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공연 위해 소녀상 위로 음향부스 설치
“행사 때문에 소녀상에 천막 쳐야하나” 지적
남구 측 “마땅한 장소 없어…다른 장소 찾겠다”

지난 24일 ‘양림 & 크리스마스 문화축제’ 공연 무대 설치로 남구 평화의 소녀상이 음향 장비들과 함께 천막 안에 있다.
지난 24일 ‘양림 & 크리스마스 문화축제’ 공연 무대 설치로 남구 평화의 소녀상이 음향 장비들과 함께 천막 안에 있다.

 광주 남구 양림동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이 크리스마스 축제 기간 무대 공연을 위해 설치된 음향 부스 안에 갇히면서 논란이 제기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고 이를 기억하기 위해 설치된 소녀상을 행사 진행을 위해 천막 안에 가두는 것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는 지적이다.

 남구에서는 지난 2일부터 한 달여 간 양림동 일대에서 ‘양림 & 크리스마스 문화축제’를 개최했다. 이는 양림동 주민들과 남구 기독교 교단협의회 등이 참여해 준비하고 있는 축제로 매년 겨울마다 열리고 있는 축제다.

 축제로 인해 양림동 일대는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를 비롯해 빛을 활용한 다채로운 조형물들로 꾸며졌고 특히 축제 하이라이트 시기인 24일과 25일은 크리스마스 캐럴과 합창 등 각종 공연을 위해 양림오거리~천변 입구(금교) 구간 도로가 통제됐다.

 펭귄마을 입구 부근엔 대형 무대가 설치됐고 평화의 소녀상이 있던 곳엔 음향 부스가 설치됐다. 각종 공연이 이뤄진 24일부터 25일 이틀 동안 소녀상은 마이크 스탠드와 같은 음향 장비 등과 함께 검은 천막에 뒤덮여 자취를 감춰야했다.

 이같은 상황을 본보에 제보한 A 씨는 “오랜만에 양림동에 놀러갔다가 소녀상이 행사 천막 안에 음향 장비들과 같이 가둬진 모습을 보게 됐다”며 “평소 그 자리에 있었던 소녀상이 안보여 설마하고 천막을 열어봤는데 너무 충격이었다. 크리스마스 행사 때문에 굳이 소녀상에 천막을 쳤어야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광주 남구 양림오거리 일대. ‘양림 & 크리스마스 문화축제’ 공연 무대 옆 평화의 소녀상이 있던 자리에 음향부스가 설치돼있다.
지난 24일 광주 남구 양림오거리 일대. ‘양림 & 크리스마스 문화축제’ 공연 무대 옆 평화의 소녀상이 있던 자리에 음향부스가 설치돼있다.

 남구 평화의 소녀상은 지난 2017년 8월 14일 세계 위안부 기림의 날을 맞아 제막했다. 이 시기 광주 5개 자치구에서 모두 소녀상을 설치했으며, 남구 소녀상은 일제시대 광주 3·1 운동을 이끌었던 ‘수피아여고’가 있고, 호남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던 양림동의 의미를 살려 펭귄마을 입구에 세워지게 됐다.

 보통의 소녀상들과 달리 할머니와 소녀 두 인물이 나란히 선 형태인 남구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상징적인 인물인 故 이옥선 할머니를 모델로 하고 있다. 할머니의 꽃다운 16세 소녀 시절과 92세 당시 모습을 나란히 배치한 소녀상은 과거와 현재가 결코 분리될 수 없고 연결돼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소녀상 손등 부분에는 나비를 새기고 LED 조명을 넣어 역사의 영원성을 나타냈다. 남구 소녀상을 제작한 이이남 작가는 이에 대해 “소녀의 손등 위에 내려앉은 나비는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희망을 상징하고 소녀상 아래로 새어 나오는 빛은 소녀상 건립에 힘을 모은 이들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소녀상을 신성시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소녀상에 대해 국민들이 공유하는 정서가 있기 마련인데 아무리 공간적 제약이 있었다 한들 그렇게 설치한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며 “소녀상이 아닌 다른 열사들의 동상이 있었다고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남구는 해당 구역이 크리스마스 행사 뿐만 아닌 다른 행사에서도 무대 설치가 잦은 곳이고, 그때마다 음향 부스를 설치할 자리가 마땅치 않아 소녀상에 설치해왔다고 밝혔다.

 남구 관계자는 본보와 통화에서 “양림동 일대에서 행사나 축제를 많이 하는데 보통 오거리에 무대 설치를 많이 한다”며 “근처에 잔디 있는 곳이 적고 음향 부스가 마땅히 들어갈 장소가 없어 항상 소녀상에 천막을 치곤 했는데 시민 분들이 보시기에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면 앞으로 그곳은 비워두고 다른 장소를 찾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시연 기자 youn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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