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무장한 전도사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프랑스혁명을 공포정치로 ‘탈선’시킨 로베스피에르(1758~ 1794년)의 말로 기록된 역사다.(유럽인 이야기·주경철 저)
16세기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서 설파했던 ‘무장한 예언자’론과는 결을 달리하는 인식이다.
‘왕정 타파’ ‘입헌 민주주의’… 프랑스에서 시작된 혁명의 불길이 유럽 확산이라는 기로에 선 시기, 로베스피에르의 예의 발언이 나왔다.
유럽의 군주들은 이 불온한 기운을 차단하기 위해 프랑스와의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태세였고, 프랑스 혁명 정부내에선 전쟁을 해야 하는지를 놓고 갑론을박하던 시대였다.
전쟁을 찬성하는 이들의 논리 중엔 ‘승리를 거두면 혁명을 수출할 수 있다’는 기대가 포함돼 있었다. 전도사의 무장론인 셈이다.
위기에 처한 프랑스 왕이 혁명 세력 분열에 전쟁을 이용하겠다는 노림수가 있었고 이를 간파한 로베스피에르가 애초 입장과는 달리 반대했다는 해석이 있다.
결과적으론 로베스피에르의 의지와는 달리, 프랑스 혁명의 이념은 그의 사후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 유럽으로 전파됐다. 다시 왕정으로 돌이켜 ‘반혁명분자’가 된 ‘황제’를 통해 자유·평등·박애라는 혁명 정신이 확산한 역사의 아니러니 중 한 장면이다.
이보다 앞서 300여 년 전 ‘무장한 예언자’를 주창한 건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1469~ 1527년)였다. 국가든 군주든 그들의 사상과 이념은 ‘힘’이 담지돼야 지키고 확산할 수 있다는 얘기다.
노벨 문학상·타이거즈 우승
올해는 여러모로 ‘광주’가 이름 자체로 빛난 한 해였다. 5·18에 기반한 도시 정체성과 그 산물이 국내외적으로 주목받고 회자됨이 이제껏 유례없을 정도다.
이 시대의 예언자·전도사로 자리매김했다할 정도의 강력한 족적인데, 이를 가능케 한 ‘무장’의 내용이 이전과는 결이 다른 ‘소프트 파워’여서 확산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키운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효과를 앞자리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출생지인 ‘광주’가 부각된 건 그의 작품이 생래적 터전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대표작 중 하나인 ‘소년이 온다’에 대해 “5·18 항쟁의 기억을 집합적 개인들의 이야기로 재구성했다”는 평이 이와 무관치 않다.
수상 후 쏟아져 나온 각계의 헌사도 ‘광주’를 호명했다.
SNS에서 익히 회자된 김상욱 교수의 글도 그렇다. “우리나라에 주어진 노벨상 2개(평화상·문학상) 모두 광주와 관련된 것이다. 적어도 노벨상수상위원회라는 틀로 본 서구인의 시각에서, 우리가 이룬 것들 중 인류의 보편적 가치의 정점에 도달한 것이 광주였다는 뜻이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란 인간의 존엄, 자유, 평등, 민주주의, 인권 같은 것이다.(…) 현대 한국은 정치적, 사회적, 심리적으로 광주에 빚졌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광주가 흘린 피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연고 구단인 기아 타이거즈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우승도 ‘광주’를 배경으로 빛을 발했다.
프로야구의 탄생 자체가 80년 광주항쟁을 무력 진압한 전두환 체제의 왜곡된 유산임은 모르지 않지만, 역설적으로 그 시절 호남인들은 타이거즈의 질주 현장에서 그나마 포효할 수 있었다. 그 응어리진 한의 해원구가 무등경기장이었던 셈이다.
“광주,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아픔을 야구로 극복한 도시”라는 중계 캐스터(MBC 한명재)의 멘트는 이같은 시대적 서사를 통찰한 것이어서 울림이 컸다.
전국화·세계화를 위한 ‘무장’
광주를 위시한 이 땅의 민주 시민들이 숱하게 외쳐온 5·18의 전국화·세계화가 이렇게 한걸음 진전되나 싶어 가슴이 뛰는 한 해다.
민주와 인권, 그리고 대동의 광주 정신의 확산을 외쳐온 게 수십 년인데, 메아리 없는 광야에서 지쳐갈 무렵에 출현한 메가폰 든 예언자의 외침이 명징하다. ‘소년이 온다’.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이유를 보며 느낀다. 소년이, 멈추지 않는 움직임이, 또 한 걸음 ‘광주 밖’으로 다다랐다는 것을(…).” (본보 ‘작은책방 우리책들’ 중 /호수)
독일 통일의 초석을 놓은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동방정책으로 그 물꼬를 튼 선각자였다.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는 것보다는 작은 발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낫다”.
그는 상대방 체제 인정, 교류·협력 등 통일을 말하지 않는 통일 정책을 펼쳤다.
‘털신을 신은 작은 발걸음’으로 명명됐는데, 훗날 동독 인사들이 “탱크보다, 대포보다 훨씬 위협적이었다”고 술회한 정책이다.(협상의 전략 중·김연철 저)
‘광주’ 정신의 전국화·세계화가 문학과 스포츠의 힘으로 탄력받은 지금, 되새겨보게 되는 ‘예언자’다.
그러나 한편, 마음이 무겁다. 채 ‘무장’하지 못한 광주시의 빈틈이 커 보여서다. 5·18기록관에는 영어 등 외국어 안내가 없고, 헬기사격 명확한 증거가 남아 있는 전일빌딩245엔 외국어가 잘못 표기돼 있거나 안내 자체가 없는 경우가 다수라고 하니 말이다. (본보 8일자 보도 <‘5·18’ 외국어 설명 막막…세계화 걸림돌>)
털신을 신은 작은 발걸음을 가로막는 ‘돌멩이들’이 다. 서둘러 치우시라!
채정희 편집국장 goodi@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