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필의 터무니를 찾아서] 6일간의 일본 탐방(3)
빗줄기가 쏟아지는 가운데 고성관이라는 숙소에 이르게 되었다. ‘신라의 달밤’이란 영화속 풍경과 유사한 외양인데 안으로 들어가 보니 구조가 촘촘하고 정성이 베인 흔적이 역력했다. 지하층은 온천탕이 있고, 1층에는 식당이 있으며, 2층과 3층에 숙소가 있어 프라이빗한 환경을 보장한다.
체크인을 하고 지하 온천탕에 가보니 밖으로 정원이 펼쳐져 있다. 푸르름을 간직한 이끼의 생명력에 감탄사가 나오지만 정밀하게 나무를 손질한 것을 보면 인위적인 요소가 이끼의 미덕을 덜어낸다. 재미난 것은 나무마다 그 옆에 기둥이 있다. 살펴보니 지주대다. 바람이 거세다는 증거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이를 터득했을 것이다.
온천탕이 마치 노천탕인 것처럼 경관을 조영하고 나무와 화초와 적당한 괴석을 통해 시선을 차단하면서도 안정감을 주는 기법이 과연 일본의 정원같은 느낌이다. 수차례의 일본 여행 중 그들이 자랑하는 온천탕이 있는 여관은 처음인지라 식사도 그곳의 정식을 먹었다. 가격대가 비교적 높은데 이 또한 새로운 체험이라는 것에 모두들 동의했다. 하지만 문제는 식사에 곁들인 술이다. 술값이 비싸니 단가가 턱없이 높아지는 것이다. 결국 누군가는 편의점을 다녀오는 것으로 그렇게 우리는 그 밤을 이어 나갔다.
무등산 같은 ‘기요쓰코 협곡’
다음날 목표지역은 바로 관광터널로 작업을 한 기요쓰코 협곡지역이다. 구라시타란 지명이 있는 이곳은 잔도가 있었다. 산암릉을 따라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이 있었지만 산릉을 형성하는 바위가 무등산의 입석대와 같은 주상절리대로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은 물살이 거센 협곡에 입지해 있다.
하니 걷는 이들이 느끼는 위태로움이 배가 되는데 비라도 오게 되면 그 물의 양을 가늠하지 못한다. 바로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 위험성에 더해 낙석까지 발생해서 길을 폐쇄하다 1996년 터널을 만들었다. 그런 터널에 중국 작가 마안손이 대지의 예술제를 통해 리뉴얼 작업을 한 것이다.
일본의 구로베, 오스가다니와 함께 삼대협곡이라할 정도로 그 위용이 대단했다. 규모와 길이와 높이에서 제주의 지삿개해안절리, 무등산 주상절리대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였으니 그럴만하다.
750미터에 이르는 터널의 주요한 포인트 4곳에 절리대와 계곡을 관상할 수 있는 관람형 전망대 구멍을 내었다. 그것도 각각 개성을 담은 디자인을 배치했다. 우스꽝스러운 것은 같은 패턴의 나선형 그림을 배치하여 마치 나사처럼 돌아가며 매우 깊은 터널처럼 만든 곳에 캡슐형의 화장실을 배치해 둔 것이다. 호기심 많은 친구가 들어갔다 나오면서 “밖에서 실내가 안보였냐?”고 하며 자기는 밖에 사람들을 다 보느라 볼일도 못보고 나왔다는 이야기였다.
뜻밖의 경험들. 이제 우리는 터널 종점에 당도한다. 잔잔한 수반같은 물이 담겨 있고 막창에 이른 사람들이 서면 저 뒤쪽에서 사진을 찍는다. 협곡과 절벽 사면과 사람의 모습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반영한 그림자가 물 위에 어린다. 소위 사진 스팟이란것이 이런 장면을 요구하는 것이렸다. 어찌보면 최고의 명장면이 여기 아닌가 싶다. 잘 계획된 작가의 예술적 상상이 현실에 스며들며 손꼽히는 관광매력물로 재탄생하며 수많은 방문객을 초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이 작업은 중국인 작가의 손에 완성되었다는 사실도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중국인 방문객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2명 중 1명은 중국인이었으니. 다음 코스는 사나다에 있는 폐교였다. 비워진 교실을 나무로 형상화한 것이나 개념화 하는 것이 마치 나무로 정크아트를 했다는 표현이 맞을 듯했다. 한데 일정한 패턴이 있었는데 이는 일본의 요괴 이야기를 담은 듯이 이해되었다. 실외로 나오니 텃밭으로 사용한 곳에 물자고를 양철통으로 만들고 이를 자전거 페달을 돌려 수차가 되도록 배치했다.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다 한바퀴씩 돌리면서 예술이 우리 삶에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놀이 속에 배워가는 시간을 선물 받았다.
대지의 예술제 마지막 코스
다음은 우에노의 그린파크. 일행중 다섯명은 여기를 기점으로 돌아가고 나와 전교수님만 남게되는 대지의 예술제 마지막 코스였다.
파빌리온처럼 만든 건물을 먼저 들렸다. 고가의 숙소로도 사용한다는 건물은 천정이 슬라이드 도어처럼 열리는 개방식 구조로 되어 있었고 아랫층의 목욕탕은 하늘이 열리는 만큼이나 압도적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
온천 문화가 발달한 일본이 맞다는 생각을 가지며 공원을 거닐었다. 잘 정돈된 잔디밭에는 가지가지의 작품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눈에 거슬리지 않으며 원래 여기 있었던 것 같은 작품의 안배가 또 한번 대지가 예술인 것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둘만 남은 우리는 대지예술제의 본부로 왔다가 근처의 간이역에 설치된 작품을 보러갔다. 지붕위에 배치된 부엉이가 멀리 떠난 누군가를 기다리는 열망의 화신 같아 보이는 장면에서 아그네스 발차의 ‘기차는 여덟시에 떠나네’ 라는 노래가 연상되기도 했다.
남도의 남평역 논산의 연산역 같다는 느낌을 받으며 이번에는 구라마타 마을로 갔다. 우리로 치면 화순연둔리의 숲쟁이 같은 방풍림 아름드리 나무가 있는 곳에 부식되는 강철로 테두리를 둘렀다. 이 자체가 작품인데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일본도 우리처럼 제방을 쌓고 관방제림처럼 나무를 심었다는 것이 느껴질 뿐이었다.
이제 기쿄하라 마을, 전망이 좋은 곳에 창틀 혹은 액자와 같은 횐색의 사각 프레임을 설치하고 커튼을 배치했다. 사라져가는 풍경에 대한 눈길의 기억을 잊지 말라는 호소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발길이 머무는 곳곳에 작품들을 감상하는 가운데 대지의 예술제가 지역의 주요한 지점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파악하는 시간을 마무리했다. 우리는 이제 좀 더 남쪽으로 가기로 했다.
동계올림픽 고장 나가노
목표는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나가노. 세시간 정도를 운전해야 도달하는 곳인데 경차라서 유류비도 적게 든다는 점에 착안하며 뮤지엄과 도서관을 둘러보기로 했다.
가는 길 오부세라는 고장에 들렸다. 우리나라 마을만들기의 전형과 같은 곳이고, 담장 허물기와 정원 만들기가 이마적에 이뤄진 곳이기에 주목했다. 특히 이곳은 사과와 밤의 주산지인데 도로의 인도를 밤나무를 쪼개어 박석처럼 심어 놓았다는 것이 이채로웠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길은 차가 불편한 길이 되어버린 세상. 황급히 이 마을을 돌아보며 곳곳에 눈길을 주었다. 정말 정겨움이 넘치는 마을이었다. 날이 어둑시근해지며 길이 그만 내려서라고 할 때까지 있다가 나가노 시내로 왔다.
세번째 밤은 호텔에서 묵기로 했다. 1998년 동계올림픽을 한 고장답게 대형호텔이 저렴하게 예약되는 강점이 있다. 편안한 밤을 보내고 아침 동계올림픽 메인스타디움이 있는 곳으로 갔다. 우리가 만나고 싶은 것은 올림픽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를 담아낸 아카이브 전시관이었다. 역시 예상대로 이들은 정말 꼼꼼하게 각국의 휘장, 의상, 기념품 등 지나치기 쉬운 것들까지 다 소장하고 쇼케이스에 공유하고 있었다. 심지어 얼마전 열렸던 평창 동계올림픽의 인형이나 휘장, 포스터 등 최신형의 자료까지 업그레이드 하여 관리하고 있었다.
부러움을 느끼며 다시 우리가 향한 곳은 어제 일몰로 다 보지 못한 오부세마을로 가는 것이었다. 마을에 있는 요괴박물관부터 화과자집, 전통가옥 등을 둘러보았다. 아니 샅샅이 보았다. 그러다 버스차부로 보이는 곳에서 눈길을 멈췄다. 세상에 사과와 복숭아를 한개씩 낱개로 판매하는 상인이 계신 것이다. 핵가족화부터 1인가구가 증대한 우리 현실임에도 마트나 상점에서 절대로 도입하지 않는 것을 여기에서는 일상화 되어 있다. 고추, 대파, 마늘, 과일을 사며 수없이 썩어 나간 잉여에게 미안함을 가졌는데 이 동네는 그러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 더 오부세 마을이 마음으로 다가왔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반드시 다시 오고 싶은 일본 제1번으로 오부세마을을 키핑했다.
이렇게 다니다 보니 슬슬 한국 음식이 생각났다. 그 어느때 보다 현지식에 잘 적응했지만 입맛이 요구하는 것은 달랐다. 이제 우리가 향한 곳은 도야마시 그곳 기차역에 한국 음식점이 있다는 정보를 찾아낸 것이다. 관광안내센터에 물어봐도 딱히 답이 나오지 않자 직접 역 구내를 두바퀴 돌아 찾아냈다. 세상에 “전, 두부찌개, 상추겉저리, 상추, 쌈장”이 삼겹살과 밥을 중심으로 다 내오는 것이었다. 거기에 참이슬까지. 오후 3시경의 늦은 점심은 그야말로 진수성찬으로 마감했다.
이제 우리가 들린 곳은 철학자의 집, 도야마의 미술관이었다. 미술관에서 유리공예의 신기한 기법이 형형색색의 작품으로 전시된 모습에서 이 분야는 우리나라가 미흡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오키나와의 경험과 겹쳐졌다. 바닷속 산호초의 세계 같거나 밀림속 버섯들의 세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접한 도서관에서는 언제나 느끼지만 이용자의 눈에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곳에 지역사를 담은 서가가 맞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상용의 서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역사 관련 책을 도서 취급도 안하는 우리의 풍토와는 너무나 간극이 크다. 다시 우리는 편집샵에 들렸다. 트렌디한 최신의 경향을 보려는 의도다. 나는 일본인들이 만든 제주관련 여행서를 한권 샀다. 편집의 기술이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며 그 깊은 내력을 담아내려는 의도가 읽혀졌고 나도 이것을 실행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날의 마지막 투어는 야경으로 이어졌다. 운하가 있는 간스이공원의 스타벅스로 가는 길이다. 그야말로 최고의 접점에 스타벅스가 입지하고 있었다. 야경의 경관도 아름다운데 운하 상류쪽에서 불꽃놀이가 열리고 있었다. 도야마시에서 “양 전씨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 보다”라는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또 다른 도시의 밤속으로 스며들었다.
글·사진=전고필(여행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