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한파가 몰아치려는지 날씨마저 추운 11월, 수능철이 돌아왔다. 해가 뜨자마자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등교하는 고3 학생들의 누런 얼굴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수능 날짜가 다가올수록 불안해하며 잠을 설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잦은 위장병과 두통으로 병원을 오가는 학생들도 적지 않아 부모들의 마음도 무겁다.
학생과 부모가 함께 ‘고3병’을 앓으며 집단적으로 우울감을 겪는 이 모습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나 영포자(영어를 포기한 자)가 되어 “될 대로 되라”며 포기하는 학생들을 보며 마음이 짠하다. 기성세대도 아닌 청소년들이 ‘포기’라는 자조적인 말을 내뱉는 현실은 우리 어른들의 책임인 듯하여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단순 시험 넘어 사회적 병폐…
한국 사회에서 대학 입시는 단순한 시험을 넘어선 사회적 병폐가 되었다. 모든 학생이 대학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경쟁하고, 공교육 시스템마저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변질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부모들은 학습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사교육을 선택하고, 거대한 사교육 시장이 형성되면서 경제적 부담이 가중된다. 이러한 불안과 초조함은 아이들이 자발적 학습보다는 일방적인 경쟁을 추구하게 만든다.
11월 14일은 수능일이다. 수험생이 없어도 수능일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학교는 휴교하고, 출근 시간도 늦춰지며 심지어 항공기도 운항을 멈출 정도로 온 나라가 수능이라는 행사에 맞춰 움직인다. 이 상황은 한국 사회에서 입시의 중요도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수능 당일은 단순한 시험이 아니라, 국가적 행사로 여겨지며, 초중고 12년간의 교육이 그 하루에 모두 걸려 있다. 이는 한국 입시 제도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잘 보여준다.
입시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이러한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학 입학 전형 간소화, 절대평가 확대, 공교육 강화 등이 논의되고 있으나, 실질적인 진전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교육 의존도를 낮추고 학생들이 학교 내에서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학업 부담과 수면 부족으로 우울감을 느끼고 심지어 자살 충동을 경험하는 학생들이 늘어가는 것은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사회 문제다.
‘성적순 입시’ 근본 틀 개선해야
근본적인 해결책은 획일적인 입학시험이 아닌, 학생들의 다양한 경험과 흥미를 반영할 수 있는 입학 절차를 도입하는 것이다.
학교 내 활동, 사회활동 이력, 연구 활동 등을 바탕으로 한 입시 시스템을 도입하여 학창 시절을 더 풍요롭게 보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대학도 시험 중심의 입시를 넘어 포트폴리오, 에세이, 사회 활동 등을 통해 지원자를 선발하는 개방적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고3 2학기가 비어 있는 현상은 기형적인 입시 중심 사회가 초래한 결과다. 고3 학생들이 마지막 학기를 그저 대기하며 보내지 않도록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 예를 들어, 고3 2학기를 ‘사회 준비 학기’로 지정해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에 맞는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자. 지자체나 기업과 연계한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을 통해 직업 체험과 단기 인턴십을 제공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19세 청소년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
앞으로는 입시의 무게에 짓눌린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 자리 잡기를 바란다. 학생들의 행복을 고려하지 않는 교육 제도는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라는 구호를 다시 한번 되새기며,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꿈꾸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때이다.
김경희 광주참교육학부모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