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 전반적 삶의 질 향상에 기여
“헌법상 규정 ‘국민경제 발전’ 매몰은 편협적”
지난번 쾌도난마 코너에 ‘한국 사회와 노벨과학상’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한 이후 지인들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받았다. 그동안 몇 차례 게재된 글에는 아무 반응이 없던 주변에서 노벨상에 대해서는 한마디씩 거드는 것을 보고 역시 한국 사회가 노벨상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
오늘은 그러한 의견을 하나씩 되새기면서 한국의 과학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선 지난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 획득에 실패한 선수들이 분해하거나 우는 모습 대신 자신을 다독거리면서 경기 자체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 사실을 언급하면서 한국 과학계도 이제는 조금 더 ‘쿨’해질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노벨상 자체에 너무 목매지 말고 자신의 과학 활동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노벨상은 연구의 결과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칼럼의 내용도 그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칼럼의 주장에 동의하지만 현실적으로 추진하기 쉽지 않은 이상적인 의견일 뿐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특히 작년 대폭 삭감된 정부의 연구개발예산이 올해 다시 회복되었다고 하지만 삭감의 직격탄을 맞은 젊은 과학자를 대상으로 한 신진 연구자 지원 사업이 줄어들면서 사실상 과학연구의 생태계가 이미 크게 망가졌다는 비판이었다. 필자도 당장에 기초과학의 진흥을 위해 씨뿌리기 전략에 기반한 새로운 정책이 쉽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얘기조차 하지 않으면 절대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암울한 정치 속에서 관련 정책이 요동치는 상황이지만 그럴수록 한발씩 차분히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강조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과학, 정부 지원 의존해야 하나?”와 관련
받은 의견 중 가장 놀라운 것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이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을 받았느냐며 과학기술자들이 정부 재원에 너무 의존하려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이는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과학에 대한 정부 지원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작가 한강은 지난 12월 6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한국에서 제2의 노벨상이 나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개인적인 거라서 사회에서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비해 과학은 현실적으로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영역 밖의 활동이 되었다.
2차 대전을 겪으면서 과학기술의 힘을 절감한 미국은 바네바 부시의 ‘과학, 끝없는 프론티어’ 보고서에 나타난 과학기술의 독립성, 정부 지원의 정당성을 토대로 과학정책을 세웠다.
이는 기초과학 활동에 대한 지원이 과학자들의 주도적 자원 배분을 거쳐 장기적으로 경제 발전, 복지, 안보 등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낼 것이라는 믿음에 기초했다. 이러한 일종의 사회계약은 1980년대 이후 국가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과학자들의 독립성에 기대 국방·거대과학 중심의 공급 위주 과학기술 정책이 아니라 과학기술을 사용하는 사회를 중심에 놓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 속에서 경제적 성과의 목표를 더욱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지만, 기본적으로 현재 대부분의 국가는 자국의 과학기술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헌법 규정과 과학기술이 지니는 다양한 가치
정부는 국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며, 이의 핵심을 규정한 것이 헌법이다.
현재 대한민국 헌법 127조 ①항은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18년 각계에서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올 때 과학기술계 일각에서 이 조항의 삭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과학기술을 국민 경제의 발전에 연결시키는 헌법의 규정이 과학기술이 지니는 다양한 가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기초과학 연구에서도 경제적 가치를 고려해야 하는 현재 상황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에서였다.
결과적으로 헌법 개정이 실현되지 못하면서 과학계의 제안도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쳤지만, 당시 이 규정 삭제 요구에 대해 과학계 내부에서도 폭넓은 지지가 나오지 못했다. 이 조항이 빠질 경우 정부가 과학기술을 지원해야 한다는 근거가 사라진다는 현실적인 우려였다. 이러한 논란은 경제 및 산업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과학기술의 존재가치가 실제 과학기술의 다양한 가치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넘어선 논리가 과학기술자들에게 충분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사실 과학기술이 지니는 가치는 연구를 통한 경제 발전에의 기여 외에도 인간의 생명을 지켜주는 한편 교육이나 문화로서의 의미도 있으며, 앎의 지평을 넓혀주고 우리의 삶을 더욱 합리적으로 만들어준다는 사고방식으로서의 측면 등 매우 다양하다. 비록 지식을 넓히고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학문이 과학기술만은 아니지만 정부가 모든 학문 혹은 창작 활동을 다 지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당장 활용되거나 경제적 가치가 불확실한 기초연구를 정부는 왜 지원해야 할까?
전문적 훈련 받은 인력의 연구개발 지속 효과
무엇보다 분야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이미 과학은 개인적 활동을 넘어 상당한 정도의 투자가 필요한 활동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학이 현실적으로 사람들의 삶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고, 질병 치료의 가능성을 높임으로써 평균 수명을 연장해주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제공해서 사회발전에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비록 모든 과학기술이 그러한 가능성을 당장에 실현시킬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정부는 장기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지원을 하는 것이다. 소위 대박을 쳤다고 평가받는 다수의 연구개발이 처음부터 그러한 가치를 염두에 두고 이루어지지는 않았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본다면 정부가 과학기술을 국민경제 발전에서만 논의하는 것은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과학의 다양한 공공적 가치를 제한하는 일이다. 전문적 과학연구를 하도록 훈련받은 인력들이 그들이 익힌 지식과 기술을 이용해 관련 연구개발을 지속하게 하는 일은 경제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에 기초과학 연구를 위한 생태계 조성 정책의 의미가 있다. 또한 제한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현재 헌법에 들어있는 관련 조항도 손을 볼 필요가 있다.
문만용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 & K-학술확산연구센터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