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커뮤니티의 풍경들] 실패해도 괜찮아 : 놀이로 배우는 인생
지난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가족과 커뮤니티의 풍경들’을 연재한 전남대 인문학연구원 HK+ 가족커뮤니티 사업단 교수진이 올해도 칼럼을 이어갑니다. 본란은 넓은 범위에서 가족과 커뮤니티에 대한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성찰을 시도합니다. 사업단은 ‘초개인화 시대, 통합과 소통을 위한 가족커뮤니티인문학’이라는 주제 아래 인문학적 성찰과 상상을 바탕으로 열린 가족, 신뢰와 조화의 공동체 문화를 연구·확산하는 데 매진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실패해도 괜찮아 : 놀이로 배우는 인생’은 전남대학교에서 2024학년도 2학기부터 신설한 교양강좌이다. 이 수업의 기획 의도는 크게 3가지로, 첫째,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과 실패의 기준을 다시 생각해보고 실패에 대한 고정관념과 부정적 인식을 전환하며, 둘째,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발적인 내적 동기로 타인과 함께 놀이하는 경험을 통해 창의성과 협업능력을 키운다. 마지막으로 실패를 겪었을 때 좌절에만 빠지지 않고 자신을 위로하면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것이다.
중간· 기말 시험은 없고 매주 다채로운 놀이와 조별토론을 하면서 정답이 없는 자기 성찰 활동이 이뤄진다.
구체적으로 주차별 수업 주제는 다음과 같다. ‘사회가 말하는 성공/실패의 기준’, ‘최악의 실패 시나리오 쓰기’, ‘이번 주에 실패할까봐 걱정되는 일 공감하고 위로하기’, ‘실패의 감정과 경험 캡쳐하기’, ‘실패마켓’-나의 실패 경험 사고 팔기’,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나에 대한 메타인지 높이기’, ‘성공시나리오 쓰기’, ‘내가 죽었을 때 세우고 싶은 묘비명 작성하기’, ‘“기적으로 되어있는 우리들” 내가 이미 잘 하고 있는 일에 감사하기’, ‘‘작게, 더 작게’ 일상의 사소한 성공 경험하기’, ‘고래도 춤추게 하는 특급 칭찬하기’. ‘걷기와 산책이 주는 치유의 힘’, ‘도전 실패-스티벌 프로젝트’.
학점 경쟁이 치열하고 권위주의가 만연한 대학에서 이런 놀이형 수업이 가능하려면, 경쟁에 대한 압박감을 낮추고 자유로운 상상과 표현이 가능한 분위기 조성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 강좌는 전 구성원(교수, 학생들) 간 평어 쓰기, 성을 뗀 이름으로 부르기, 모든 대화는 긍정적인 반응(yes)으로 시작하기 등 이색적인 수업 규칙을 적용하고 있다.
지난 주에는 ‘실패마켓’ -나의 실패 경험 사고팔기’ 수업이 있었다. 먼저 학생들은 각자 자신의 실패 경험 또는 실패 요인이 되는 단점 10가지를 메모지나 패드에 적는다. 그 다음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강의실을 돌아다니며 2~3명의 짝을 이루어 서로의 실패와 단점 목록을 얘기하고 그 중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사고 판다. 사고 팔 때는 왜 사고 싶고 팔고 싶은지 그 이유를 설명해줘야 한다.
처음 적었던 목록 중 5개 이상이 팔리거나 새로 산 목록으로 교체될 때까지 활동은 계속된다. 활동이 다 끝나면 자기가 앉았던 지정조 좌석으로 돌아가 조원들과 목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나누고 활동에서 소감을 이야기한다.
이날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은 다음 시간까지 자기 성찰 레포트를 작성하는 과제를 수행했다.학생들의 자기성찰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매일 바쁘게 살고 있는 우리에게 위로와 힐링을 전해주는 것 같다.
“처음엔 실패 목록을 사고 판다는 행위가 원활하게 이루어질까 의문이 들었다. 그야 ‘실패’와 ‘단점’ 모두 부정적인 단어이고, 나의 실패 경험 따위 아무도 가지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에 조원들의 실패 경험을 들을 때는 생각이 변했다. 조원들이 실패와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나에게는 부러운 일로 다가왔다. 조원들도 비슷하게 생각했는지 나의 목록에서 사고 싶은 것들을 말해주었다. 나의 목록을 사 가는 사람들의 이유를 들으며 굉장히 큰 위로를 받았다. 내가 도전을 했다가 실패한 경험에 대하여 자신은 용기가 없기 때문에 도전을 했다는 것만으로 대단하다고 해 준 학생이 있다. 그 말이 이 활동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말이었다. 작은 실패 하나라도 하면 안 되는 것처럼 여기는 사회에서 잠시 떠나 서로의 실패를 사고 파니 오랜만에 가득 찬 시간을 보냈다. 나의 실패 경험과 단점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다.”
“실패 마켓에서 나는 7개를 팔고 5개를 샀다. 학우들이 내 실패를 사고 싶은 이유를 들을 때마다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받는 기분이었다. 내가 실패라고 여겼던 것들을 그들은 해보고 싶다고 사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내 실패 목록 중, 건강에 좋지 않은 술을 끊으려고 했으나 애주가임을 깨닫고 실패했다는 것이 있었다. 이것을 구매하는 친구가 자신은 술을 좋아해보고 싶다며 술에서 즐거움을 찾은 게 부럽다고 이 실패를 사갔다. 술을 좋아하는 내가 가끔은 한심하기도 했는데 그 친구의 말 덕에 음주의 나쁨보다 좋아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얻는 나에게 주목할 수 있었다.”
“ 내가 산 실패 중에 3년 짝사랑이 있었다. 그들에는 가슴 아픈 사랑 실패일지라도 나는 오랜 기간 한 대상에게 애정을 품고 표현하려 노력한 것이 존경스러웠다. 나는 아직 누군가를 그렇게 오래 사랑해 본 적이 없다. … 그들의 실패에서 오래 오래 한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사고 싶었다.”
“실패, 듣기만 해도 우중충해지는 단어다. 그런데 이번 실패마켓에서 실패를 사고 팔면서 실패가 좋아졌다. … 지난 날 실패를 두려워했던 나를 실패마켓에 초대하고 싶다. 그리고 “실패는 피해야 하는 게 아니야, 재밌고 훌륭한 인생의 지침책이 될 거야”라고 말해주고 싶다.”
실패는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성숙과 성장을 위해 필요한 인생의 과정일 따름이다. 성공의 기준이 하나일 수 없으며, 실패와 도전은 한 끗 차이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살면서 많은 실패와 역경에 부딪힌다. 하지만 실패를 바라보는 관점을 전환하고 자기를 돌보고 회복하는 힘을 키울 수 있다면 저마다 다른 성공적인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류도향 전남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