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력 세계 10위권, 그럼에도 취약한…

노벨상 홈페이지.
노벨상 홈페이지.

 매년 10월이 되면 분야별로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그때마다 노벨상 앓이를 하던 한국이었지만 이번 가을은 작가 한강의 문학상 수상으로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한 10월을 맞이하게 되었다. 스웨덴 한림원의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평가는 한국의 굴곡진 역사 속에서 이를 회피하지 않고 글로 녹여낸 작가의 오랜 노력에 대한 찬사이리라.

 스웨덴의 기술자로 다이너마이트 개발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제정된 노벨상은 물리학·화학·생리의학·문화·평화 등 5개 부분으로 구성되며, 노벨 경제학상은 나중에 추가되었다. 노벨의 유지에 따라 “인류를 위해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을 선정하되, 수상 후보자의 국적은 고려하지도 않고, 발표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여러 나라들이 노벨상 수상자의 국적을 구분한다. 이에 의하면 미국은 가장 많은 수상자를 배출했고, 그 다음이 영국, 독일, 프랑스 순서로, 유럽과 북미가 85% 정도를 차지한다.

 하지만 최근 일본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1949년 유카와 히데키가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이후 현재까지 모두 26명의 일본인 과학자가 노벨상을 받았고, 특히 21세기 들어 수상자가 크게 늘어났다. 일본은 2024년 노벨 평화상을 일본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가 수상하면서 과학 분야 수상자를 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다.

 일본과는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되는다는 강렬한 경쟁 의식을 갖고 있는 한국은 단 한 명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도 내지 못했다. 일본을 제외하더라도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32개국이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한국의 과학기술력을 감안하면 적어도 10위권 정도의 실적을 내야 한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아직 노벨 과학상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다. 한국이 노벨상에 대한 높은 열의에도 불구하고 수상자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 과학 저널 《네이처》가 상세한 분석 기사를 쓰기도 했다.

  장기적 연구 문화와 질문하는 교육

 한국이 왜 아직 노벨과학상을 받지 못했는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가에 대해서는 차고 넘치는 논의들이 있다. 쾌도난마의 짧은 지면에서 그 논의를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와 관련해 따져볼 거리 몇 가지를 다루고자 한다.

 우선 과연 노벨상이 꼭 필요한가라는, 다소 어리석어 보이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노벨과학상은 과학계 최고의 성과임에 분명하다.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면 한국 과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인정이 크게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과학이 지니는 가치는 무척 다양하다. 연구 성과 외에도 과학기술이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은 매우 많다. 사실 노벨상은 목적이 아닌 결과로 따라 오는 것이다. 따라서 노벨상 수상에 그렇게 몸달아야 할 필요는 없다.

 한국 과학기술은 경제개발을 뒷받침하기 위한 목적으로 정부의 전폭적 지원 속에 빠르게 성장했다. 그리고 1989년 기초과학연구진흥 원년을 선포한 이후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이제 겨우 한 세대가 조금 지난 정도이다. 연구자가 자신의 핵심 연구를 시작해서 노벨상 수상이라는 영광에 이르기까지 평균 32년 정도가 걸렸다는 통계를 보면 아직 우리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노벨상 문제와 관련해 항상 나오는 한국 과학기술 연구 문화는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우선 단기적 연구 성과에 치중하다보니 장기적 연구는 지원받기 어렵다는 문제가 항상 제기된다.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로 20대가 나온 적도 있지만 대개 50대 후반 이후가 많다. 이는 특정 주제를 장기간 연구할 수 있는 문화가 필수적임을 뜻한다.

 2주전 쾌도난마에서 김희태 교수가 한국 교육이 열심히 받아 적고 기억하는 방식이 아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학습을 주도해 나갈 필요가 있음을 역설했다. 실제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보면 우리 학생들은 질문을 잘하지 않고 강의 내용만 받아적으려 한다. 그러다보니 문제를 만드는데 서투르다. 대개 한국 유학생들은 해외에서 매우 좋은 평가를 받는다. 기본 지식과 기술이 탄탄하고, 성실하게 지도교수의 가르침에 따라 실험을 하고 논문을 작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스로 연구 문제를 설정해서 해결하는 데는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한국 교육의 큰 약점이며, 《네이처》도 이를 중요한 문제로 지적했다.

  기초과학 생태계 조성

 마지막으로 선택과 집중으로 설명되는 한국 과학정책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선택과 집중은 한국 과학정책의 중요한 특징이었고, 단기간에 압축적 성과를 거둔 비결로 얘기된다. 하지만 기초 연구에 선택과 집중이 효과적인지, 아니면 생태계 조성을 통해 연구자의 풀을 넓고 다양하게 하는 게 효과적인지 의견이 엇갈린다. 단 한 번의 노벨상에 만족하지 않고, 한국 과학기술의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면 몰아주기보다 다양성을 채울 수 있는 저변 확대가 중요하다. 일본의 초기 노벨상은 교토대에서 나왔고, 뒤이어 도쿄대를 거쳐 이제는 일본 여러 지역의 학자들이 수상하고 있다. 다수의 수상자들이 자국에서 교육받고 활동했으며, 특히 지방의 여러 대학에서 수상자가 나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빠르게 추격하는 전략에서는 소위 선택과 집중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지만, 도화선이 되는 최초의 발견을 위해서는 남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서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방식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다수의 연구자 풀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전세계에서 인정받는 최고의 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다수의 신진학자를 키워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한가롭고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초과학이 당장의 활용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평생을 과학에 종사하겠다는 다수의 학문 후속 세대를 키울 수 있는 씨뿌리기 전략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부와 명예가 아닌, 자신이 하고싶은 연구를 위해 살겠다는 신진 연구자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기본적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수도권의 유명 대학과 연구소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각광을 받지 못하더라도 묵묵하게 과학연구의 길을 걷고 있는 학자들에게 힘을 실어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제 한국은 그 정도 역량을 갖춘 사회가 되었다.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 & K-학술확산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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