는 갈대와 달뿌리풀이 무성한 모래톱, 여기에 황룡강을 따라 우측의 용진산과 좌측의 판사등산이 한데 어우러져 임곡습지의 묵직한 경관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스팔트와 고층 건물 사이에서는 놓쳐왔던 감각들이 이렇게 자연을 마주하고 서면 몸 안 깊은 곳에서부터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하늘과 구름, 바람과 흔들리는 나뭇잎, 눈앞에 펼쳐지는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만나면 아! 하고 탄성이 터지고 행복해진다. 이런 것이 생태감수성이겠지.
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은 사람은 자연을 사랑하는 본질적인 마음을 가지며 자연과의 연결을 본능적으로 추구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래서 사람들이 자연을 더 가깝게 느끼기 위해 주말이면, 또 시간이 날 때면 도시를 떠나 자연을 찾아가는 것은 아닐까.
황룡강 임곡습지 부근은 물이 깨끗하고 수생식물이 많아서 물고기와 수서곤충이 많이 서식하고 있는 곳이라 오래전부터 아이들의 생태체험교육장으로 각광받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물속에 들어가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어떤 곳보다도 아이들이 강을 가깝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은 장록습지가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습지체험교육이 장록습지에서 많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장록습지보호지역 지정 전에는 바로 이곳 임곡습지가 습지교육, 강체험교육의 1번지였다.
한편, 더위를 피해 시민들이 즐겨 찾는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름이면 항상 놀다 가는 사람들이 버린 음식물쓰레기를 비롯한 각종 쓰레기가 산을 이루고 악취를 풍기는데, 강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모습과 사람들이 만든 혐오의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푸른 물결위에 수를 놓듯 꽃들이 피다
강의 이쪽과 저쪽이 참 멀다. 그 두 점을 연결하고 있는 징검다리. 징검다리 너머로 키 큰 수생식물인 줄과 갈대, 달뿌리풀이 바람을 따라 하늘거린다. 거칠고 단단한 느낌의 갈대나 달뿌리풀과 다르게 줄은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느낌이다. 하지만 방심하다 만지면 큰일이 난다. 날카로운 잎 가장자리에 자칫 손이 베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천이나 습지에 사는 줄은 아는 순간부터 갈대나 억새, 달뿌리풀과 구별이 되어 반갑게 만날 수 있는 수생식물이다. 벼과 식물로 보통 펄이 깊은 진흙땅에서 사는데 줄이 자라면서 산소가 부족한 진흙땅 속에 산소를 넣어주는 역할을 해 줄이 자라는 땅에는 수서곤충과 어류가 많이 산다. 암꽃이 꽃차례 위에 피고, 수꽃은 꽃차례 아래에 피는 암수한그루 식물이다. 황룡강 임곡습지에도 줄이 꽃을 피우고 있다. 물 위에는 마름과 자라풀, 노랑어리연꽃이 강물위에 수를 놓듯 자리하고 있다.
광택이 나는 잎 때문에 햇빛에 유난히 반짝이는 자라풀은 잎 뒷면에 공기주머니가 발달해있는 암수딴그루 식물이다. 8~10월에 하얀 꽃이 피는데, 임곡습지 곳곳에 꽃을 피우고 군락을 이루고 있는 자라풀을 볼 수 있다. 이 꽃, 저 꽃을 부지런히 옮겨 다니는 네발나비를 쫓아 시선을 돌리니 영산강에서 만났던 노랑어리연꽃이 이곳 임곡습지에서도 활짝 꽃을 피우고 있다. 알고 있는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징검다리를 건너 강가를 따라 걸어가니 가래나무 열매가 발에 치인다. 광주천에도 황룡강에도 가래나무가 많은데, 물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나무중의 하나이다. 가래나무는 한반도와 만주를 중심으로 서식하는 토착식물인데, 중국에서 호두나무가 도입되면서 예전만큼 흔히 보이지는 않는다고 한다. 한자어로 가래나무 추(楸)자를 써서 추자라고도 하는데, 어렸을 때 마을 어르신들이 ‘추자’라고 불러 나도 한동안 추자로 알고 있던 가래나무이다. 내가 살던 마을에서도 가래나무는 계곡 물길 옆에 있었는데, 여름철 물놀이를 하다가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를 바위에 열심히 문질러 깨 먹었었는데, 초록색 껍질이 다 닿아 없어지도록 문지르다 보면 내 손이며, 옷이 온통 초록색으로 물들어 며칠이고 까만 손으로 지냈던 기억이 난다. 단단한 껍질 속에 감춰진 고소한 열매를 꺼내 먹었던 추억이 고스란히 생각난다.
황룡강 생태하천 조성사업이 남긴 흔적들
임곡교를 지나 용진교를 향해 걷다보니 여기저기 부서진 데크길이 위험하게 방치돼 있다. 안내판을 보니 광주시가 황룡강 생태하천 조성공사를 하면서 설치한 탐방 데크가 관리가 되지 않아 위험하게 방치된 것이었다. 낡아서 난간이 부서지고 발 아래로 구멍이 크게 나 있어서 자칫하면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겠다. 사람의 출입을 막는 안내조차 없다. 철거나 보수 등 적절한 조치가 시급해 보인다.
광주천은 물론이고 영산강과 황룡강 역시 여러 번 생태하천 조성이라는 이름을 걸고 많은 공사가 진행되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진행된 황룡강 생태하천 조성공사는 용진교에서 임곡교 부근 1.4㎞ 구간에 자전거도로와 주차장 2곳, 게이트볼장 등 체육시설을 설치하고 조류관찰대와 수질정화습지 1곳을 조성하는 내용으로 사업비 약 80억 원이 투입됐다.
사실상 친수공간을 만들겠다며 둔치를 개발하는 사업이 내용의 중심이었는데, 그나마 수질정화습지 즉 인공습지를 조성해서 하천 수질을 개선하고 하천생태계 내 동식물의 개체수와 종수를 늘려 하천생태의 건강성을 회복시키겠다고 했지만 지금 모습은 물의 흐름이 없어 수질정화습지의 기능은 기대하기 어려워보인다. 더군다나 습지를 따라 걷도록 조성된 데크길은 유지보수와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아 위험시설물이 되어 있는 실정이다. 또 조성되었던 조류관찰대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생태하천 조성사업이 남긴 것은 둔치를 개발하여 조성한 게이트볼장과 주차장뿐이었다. 그동안 하천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생태하천 조성’ 사업을 돌아봐야하는 이유를 이 곳 임곡습지에서 다시 확인하니 마음이 무겁다.
보호지역 30% 확대, 훼손지 30% 복원
황룡강은 많은 우수한 습지를 가지고 있는 강이다. 특히 임곡습지는 황룡강 물길을 따라 섬톱습지와 송산유원지를 거쳐 장록습지로 연결된다. 그 연결성이 단절되지 않도록, 또 자연이 만들어 유지하고 있는 습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현명하게 이용하고 보전해야 한다.
광주의 2024년 여름은 8월의 평균기온이 역대 가장 높은 해였고, 열대야일수 또한 29.1일로 역대 1위를 기록했다. 폭염일수는 또 어떤가. 24.2일로 평년보다 3.3배 많았다. 갈수록 이런 위험한 기록이 갱신될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후위기문제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현장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BiodiverCities by 2030’를 발표하여 세계 도시들이 도시와 자연의 관계를 변화시키고 도시와 자연의 조화를 위해 생물다양성과 기후위기를 막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또한 도시 공간을 계획하는데 있어 자연 서식지를 보존하고 황폐화된 토지를 재생해야 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홍수와 재해 방지를 넘어 인간의 이용을 위해 강의 땅인 둔치를 마구잡이로 개발함으로써 정작 하천의 자정작용을 훼손하여 왔다. 아직 남겨진 습지와 땅을 보전하고, 훼손된 땅을 복원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세계가 생물다양성협약을 통해 약속하고 있는 ‘보호지역 30% 확대’, ‘훼손지 30% 복원’ 약속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박경희(광주전남녹색연합 생태보전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