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순의 호남의 명산] 강진 보은산(441m)
나한봉에서 쟁계암으로 이어진 짧고 굵은 암릉
우리나라에서 한자(漢字)를 사용한 이래 가장 많은 책을 쓴 사람으로 평가받는 이가 있다. 75년 일생 동안 500여 권의 책과 2460편의 시를 지어 1년에 6.6권의 책과 32.8편의 시를 쓴 다작의 대가이자 천재 다산(茶山) 정약용이다. 강진은 정약용의 18년간의 고난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곳이다. 유배지에서도 묵묵히 <목민신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명저를 저술했다. 이곳에 전국의 공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청렴교육 기관인 강진다산청렴연수원(원장 박정식)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강진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고려청자, 다산 정약용, 영랑 김윤식을 들 수 있다. 산과 들, 바다, 갯벌에서 나는 풍부한 식재료로 인해 한정식의 고장이라는 별칭도 있다. 11~12세기 대구면 여계산(311.3m) 일대 사당리와 삼흥리는 고려 왕실에 청자를 납품하던 관요(官窯) 임과 동시에 가마의 불이 365일 꺼지지 않았던 국가산업단지였다. 영랑 김윤식은 열여섯 살 나이로 3·1 운동에 몸을 던진 독립투사였고, 일제 말기까지 오직 ‘우리말’로만 작품을 남겼던 저항 시인으로 ‘모란이 피기까지는’ 그의 대표작이다.
강진에는 맹주 덕룡산, 주작산을 비롯해 수인산, 만덕산, 화방산, 여계산 등 쟁쟁한 명산들이 즐비하다. 강진의 진산 보은산(寶恩山)은 작고 평범해 보이지만 고성사(高聲寺)와 금곡사(金谷寺)를 품고 있는 산이라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보은산이라는 지명도 다산과의 인연을 떨쳐 버릴 수 없는 연유가 있다. 오랫동안 북산(北山)으로 불려 왔었지만 북망산천을 연상하기 때문에 산 이름으로는 적절치 않다는 여론에 의해 다산 선생이 기거했던 고성사의 보은산방(寶恩山房)을 근거로 2002년 보은산이라는 바뀐 것이다. 주봉은 441m의 우두봉으로 보은산 우두봉이라 부른다.
강진 사람들의 노스탤지어 우두봉
동행한 김상은(63 강진군청 출신) 씨는 ‘보은산은 문화답사와 별미산행을 겸한 반나절 산행지로 더할 나위 없는 곳’이라 소개한다. 대부분 동네 뒷산쯤으로 여기고 덤볐다가 생각이 바뀌어 내려오게 된다고 한다. 부드러운 육산이지만 곳곳에 암릉이 돌출해 하산할 때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높은 산 부럽지 않은 조망까지도 갖췄다. 강진 사람들은 보은산 정상이 소머리 형상 같아서 우두봉(牛頭峰)이라고도 부르는데 우두봉 기운 때문에 큰 인물과 부자가 많이 난다고 말한다.
산행 들머리는 군청 옆에 있는 영랑생가를 둘러보고 나오면서 담장을 따라 올라가면 두 갈래길이다. 오른쪽은 강진의 정신을 이끌어 준 금서당(琴書堂)을 거쳐 충혼탑에서 올라가는 방법과 왼쪽 세계모란공원 방향으로 가면 산행을 길게 할 수 있다. 고성사 방향을 잡기가 혼돈된다. 언덕에 있는 사각형 조형물을 지나 ‘고성저수지’ 이정표를 따라가면 약수터길로 합류한다.
약수터 삼거리 갈림길엔 커다란 등산 안내도가 있다. 오른쪽 길은 곧장 우두봉으로 갈 수 있고, 왼쪽 길은 고성사로 향한다. 참고로, 고성사에서 우두봉으로 오르는 길은 인적이 많지 않고 삼나무숲이 울창하다.
고성사는 1211년 건립한 백련사 말사다. 사찰의 위치가 소의 목 아래 방울을 다는 부분에 해당하므로 사찰 이름을 고성(高聲)이라 했다고 한다. 다산 선생이 1805년 겨울과 이듬해 1년 동안 고성사 요사채인 ‘보은산방’에서 기거했다. 고성암의 해질녘 종소리를 뜻하는 고암모종(高庵暮鐘)은 ‘금릉팔경’ 중 으뜸으로 친다. 금릉은 강진의 옛 이름이다. (현재, 보은산방은 헐리고 요사채 공사중)
우두봉으로 가려면 고성사 주차장에서 연결된다. 우두봉까지 1.6km 거리다. 우두봉은 분지처럼 넓다. 강진읍내를 비롯해 탐진강 줄기, 너른 갯벌과, 만덕산, 석문산, 덕룡산, 주작산으로 이어지는 땅끝기맥이 힘차게 뻗어있다. 강진만에서 유일한 유인도인 가우도를 비롯해 여계산, 부용산, 천관산까지 아스라이 조망된다. 서쪽으로 별뫼산, 가학산, 흑석산이 지척이다. 동쪽으로 화강석 재단에 강진의 여덟 곳의 대표적인 경치를 뜻하는 ‘금릉팔경’이 새겨있다.
정상에서 금곡사까지 3.76km, 능선 날등을 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월출산 주 능선이 손에 잡힐 듯 웅장하게 보인다. 이정표가 촘촘한 외길이기 때문에 능선만 따라 가도 된다. 물결 타듯 오르내리는 산길에는 어깨높이만큼 자란 철쭉군락이 장관이다. 듬성듬성 소나무가 자라고 있지만 큰 그늘을 기대하기 어려운 반면 충분하게 시야는 넓어서 좋다. 일봉산, 산태봉은 작은 봉우리 수준이며 곳곳에 암릉지대가 도사리고 있어 속도가 나지는 않는다.
금곡사의 거대한 석벽 쟁계암에 놀라다
나한봉 능선은 금곡사 갈림길에서 까치내재 방향으로 직진한다. 나한본능선은 솔방울 껍질처럼 바위들이 돌출된 형상이다. 석영 안산암으로 이루어져 햇빛을 받으면 금빛 가사를 걸친 백팔나한들이 좌선하고 있는 듯 착각을 일으킨다. 보은산의 하이라이트는 나한봉 능선에서 쟁계암(爭鷄岩)으로 떨어지는 암릉지대라고 봐도 무방하다. 불과 10여 분 짧은 거리지만 손발에 의지하여 바위틈 사이를 내려가기를 수차례 반복해야 한다.
암릉지대가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멈출 수 없다. 갈라진 바위틈을 건너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암벽을 타고 내려오면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는 거대한 석벽이 쟁계암이다. 쟁계암이 담장처럼 금곡사를 감싸고 있는 모양이다. 금곡사는 1400년의 역사를 지닌 절이지만 임진왜란 이후 폐사되었다가 일제 강점기 때 중창되었다. 대웅전 앞에 있는 보물 829호 고려시대 삼층석탑이 오랜 내력을 대변한다.
보은산은 물이 마르지 않는 산이다. 쟁계암 사이로 흐르는 물에 탁족을 하면서 방랑시인 김삿갓의 시를 음미해 본다. 그가 금곡사에 머물며 남겼던 글이 시비에 남아있다. ‘雙岩○起疑紛爭 一水中流解忿心’ ‘쌍암병기의분쟁 일수중유해분심’(두 바위가 마주 서서 싸우는 것 같으나, 중간에 개울이 흘러 분한 마음 풀어주네) 시인은 세상 모든 시름일랑 차가운 물에 흘려보내며 살라고 한다.
▲산행 길잡이
영랑생가-금서당-사의재-병영읍성터-삼거리 갈림길-고성사-우두봉 갈림길-우두봉-우두봉 갈림길-일봉산-산태봉-나한봉 능선-암릉지대-쟁계암-금곡사(8.3km 3시간 50분 소요)
글·사진= 김희순 山 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