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이 만난 사람] ‘카페처럼 리모델링’ 박신옥 헌혈의집 충장로센터장
‘모임도, 휴식도 가능’ 센터 2층 ‘나눔 월드’ 이용하세요
재난은 늘 예고 없이 온다. 갑작스런 불의의 사고에 가족, 지인이 긴급히 수술대에 오르는 아찔한 상황에 맞닥뜨리곤 한다. 수혈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삶을 이어갈 소중한 기회도 박탈당한다. 목숨이 오가는, 분초를 다투는 의료 현장에서의 혈액 수급은 그래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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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중차대한 현실에 늘 노심초사하는 곳이 광주전남혈액원이다. 이중 광주 도심에 위치한 헌혈의집 충장로센터는 그 중심에 있는 곳 중 하나다. 충장로센터는 지난해 8월, 리모델링을 통해 새단장을 마치고 새출발했다. 최근 급감하는 헌혈자 수를 회복하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1초의 찡그림’. 잠깐의 고통으로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데 고군분투하는 ‘헌혈의집 터줏대감’ 박신옥 충장로센터장을 만나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2005년 개원한 광주전남혈액원 헌혈의집 충장로센터는 헌혈자에게 인기가 높은 장소다. 광주 도심 한복판에 위치해 있어 한때 연간 헌혈자 수가 4만 명(2015년)을 웃돌아 전국 3위 안에 들 정도였다.
하지만 2017년 기점으로 헌혈자 수가 서서히 줄기 시작했다. 메르스와 이어진 코로나19사태가 직격탄이었다. 지난해에는 경기 침체, 의대 증원에 따른 의료 파행 사태와 맞물려 헌혈자가 1만 7000여 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매년 연말이면 헌혈자 수가 줄어든다고 하지만, 이전과 비교했을 때 그 속도가 가팔라 헌혈 수급 차질을 우려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10년 전 4만 명→1만7000명 헌혈자 급감
헌혈자 연령대도 편중돼 있는 불안감도 크다. “센터를 찾는 헌혈자 40% 이상은 10~20대일 만큼 젊은 세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박 센터장은 말한다.
박 센터장은 “가까운 조선대 등 인접 학교가 방학에 들어가면 센터의 헌혈 수급량에 영향을 줄 만큼 젊은 세대의 헌혈 비중이 압도적”이라며 “소규모 지역사회 단체와 협약을 맺어 헌혈 공백을 메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민이 언제든, 편하게 방문해 헌혈할 수 있도록 공간 자체의 중요성도 무시할 수 없다. 충장로센터가 최근 새로운 모습으로 리모델링한 것도 이의 연장선이다.
지난해 8월부터 두 달(8월 1일~10월 16일)에 걸쳐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세련된 모습으로 새 단장했다. 상시 근무자 6명이 있는 충장로센터는 문진실 2개실을 보유하고, 12명이 동시에 채혈 가능한 채혈 침대를 비치해 오래 기다리지 않고 헌혈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췄다.
138평의 충장로센터는 리모델링 전과 규모는 같지만,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이 있다. 그건 바로 2층에 마련된 휴게공간이다. ‘나눔의 월드’로도 불리는 이곳은 카페처럼 채광이 좋은 콘셉트로 꾸몄다. 가족 단위로 놀러온 시민들이 한켠에 마련된 마련된 의자에서 헌혈 캐릭터 ‘나눔이’와 기념 촬영도, 카페처럼 여유롭게 바깥을 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이처럼 충장로센터는 2층을 ‘헌혈자 전용 네트워크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박 센터장은 “가까운 학교(조선대 간호학과 학생회)나 지역 사회 단체(ABO 사랑나눔, 충장동통장협의회, 금남로 지하상가 상인회)와 협약을 맺고 단체가 2층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면서 “헌혈도 하고, 지역 소모임 활동도 할 수 있는 일석이조 효과를 활용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50회, 100회 이상 헌혈해온 유공자를 위한 행사도 진행하는 등 공간 활용도를 넓혔다.
헌혈에도 ‘정년’이 있다. 만 70세 미만까지다. 또 혈액관리법에 따라 연간 2160cc 이상 헌혈은 어렵다. 센터는 혈액 주기도 엄격히 관리하는데, 전혈은 연간 5번, 혈장은 2주마다, 혈소판은 1년에 20번까지 가능하다.
헌혈은 내 건강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표이기도 하다. 실제로 헌혈 정년을 넘기 전에 헌혈하러 많은 어르신이 센터를 찾는다. 노인대학을 다니는 65세 무렵 되는 어르신들까지 다양하다.
‘의료 파행’ 여파 병원 의료진 직접 와 헌혈도
박 센터장은 “예전엔 바로 번호표만 뽑고 기다리면 됐지만 지금은 전자문진을 할 때 전화번호와 이름을 적어야 돼 어르신들은 가끔 개원 초기 그때가 좋았다고 말하곤 한다”며 웃었다.
헌혈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오랜 기간 헌혈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나이가 60대 황혼에 접어들었지만, 지금도 젊은 사람처럼 헌혈하러 온다”는 어르신이 박 센터장에겐 그래서 특히 더 기억에 남는다.
그는 “500회 이상 헌혈을 한 어르신은 바쁜 업무로 직원들이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있을 때면 ‘김치 먹으며 힘내라’며 김장 김치를 건네 줄 만큼 엄마 같은 소중한 분”이라며 회상했다.
늘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작년에는 의대 증원에 따른 의료 파행으로 화순전남대병원 주치의가 센터를 직접 찾아 헌혈하거나, 환자가 아드님을 데리고 와 헌혈할 만큼 혈액 수급에 애를 먹었다.
박 센터장은 “지난해 헌혈 재고량이 완전히 낮진 않았지만, 전공의 파업으로 인한 여파가 있어서인지 직접 병원 의료진이 헌혈할 만큼 상황이 잠시 안 좋았던 적도 있었다”며 “직원 모두 긴급한 의료 현장에 혈액을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선진국이 인공혈액을 만든다고는 하지만, 상용화까진 길이 먼 상황에서 여전히 시민들의 자발적인 헌혈은 중요하다고 박 센터장은 입을 모은다.
박 센터장은 “‘1초의 찡그림’이란 말이 있다. 잠깐의 고통만 넘기면 더 큰 보람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일어나선 안 되지만, 누구나 큰 사고를 겪을 수 있다. 수혈이 필요한 사람이 어느 날 내 가족이 될 수 있단 생각은 가끔은 해줬으면 한다”며 “건강한 컨디션으로 부담 없이 센터를 찾아 헌혈에 동참해 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최문석 기자 mun@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