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드문 그곳, 생태 ‘비밀’ 엿보다
습지 생태계 누릴 효과적 서비스 ‘보호지역 지정’
2020년 황룡강 장록습지가 국가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지 4년이 지나가고 있다.
광주의 첫 번째 습지보호지역이자 국내 첫 번째 도심습지보호지역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장록습지는 광주의 우수한 자연을 대표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장록습지를 안내할 때마다 듣는 이야기가 있다. 어른이든 아이든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이렇게 우리 가까이에 멋진 경관을 가진 또 편하게 쉴 수 있는 장록습지가 있어서 참 좋다.’는 말이다. 키 큰 억새숲을 뛰어가는 고라니를 만날 수 있는 곳, 봄이면 연둣빛 신록을 아낌없이 자랑하는 버드나무숲의 경관이 멋진 곳, 보랏빛 멀구슬나무 꽃이 뿜어내는 향긋한 내음과 해질녘 노을빛을 받아 불게 물든 강물을 만날 수 있는 곳, 이른 아침 재잘대는 새들의 소리, 밤에는 풀숲에서 열리는 수많은 곤충들의 합창을 들을 수 있는 곳. 가을밤, 깜깜한 산책로를 조용히 걷다 보면 반딧불이를 만날 수 있는 행운도 얻을 수 있는 바로 이곳이 장록습지이다. 이제 광주의 습지와 생물다양성들을 이야기할 때 장록습지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곳이 되었고,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발걸음으로 생물다양성을 체험하고 알리는 중요한 공간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습지, 생명을 가득 품은 습지가 광주에 또 있지 않을까? 자연의 모습을 잘 지켜온 야생동식물의 서식처가 되고 있는, 생태계가 우수한 습지를 시민들과 함께 찾아보면 어떨까? 그래서 시작한다. ‘보호지역 확대를 위한 영산강-황룡강 우수습지 답사’. 이제 우리가 직접 걸으며 만나는 습지의 모습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한다.
(편집자주)
4월부터 시작한 광주의 생태우수습지 답사 마지막 여정으로 황룡강 섬톱습지를 찾았다. 임곡습지와 송산유원지 사이에 위치한 섬톱습지는 일부러 가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곳이다. 또 그만큼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탓인지 멋진 경관을 잘 간직한 비밀 공간 같은 곳이기도 하다.
광산구 박산마을을 지나 박호1리 버스정류장에서 모여 바로 황룡강 강둑으로 올랐다. 이제 물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강둑 위로 자전거도로가 정비되어 있어 자전거를 타는 한 무리의 일행들을 만났다. 걸어도 좋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도 아주 그만인 길이다. 또 지금은 가을이지 않은가. 하늘과 구름과 바람과 잔잔한 물결과 물길이 담고 있는 작은 모래톱까지 놓치면 아쉬운 풍경들이 가득한 섬톱습지이다.
강둑을 따라 늘어선 벚나무. 아! 벚꽃이 피었다. 한 그루에서만 핀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작은 꽃송이들이 활짝 피어있다. 잎은 다 떨어졌는데, 앙상한 가지에 철을 모르고 피어난 꽃송이들. 가을에도 꽃이 피는 춘추벚꽃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나무마다 한 송이 정도씩 드문드문 핀 걸 보면 철을 모르고 따뜻한 기온 탓에 피어난 것 같다.
함께 걷는 홍기혁 선생님의 설명으로 예전에도 따뜻한 날씨 때문에 철이 지나 피는 벚꽃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고 하니 이상기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철을 잘 알고 철따라 사는 것도 좋지만 또 이렇게 가끔은 철을 모르고 피어나고, 또 사는 이들의 서투름도 멋이 있지 않은가.
10월의 벚꽃처럼 수많은 변수들 사이에서 자연의 모습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알 수 없는 또 예측하기 힘든 변수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로드킬 유혈목이…누가 누구에게 위협인가?
강둑으로 올라서자마자 로드킬을 당한 유혈목이 한 마리가 우리를 맞이한다. 어제 밤에 비가 그친 후 추운 몸을 데우기 위해 길로 들어섰는데 그만 변을 당했나보다.
뱀은 파충류로 몸이 비늘로 덮여 있는 변온동물이다. 스스로 체온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볕이 드는 지역을 선호한다. 특히 가을에는 뱀을 만나기가 더 쉬운데, 동면을 앞두고 양분을 충분히 섭취하기 위해 먹이 활동을 하느라 활동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사는 대표적인 독사에는 살모사과에 살모사, 까치살모사, 쇠살모사와 뱀과에 속하는 유혈목이가 있다. 유혈목이는 과거에는 독이 없는 종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턱 뒤쪽에 2~3㎜의 독니를 가지고 있는 독사이다. 개체에 따라 채색변이가 심하며 등면은 보통 녹색으로 흑색 반점이나 짧은 가로 줄무늬가 꼬리까지 산재해 있다. 특히 목덜미 부분에 적색과 황적색 무늬가 있어서 구별을 할 수 있다. 전국에 분포하며 하천, 경작지, 초지, 산림지역 등 다양한 환경에서 서식한다. 봄에는 저지대 수로나 하천 주변에서, 여름에는 산림지역으로 이동해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뱀은 위험한 동물로 인식되어 있는데, 사실 뱀은 사람을 만나면 피하기 바쁘다. 잘못해서 밟거나 일부러 포획하려고 다가가지 않는 이상은 먼저 공격 하지 않는다. 즉 갑작스러운 접촉이나 위협을 느낄 때가 아니면 뱀에게 물리는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다리가 없어서, 한 입에 자신보다 더 큰 먹이를 삼키는 모습 때문에 사람들에게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뱀 입장에서는 너무 억울한 일이지 싶다. 특히 유혈목이에게 가장 큰 위협 요인은 로드킬이라는데, 그들에게는 우리가 가장 무섭고 피하고 싶은 존재일 수 있는데 말이다.
뱀은 작은 포유류나 양서류, 설치류 등을 잡아먹으며 하위 먹이사슬의 변화를 조절해주는 ‘먹이사슬의 허리’라고 할 수 있다. 포식자로서 생태계의 다양성과 균형을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자연은 물론이고 무엇이나 아는 만큼 가까워지는 법. 세상에 나는 이유가 우리 모두에게 있듯이 이들이 지구상에 있는 이유도 분명할테니 이제는 뱀과도 조금 가까워지는 것은 어떨까? 뱀을 엄청 무서워했던 내가 달라진 것처럼 모두에게도 가능한 일일 것이다.
아! 이번에는 나뭇가지에 걸린 새다. 누구인지, 왜 이런 모습으로 남겨져 있는지 궁금하다. 때까치의 경우 사냥을 하면 먹이를 저장하기 위해 나뭇가지나 날카로운 가시 등에 먹이를 꽂아두기도 한다는데 때까치가 범인일까? 찍은 사진을 조류 박사님께 보내고 물어보니, 사진만 봐서는 어떤 새인지 알 수 없고, 참새보다 조금 더 큰 때까치가 사냥하기에는 나뭇가지에 있는 새는 크다고 하셔서 용의자에서 때까치를 제외시키게 되었다. 아쉽지만 아직은 풀지 못한 미제사건으로 남겨야겠다.
‘생물다양성 전략 이행’ 광주시 의지 필요
7개월간 다섯 번에 걸쳐 영산강-광주천-황룡강으로 이어지는 물길을 따라 걸으며 광주에는 장록습지 버금가는 생태적으로 건강하고 우수하며 멋진 경관을 가진 습지가 많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였다. 그리고 습지가, 자연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너무 재미있어서 이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면 좋겠다는 마음이 자꾸만 자꾸만 커지는 것을 느낀다. ‘가까이 보아야 이쁘다’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구처럼 직접 만나야 볼 수 있고, 알 수 있고, 소중해지는 광주의 습지이다. 이런 소중한 습지를 지킬 수 있고, 습지의 생태계 서비스를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보호지역 지정’이다.
현재 콜롬비아 칼리에서 제16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COP16)가 열리고 있다. 이번 총회에서는 지난 COP15에서 채택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국가별 생물다양성전략계획을 점검하는데, 우리나라도 제5차 국가생물다양성전략을 점검받게 된다.
생물다양성전략의 목표는 선언적 목표가 아닌 달성할 수 있도록 실천 가능한 이행계획과 함께 수립해야 한다. 또한 국가의 생물다양성전략 계획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지역별 생물다양성전략 계획이 마련되고 실천될 때 가능하다.
그동안 의무사항이 아니어서 광주생물다양성전략 수립을 미뤄왔던 광주시도 이번에 ‘광주생물다양성전략 수립과 활성화 방안’이라는 용역을 하여, 곧 광주생물다양성전략을 발표할 계획이다.
광주생물다양성전략에서는 KM-GBF(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의 목표, 제5차 국가생물다양성전략의 목표인 보호지역 30% 확대, 훼손지 30% 복원이라는 ‘30×30’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현재 전국의 보호지역 면적은 17.1%, 광주시의 보호지역 면적은 10.1%이다. 2030년은 멀리 있는 시간이 아니다. 이미 제안되고 있는 용산습지, 동립습지, 영산강 7-8하중도, 임곡습지, 섬톱습지에 대한 보호지역 지정을 검토하는 한편, 가능한 공간들을 발굴하기 위한 시민참여 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할 것이다.
광주생물다양성전략 수립 연구 용역 중 시행한 생물다양성 인식조사에 의하면 광주시민의 2/3는 생물다양성 감소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70% 이상의 시민은 생물다양성 보전 활동에 참여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생물다양성전략 이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항은 ‘광주광역시의 생물다양성 보전 의지 및 노력’이라고 응답한 시민들이 가장 많았다. 광주시민은 생물다양성 보전과 회복이라는 의제에 이미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 광주시가 의지와 노력을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박경희(광주전남녹색연합 생태보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