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곰순의 귀촌일기] (96) 가을의 향기

곰돌곰순은 한재골로 바람을 쐬러 가다 대치 마을에 매료되었다. 어머님이 다니실 성당이랑 농협, 우체국, 파출소, 마트 등을 발견하고는 2018년 여름 이사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마당에 작물도 키우고 동네 5일장(3, 8일)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막걸리에 국수 한 그릇으로 웃음꽃을 피우면서 살고 있다. 지나 보내기 아까운 것들을 조금씩 메모하고 사진 찍으며 서로 이야기하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 연재를 하게 되었다. 우리쌀 100% 담양 막걸리, 비교 불가 대치국수가 생각나시면 대치장으로 놀러 오세요 ~ 편집자주.

대문 앞과 마당 화단의 국화
대문 앞과 마당 화단의 국화

 국화향이 가을을 부르니

 10월 쉬는 날 서둘러 화순 도곡 로컬푸드와 ‘스마트팜유리온실’을 찾았습니다. 가을꽃의 대명사 국화꽃을 사러.

 늦봄 장흥에서 올라오는 길에 능주면에 들러 점심 식사를 하고 도곡 로컬푸드에 들렀는데, 그 옆에 새로 생긴 스마트팜이 있었습니다. 유리온실로 이루어진 스마트팜 가는 길 입구에 무인 카페가 있어서 꽃구경도 하고, 커피도 한 잔 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그곳에서 도매가격으로 페츄니아, 제라늄 등을 샀더랬지요.

 기록적으로 더웠던 이번 여름, 마당 텃밭에 심은 상추가 녹아서 다시 심으면 또 녹을 정도였습니다. 귀촌해서 사계절 내내 마당의 쌈채소 중 상추가 떨어진 적이 없었는데 이번 여름에는 제대로 맛보기가 어려웠답니다. 고깃집에서도 ‘금추’라고도 했으니.

 계절마다 심는 여름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폭염으로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날씨가 선선해지자 벼르고 별렀던 ‘도곡 스마트팜’을 찾은 거지요.

 여러 종류의 식물들과 꽃들이 다양한 크기의 화분에 도매가격으로 반겨주고 있었으니 그 기억만으로 찾아갈 때부터 얼마나 설레었는지. 유리온실에 들어설 때부터 감탄사가 절로 나왔지요. 형형색색의 꽃들과 식물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자태와 그 향기에 둘러보는 내내 얼마나 행복했던지.

 이번에는 포트에 담긴 것들과 작은 크기, 중간 크기의 화분들을 샀습니다. 중간 크기 화분의 국화 하나는 대문 앞 손수레화단에, 또 하나는 토방 앞 T자 화단에, 마지막 하나는 대문 옥상 위 화분에 심었습니다. 작은 크기 화분에 있던 국화들은 파고라와 대문 지붕 위의 화분들에 옮겨 심었습니다.

 하루하루 자리를 잡아가고 커가는 모습에서 가을이 느껴집니다. 가까이 가서 꽃들을 살짝 쓰다듬어주면 스으~ 진한 향기가 코끝을 지나 얼굴로 번지는 게 느껴집니다. 역시, 가을은 국화의 계절이지요.

정자 뒤쪽 담 옆 금목서
정자 뒤쪽 담 옆 금목서

  금목서향이 마당을 거닐고

 밤 산책을 하고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길에 달콤한 향기가 샤아~ 흘러갑니다. 우와, 이거 뭐지, 하며 몇 걸음 걸으니 금세 사라집니다. 그런데 대문을 열고 들어오니 다시 그 향기가 납니다. 그때에라도 눈치를 챘어야 했습니다.

 다음날 이불 홑청들을 빨고는 말리려고 정자 빨래걸이에 널어놓는데, 어제의 그 달콤한 향기가 진하게 지나갑니다. 이번에는 향기가 오래도록 남습니다. 도대체 어디에서 이 향기가 나는 걸까. 생각해 보아도 골목을 들어오면서 지나는 앞집들도, 옆집들도 아닙니다. 바보같이, 이때에는 진짜로 알았어야죠.

 또 다음 날. 휴일 오전. 곰순이 이제 정자 생활을 좀 해 보자고 합니다. 무더운 여름날 정자에 가 볼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이제 날씨가 선선해졌으니 오늘부터 정자 생활을 해 보자고.

 곰순이 커피를 내릴 동안 곰돌이 정자를 쓸고 닦고 합니다. 두세 번을 닦으니 깨끗합니다. 곰순이 커피를 가져와서 한 잔합니다. 커피를 마시며 일광욕을 하고 있던 곰순이 깜짝 놀라서 말합니다.

 “자기야, 금목서가 꽃을 피웠어요~~”

 아, 이 달콤한 향이 금목서향인 줄 왜 몰랐을까요. 몇 번이나 기회가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고 하는데, 향기에 대한 감각까지 가물가물해지나 봅니다.

 얼마나 꽃이 많이 피었길래 그 향이 이리도 넓고 진한 걸까.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세상에 꽃이 피어나는 중입니다. 아직 절정도 아닌 거지요. 영산강 근처 농원에서 금목서 묘목을 사다 심은 지 3~4년 된 거 같은데, 올해 금목서 꽃들이 풍년입니다.

 그날부터 피어나고 퍼지는 금목서향들이 가을 바람을 따라 온 마당을 거칠 게 없이, 자유로운 몸짓으로 노닐고 있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나서면 바람이 잘 때는 모르는데 나뭇잎들이 살랑거리기 시작하면 잠시 후 달콤한 향이 흘러가는 게 보입니다.

 한재골로 이른 아침 운동을 갈 때도, 마당일을 할 때도, 출근할 때도, 그리고 밤 늦은 시간 퇴근해서 차에서 내릴 때도,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설 때도 금목서향이 온 몸을 달콤하게 감싸줍니다.

 이사올 때 심었던 토방 앞쪽 금목서는 작은 묘목을 심었더랬는데, 그 크기가 정자 뒤쪽 금목서만큼 크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몇 년 지나 몇 그루 좀 더 큰 걸 사서 정자 뒤쪽에 심었던 거지요. 토방 앞쪽 금목서는 꽃이 피어도 그 양이 많지 않아 노란 꽃들과 주변으로 퍼지는 은은한 향이 배추흰나비가 잠깐 머물다 떠나는 그 살랑거리는 날갯짓같이 금방 사라집니다. 여운이 길게 남아 늘 아쉬웠다는.

 그런데 올해 토방 앞쪽 금목서도 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하루하루 마당을 휘어 감는 달콤한 금목서향이 오래 머물고 있습니다.

파고라에서 대추를 따고 있는 곰순이
파고라에서 대추를 따고 있는 곰순이

  대추가 익어간다

 이사 온 해 대추나무 묘목을 사서 지금의 정자 옆에 심었습니다(정자는 그 뒤에 만든 거라). 그해 가을 대추가 8개 열렸습니다. 보통 과실수를 심으면 첫해는 안 열리고 다음 해부터 열린다고 하는데, 신기해서 개수까지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다음해부터 조금씩 많이 열리는데, 해갈이를 하는지 한 해는 많이 열리고, 다음 해는 거의 안 열리고를 반복하고 있답니다.

 정자 옆에 파고라를 만들 때, 대추나무를 살리고 싶어 넷째 형님께 말씀드렸더니 대추나무가 올라오는 공간을 마련해 주셨는데, 그곳으로 대추나무가 머리를 삐쭉~ 내밀 때 얼마나 귀여웠던지.

 이사하고 1년 쯤 지나 막내 처제와 동서네 가족이 사돈 어르신들을 모시고 집을 방문했답니다. 둘러보고 가신 사돈께서 나중에 왕대추나무 묘목 두 개를 보내주셨는데, 곰돌곰순이 잠깐 고민을 했답니다. 마당에 한 종류에 하나씩만 심기로 했던 터라. 이야기 끝에 하나는 대문에서 현관으로 들어오는 길 한쪽에 심고, 다른 하나는 옥상 올라가는 입구 쪽에 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대문에서 현관으로 들어오는 길에는 철쭉, 채송화, 낮달맞이꽃, 봉숭아, 한립세이지, 설악초, 국화 등이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지라 그 틈바구니에 끼어 있던 대추나무가 얼마나 몸살을 앓았겠어요. 한 해 한 해 열매도 제대로 열리지 않더니 어느 해 겨울을 지나보니 죽은 가지들이 많았습니다. 이 많은 가지들을 다 쳐내면 거의 줄기만 남게 되는지라 가슴 아프지만 베고, 파기로 결단했지요.

 그런데 옥상 올라가는 계단 쪽 대추나무는 싱싱하게 잘 자랐습니다. 담장 가까이 심었기에 가지들이 담을 넘어 아래 논쪽으로 휘어져 나가기도 하고, 토방에서 마당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가릴 정도로 가지들이 무성하게 자라 자꾸 강전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양쪽 가지들을 자르면서 모양을 잡아 주다 보니 모양은 어쩔 수 없이 인위적인 ‘Y’자 모양이 되었다는.

 곰돌곰순은 그래도 선물해 주신 두 개의 대추나무 중 하나는 잘 키웠다며 내심 안심한다는 후문이.

 그런데 놀랍게도, 올해 양쪽 대추나무에서 열리는 대추가 사과대추만큼이나 큽니다. “어, 자기야, 이거, 사과대추 아니죠?” 할 정도로. 큰 대추 하나를 손에 쥐고 사과를 먹는 거처럼, 이리저리 돌려가며 베어 물면, 진짜 사과대추 같습니다. 그 맛은 또 어찌나 단지. 해마다 대추를 줍고, 따고, 말려 아침에 끓여 마시는 물에 넣었는데 올해는 말려서 끓여 먹기가 너무 아까울 정도입니다.

 이상기후에 온 세상이 뒤집어질 정도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는데 세상에, 놀랍고, 고맙게도 대추나무들은 그 시절을 훌륭히 견디었나 봅니다. 이토록 소중한 열매들을 선물하다니. 이 가을, 꽃과 열매는 그 향으로, 맛으로 결실을 보여주네요. 그래서 “옛사람들이 하는 말이 한~나도 틀린 거시 없어” 하나 봅니다. 그 말씀을 몇 번이고 되뇌이게 되네요.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곰돌 백청일(논술학원장) 곰순 오숙희(전북과학대학교 간호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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