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타운 ‘독불’ 입대의 회장의 최후

올해 창간 20주년 특집 중 하나로 광주드림은 역대 취재기·뒷얘기를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그때’ 광주드림에 실려 지역사회 큰 파장을 일으켰던 기사들이 어떻게 작성됐는지 이면을 알려주는 읽을 거리입니다. 독자들에게 제공된 정제된 기록으로서 기사가 아닌 ‘비사’라 할 수 있는 정황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것입니다. 한 편의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해당 기자들이 감당한 수고의 일단도 느껴볼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취재기자 관점에서 정리한 기록은 2018년 본보가 출간한 ‘호랑이똥은 멧돼지를 쫓았을까-광주드림 취재기’ 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무더운 날씨에도 관리사무소 앞에 모인 주민들. 그 앞으로는 “도장공사 내역 및 시공업체 공개하라” “아스콘 공사 내역 및 시공업체 공개하라” 등의 현수막이 나붙어 있었다.

 2012년 6월 4일, 강경남 기자가 처음으로 북구 율곡타운(아파트) 주민들의 집회 현장을 찾았다. 당시만 해도 단순한 아파트 관리주체(입주자대표회의, 관리사무소)와 주민들간 갈등인 줄 알았다.

 집회에 나온 주민들 대부분은 60~70대 고령의 노인들이었다. 이들의 요구는 분명했다. “아파트 관리 및 운영에 관한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라.”

 집회가 열리기 전 이미 주민들은 비상대책위원회까지 꾸린 상태였다. 거기다 법원에 입주자대표회의(이하 입대의) 회장을 상대로 업무정지 가처분 신청까지 했다.

 취재를 시작하자마 심상치 않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 아파트 입대의 회장이 무려 10년 이상이나 ‘회장’ 자리를 독차지해왔다는 점이었다. 그런 가운데 당시 이 아파트에선 도장, 주차장 차단기, 도로 아스콘, 테니스장 주차장 등 크고 작은 공사들이 진행됐는데, 이 공사비 집행과 운영 과정의 불투명성, 비리 의혹을 주민들이 제기했다.

 주민들이 일례로 든 게 아파트 입구에 설치된 돌비석이었다.

 “아파트 명칭이 두암 주공 1단지에서 ‘율곡타운’으로 변경되고 입구에 돌비석이 설치된 거예요. 이게 장부상 기록된 공사대금은 2750만 원이거든요. 그런데 전 입대의 감사가 공개한 금액은 2250만 원이라는 겁니다. 500만 원이나 차이가 난 것이죠.” 주민들은 강 기자에게 미심쩍은 대목들을 고발했다.

 강 기자는 직감했다. “이거 쉽게 끝나지 않겠구나.” 이날 집회 막바지, 주민들이 관리사무소로 쳐들어갔다. 하지만 관리사무소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문 열어. 왜 못열어?” 관리사무소엔 사람이 있었다. 출입문에 색깔이 입혀져 잘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 일하는 직원이 비쳤다.

 대화를 거부한 관리사무소와 입대의 회장을 상대로 한 주민들의 전쟁이 본격화됐다.

 이때부터 강 기자는 율곡타운을 제집 드나들듯 다녔다. 당시 싸움을 이끈 것은 두암동 통장을 맡고 있는 입주민 김모 씨.

 그는 강 기자에게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아파트 내부의 문제를 하나하나 제보했다. 자연스럽게 율곡타운 문제를 다룬 ‘시리즈’가 이어졌다.

 “어떻게 특정 개인이 입대의 회장을 10년 넘게 할 수 있는 건가요?”

 강 기자는 가장 의문스러운 점을 파고들었다.

 특히, 이 아파트는 총 1068세대가 거주하는 대단지였다. 걷히는 관리비나 시설 규모를 볼 때 입대의 회장 자리는 ‘권력’에 다름아니었다.

 취재 결과, 강 기자는 장기 집권의 배경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율곡타운 아파트 동대표 선출과 입대의 구성을 위한 선거부터 문제가 있었다. 주민들의 무관심, 선거 부정이 겹쳐 특정인의 ‘장기 집권’이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파트 자치라는 게 관심을 갖지 않으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제대로 공고도 붙지 않아요. 경비원들이 종이 몇 장 들고 다니면서 ‘동그라미 해주쇼’하는 식으로 투표가 진행됩니다.” 주민들이 강 기자에게 털어놓은 진실이다.

 견제와 감시가 허술한 사이를 편법이 파고든 것이다. 이는 다시 ‘비정상적인 아파트 운영’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주민들이 이 같은 비정상적인 사례로 제시한 것 중 하나가 주차장 차단기였다. 율곡타운 비상대책위원회가 제시한 자료를 보니 2009년 11월 주차장 차단기 설치 이후 관리사무소가 차단기 훼손을 명목으로 걷은 금액이 1790만 원에 달했다.

 강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관련된 진술을 들었다.

 “2010년 6월 저녁,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율곡타운)에 왔다가 차단기를 들이받은 적 있어요. 그때 차단기가 약간 휘어졌거든요. 그런데 관리사무소에서 수리비로 260만 원을 요구하는 거예요. 할 수 없이 변상해줬죠.”

 율곡타운에 잠깐 들렀다가 사고(?) 친 한 시민의 주장이다.

 입주민들의 하소연도 비슷했다. 살짝 부딪혔는데 몇십 만 원의 수리비를 냈다는 것이었다.

 “주차장 차단기 수리에 그렇게 많은 돈이 들까?“ 강 기자는 관련 업체에 문의해봤다. “막대만 교체하면 10만~20만 원이면 되는데요.”

 “관리사무소가 과도한 수리비를 청구했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의혹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입대의 회장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청소·경비, 거래 업체 관계자 등에 보험 영업을 했다는 것이었다.

 강 기자는 당시 비대위의 협조를 받아 입대의 회장과 거래를 시도했던 업체 관계자의 증언을 청취했다. “입대의 회장이 요구해 보험에 가입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바로 관련 의혹을 인정했다.

 이전에 율곡타운에서 근무한 직원들도 같은 증언이었다. “(회장이)보험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 들어달라는 요구가 있었죠, 안 할 수 없어요. 울며겨자먹기 심정으로 보험에 가입했어요.”

 한 청소 노동자의 증언은 더 기막혔다. “휴대전화하고, 건강식품도 판매했어요.”

 주민들이 제기하는 여러 의혹과 관련, 관리사무소에 해명을 요구했다. 이때마다 관리사무소 측은 “연락을 주겠다”며 회피했다. 입대의 회장과도 연결이 쉽지 않았다.

 “말 안할 지 알면서 왜 또 전화했냐?” 어렵사리 연결된 회장은 강 기자에게 핀잔을 주기도 했다.

 율곡타운 문제 집중 보도 후 한달여쯤이다. 경찰이 율곡타운 입대의 회장이 직위를 이용해 보험 영업을 한 것 등과 관련해 공갈 혐의로 수사에 나섰다.

 보도로 율곡타운 문제에 대한 지역사회 비판 여론이 커지고, 수사까지 본격화되자 입대의 회장은 2012년 7월 말 비대위 측에 “주민들에게 사죄하고, 회장 자리에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이에 비대위가 방송을 통해 주민들을 소집했고, 입대의 회장은 이 자리에서 주민들에 사죄하고, 사퇴서를 냈다.

 10년 넘도록 독단적으로 아파트를 운영해 온 독재권력의 최후였다.

 강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가장 아쉬워 했던 건 입대의 회장을 직접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워낙 취재를 회피했기 때문이다.

 아, 한 번 있었다. 발신번호 표시 제한으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심한 욕과 함께 바로 끊어졌다.

 채정희 기자 good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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