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방 우리책들] 노인과 소년(2017·작가정신)

 혼란한 정국, 막막한 시국이었다. 12월 3일부터 많은 사람이 밤잠 못 이루며 나라의 불침번을 섰다. 윤석열 탄핵, 윤석열 퇴진이라는 깃발 아래 모여 하나의 메시지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우글우글 하늘에서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반짝이며 모였다. 그리고 마침내, 12월 14일, 탄핵 소추안이 국회 임시회에서 가결되었다. 하늘로 풍선이 날아가고 응원봉이 빛나고 사람들은 다음 단계인 헌법재판소에서 보자며 서로를 응원했다. 마침내 쥐게 된 하나의 승리였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안다. 이 깃발이 어떤 사람들은 배척하고 어떤 사람들은 없는 셈 치며 펄럭여 왔다는 사실을. 나중에를 외치며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럼에도, 그 모든 밀려난 사람들조차 이 깃발 아래 모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도저히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서도 안되는 그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싶은가?’. 박완서의 글에 김명석이 그림을 그린 <노인과 소년>(2017, 작가정신)은 이 질문에 답한다. 노인과 소년은 새로운 고장으로 들어서기 위해 걷고 있다. 자리잡은 곳에서 떠나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것이다.

 노인은 지혜로운 얼굴로 소년을 이끌고, 소년은 낯설음을 느낀다. 두 사람은 ‘살던 땅을 잃고 새로운 땅을 찾아 헤매고 있는 중’이다. 그들이 살던 고장에서는 무시무시한 전염병이 돌아 모든 생명체가 죽고 말았는데, 노인은 ‘심장이 너무 딱딱해서’, 소년은 심장이 ‘너무 무구해서’ 차마 전염병이 침범치 못했다고 말한다.

 이미 여기서부터 나는 광장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번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기 전까지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조합이었다. 386세대, 그리고 대표적으로 2030 젊은 여성들이 이번 시위의 두 축을 담당했다. 속칭 ‘운동권’으로서의 빛과 어둠을 전부 본 세대의 심장은 너무도 딱딱했고, ‘탈정치’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세대의 심장은 너무도 무구했다. 이 두 집단은 서로의 현재를 보며 자신의 심장이 얼마나 딱딱하고 무구한지 느꼈을 것이며, 앞으로 어떤 심장의 형태를 가지고 살아야 할지에 대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노인과 소년은 마침내 새로운 고장을 찾았다. 노인은 기쁨에 넘쳤지만 아이는 진입로에 딱 버티고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

 “할아버지. 전 이 고장이 싫어요.

 저 공장에서 솟아오른 연기가 할아버지도 보이시죠?

 할아버진 보실 수는 있지만 전 맡을 수가 있어요.

 저 연기 속엔 책 타는 냄새가 있어요. 고약해요.”

 (…)

 “그렇지만 아이야, 아직도 희망은 있다. 저 들과 산을 보렴.

 모든 곡식과 푸성귀와 나무가 얼마나 무성하게 자라고 있니.

 이 고장은 자연의 축복을 듬뿍 받고 있다.”

 <노인과 소년> 중에서.

 이 새로운 고장은 책을 태우고, 모든 먹을 것엔 조금씩 독이 들어있는 곳이다. 노인은 그 와중에도 이 고장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에 대해 말한다. 작은 희망들에 대해 말한다. ‘생각한 것을 저렇게 거침없이 얘기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곧 잘못도 바로잡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용인할 수 없는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이내 죄를 지어 도망치는 사람을 마주친다.

 “도대체 어떤 거짓말을 하셨소?”

 “감자를 감자라고 양파를 양파라고…….”

 “그게 어째서 거짓말이 돼요?”

 “우리 고장 임금님은 사물의 이름을 바꿔 부르기를 좋아하십니다.

 양파를 감자라고, 감자를 양파라고, 배를 사과라고, 사과를 배라고,

 그리고 모든 백성에게 임금님의 거짓말을 따라 하도록 엄명을 내립니다.

 그래서 감자를 감자라고 하면 거짓말이 되고

 감자를 양파라고 해야만 참말이 되는 거랍니다.”

 “맙소사. 가자. 아이야. 여긴 네가 살 고장이 못 되는구나.”

 <노인과 소년> 중에서.

 노인은 망설임도 없이 뒤돌아선다. 어둠과 고난이 있을 것이 뻔하더라도 안전한 담장 안 지붕 밑을 선택하지 않고 광야로 걸어나간다. 두 사람의 본 고장을 파괴한 전염병이 ‘포기하는 마음’이라면, 그들은 영영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여정을 계속하고 있는 것일테다. 노인과 소년은 조금 좋은 부분이 있다고 가만히 타협하지 않고, 어려움이 있어도 헤쳐나갈 수 있다고 희망을 찾으며, 그 희망이 있음에도 ‘한 사람이 자신만의 기준을 휘두르며 독재를 이어가는 상황’에는 희망마저 가치있는 것이 될 수 없음을 말한다. 그들은 어두운 광야를 가로질러 새로운 곳에 도달했을 때도 희망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자유 그 자체를 억압하고 있다면 곧바로 다시 광야로 걸어나가려는 수고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유로운 세상에서 희망을 찾으며 살고 싶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않고 싶기 때문이다.

 탄핵소추안은 가결되고 이제 헌법재판소의 판단과정만이 남았다. 풍전등화 같기도 한 승리 속에서 더욱 더 치열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싶은가.

 문의 062-954-9420

 호수(동네책방 ‘숨’ 책방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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