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진영, 반공과 ‘호남편견’ 기대던 시절 오래전 끝나
#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에 대한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이 경호처의 저지에 막혀 무산됐다. 대통령실 경호처 책임자들은 즉각 경찰에 고발됐다.
최근의 한국 상황은 민주주의 선진국에선 볼 수 없는 장면이어서 외신도 연일 주요 뉴스로 취급 중이다. 아시아 최선두 ‘민주주의 모범국’에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투다.
최고 지도자에 대한 수사와 탄핵, 축출은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아 쿠데타와 권력형 부패가 잇따르는 중남미와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나 일어나는 사건이다.
미국과 유럽의 외교가에선 아마도 2년 전 발생한 ‘페루 정변’의 기시감이 들 것이다. 당시의 페루와 지금의 대한민국,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톺아보자.
# 2022년 12월 7일 페루 대통령 페드로 카스티요는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의회를 해산하고 비상정부를 수립, 헌법 개정 전까지 대통령령으로 통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친위 쿠데타 시도였다.
그 직전, 페루 야권은 대통령과 측근들의 불법적 영향력 행사 의혹과 '도덕적 무능', 경제 정책 실패, 연이은 식량과 에너지 물가 상승 등의 이유로 탄핵을 추진했다. 페드로 카스티요의 계엄과 의회 해산은 이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1992년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와는 달리 실패로 끝났다. 당시 페드로 카스티요의 지지율은 30%대에 불과했고 정무 감각이 서툴러 여당인 ‘자유 페루’와의 관계도 틀어졌던 상황이었다.
그 결과 다섯 시간 만에 의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돼 카스티요 대통령은 파면됐고 볼루아르테 부통령이 그 뒤를 이음으로써 친위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다. 의회의 탄핵 시도에 계엄령을 발동하고 의회를 무력화 시키려다 스스로 자폭한 것이다.
카스티요는 탄핵 가결 직후 법원에서 체포영장까지 나오자 가족과 멕시코 대사관으로 도주하다 경찰에 체포됐다.
카스티요는 구금 직후 탄핵 반대 시위를 벌이는 지지자들을 향해 메시지를 냈다. 직접 손으로 쓴 편지에서 자신이 여전히 페루의 대통령이라면서 신임 대통령이 권력을 빼앗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편지에서 자신을 ‘16개월 전 국민 여러분이 공화국 헌법에 따라 대통령으로 선출한 바로 그 사람’이라고 언급하며 자신은 국민에 의해 정당하게 선출된 대통령임을 부각시켰다.
이어 자신은 "굴욕당하고 고립되고 학대받다 '납치'됐지만, 여전히 주권자 국민 여러분의 믿음과 투쟁이라는 옷을 입고 있다"면서 "게다가 우리 선조들의 영광스러운 영혼까지 깃들어 있음을 말씀드린다"고 썼다.
그의 '옥중 메시지'는 지지자들의 시위에 기름을 부었다. 알프레도 로드리게스 바욘 국제공항에선 시위대가 활주로 한복판에 타이어와 돌덩이를 가져다 놓고 타이어와 관제실에 불을 지르며 의회 해산과 볼루아르테 대통령을 성토하는 구호를 외쳤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일부 시민이 충돌해 1명이 숨지기도 했다. 볼루아르테 신임 대통령은 시위가 심각한 지역에 대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 병력을 투입했다.
내란 혐의로 아직도 재판 중인 그는 징역 34년 형을 구형받고 2년 넘게 교도소에서 구금 중이다.
# 12ㆍ3 불법 계엄에서부터 최근까지 이어지는 윤석열 대통령의 난행은 지난 대선에서 그를 지지했던 중도 유권자뿐 아니라 일부 보수층마저 등을 돌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암군(暗君)에 폭군, 혼군(昏君)이라는 탄식까지 나온다.
한남동 관저에서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감행된 5시간 반의 농성전은 한 정치세력의 법적 도덕적 파탄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일본 극좌의 궤멸 계기였던 ‘아사마 산장’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1972년 2월 19일부터 28일까지 일본 나가노현에 있던 문제의 산장에서 ‘세계 혁명’을 꾀하던 극좌파 ‘연합 적군’의 인질극이 벌어졌다. 사카구치 히로시를 비롯한 회원 5명이 산장 관리인의 아내를 인질로 잡고 10일 동안 틀어박혀 경찰과 대치하다 진압됐던 것.
총기 탈취 사건 등을 일으키고 도주하던 그들이 혹독한 사상검증 끝에 '총괄'이라는 명목으로 동료들에게 집단 린치를 가해 그중 12명을 살해했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전 일본은 경악했다.
리더인 모리 츠네오는 ‘나는 미쳐있었다’는 자기 비판서를 쓰고 1973년 1월 재판 도중 목을 매고 자살했다. 유서에는 "자기 책임 무거움에 절망... 스스로 사형 판결을 내리겠다"고 적었다.
이 사건은 전국에 흩어져있던 잔존 적군파의 대거 전향과 극좌파의 급속한 쇠퇴를 이끄는 등 전후 일본 문화 및 사상사에 굵직한 획을 그었다.
노벨문학상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의 1985년 연작 소설 ‘하마에게 먹히다’. 이 소설의 주인공도 아사마 산장 사건 생존자로 설정돼 있으며 이 작품으로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을 받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에 나오는 과격 혁명운동 집단 '여명'과 그들이 일으킨 모토스 호수 총격전 역시 이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지적이다. 아사마 산장 사건은 영화로도 다수 제작되는 등 일본 사회에 끼친 영향은 광범위하고 심대하다.
# 정국 안정을 위해 신속한 탄핵 판결을 원하는 대다수 여론과 탄핵 반대, 나아가 비상계엄 지지까지 외치는 극우 세력 사이에 갈팡질팡하는 여당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둘러싼 당내 갈등도 조만간 폭발할 시한폭탄이다.
국민의힘은 12ㆍ3 비상계엄이라는 불의의 충격을 받은 후, 탄핵을 반대하거나 되도록 판결을 지연시키려는 ‘동체착륙’을 시도하고 있다. 이대로 조금 더 미끄러져 가면 그 끝은 누구나 예측하듯 암울하다.
박정희 이후 맹목적 반공과 ‘호남 편견’을 양대 무기로 한세월 편하게 정치를 해 온 보수세력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지적 게으름에 대한 역사의 보복일까?
서구의 반유대주의나 미국의 블랙 차별은 종교와 피부색이라는 핑곗거리라도 있다. 보수층 일각의 호남을 향한 딱지 붙이기는 중세적 주술이나 고대 부족주의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다행히 6월항쟁과 민주화 이후 교양인의 증가로 그 시대착오적 ‘중얼거림’은 왜소해졌다.
대한민국 보수가 다시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선 우선 그 시큼하고 남루한 옷부터 벗고 현대적 결사체로 탈바꿈해야 한다. 이미 우리 사회 주류도 아니지 않은가. 보수가 바뀌면 긴장한 민주당도 진화할 것이다.
PS : 페드로 카스티요 페루 전 대통령과 내란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은 둘 다 정계의 아웃사이더 출신으로 대선에서 1%p 미만 차로 신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카스티요가 친위 쿠데타를 시도하다 탄핵 된 날은 윤 대통령의 1차 탄핵소추 표결이 있던 날로부터 정확히 2년 전이다. 우연치고는 묘하다.
서울본부장 겸 선임기자 kdw34000@gjdream.com

'내란 수괴'라는 법적 용어가 지난 2020년 법무부의 한글화 용어변경 개정으로 인해 '내란 우두머리'로 바뀌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