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구단, 언제까지 지속될까?
‘김피디의 비하인드캠’은 유튜브 ‘광주축구’, 광주FC 다큐 ‘2024 옐로스피릿’ 제작자 김태관 PD가 광주FC에 관한 생생한 현장 소식과 그라운드 너머의 흥미진진 뒷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만국 공통어 ‘축구’가 빚어내는 다채로운 재미와 감동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신개념 축구, 킹스월드컵 아시나요?
최근, 이탈리아에서 열린 킹스 월드컵 2025는 축구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 줬다.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과 FC바르셀로나의 레전드 ‘제라르 피케’가 창시한 이 대회는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생중계되고, 1분마다 각 팀에 선수가 추가되어 7:7까지 늘어난다. 감독이 패널티킥을 찬다든지, 더블(2점) 골을 만드는 등 파격적인 경기 규칙을 도입해 축구의 재미를 극대화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박지성 단장, 이강인 홍보대사, 축구 유튜버 감스트가 감독을 맡아서, 은퇴한 프로 선수 중심으로 팀을 이뤄 참가했다.
한국은 브라질과 페루를 상대로 연달아 패하며 예선 탈락하고 말았지만, 팬들의 반향은 기대 이상이었다. 킹스 월드컵은, 높은 운영 비용과 정체된 성장세, 그리고 인구 감소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한 11대11 축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광주처럼 경기장 건설, 잔디 관리, 선수단 운영 등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시민구단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지자체로선 한 번쯤 관심을 가져볼 만한 대회였다.
변화의 바람, 축구에도 불어오다
축구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스포츠다. 하지만, 세대가 거듭될수록 그 소비 방식이 바뀌고 있다. 실시간 TV보다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중계를 시청하거나, 10-20대 여성 중심의 저관여 팬이 증가하는 추세가 이를 뒷받침한다. 비단 축구만 그런 게 아니다.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길거리 농구, 어릴 적 손 야구를 연상케 하는 ‘베이스볼 5’와 티볼, 파크 골프 등 기후 위기, 인구 감소, 콘텐츠 산업의 발달 등 ‘라이프 스타일’ 변화에 대응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구기 종목 전반에 일고 있다. 생각해 보면, 1분 영상도 지루해하는 시대에 오랜 시간 땡볕, 눈, 비, 바람을 맞아가며 경기를 지켜보는 게 갈수록 쉬운 일은 아니다.
여자배구 즐거움, 축구 접목 상상
최근, 여자 배구 AI 페퍼스 경기를 직관하면서 다시 한번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실내 체육관이 주는 쾌적함과 즐거움에, 득점이 날 때마다 터지는 신나는 음악과 화려한 조명, 춤추고 노래하는 치어리더들… 마치 축제와 같았다. 이러한 재미와 편의성을 축구에도 접목할 수만 있다면 훨씬 더 많은 이들이 경기장을 찾을 것 같았다. 킹스 리그처럼 아예 새로운 리그를 선제적으로 도입할 수도 있고, 5·18 민주 광장에서 열리는 ‘아시아 스트릿 풋살 대회’ 예술과 축구를 함께 즐기는 ‘세계 아트 풋살 리그’ 등 엉뚱하고 발칙한 상상을 통해 독창적인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가뜩이나 시설과 재정이 열악해 곤란을 겪고 있는 데다, 구단의 혁신마저 지지부진해서인지, 잠깐의 상상이 무척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한편으론, 광주FC의 현실과 괴리된, ‘365일 활력 넘치는 스포츠 관광 도시’라는 구호가 자꾸 눈에 밟힌다. 지난 시즌, 광주FC에 과연 ‘시민’과 ‘지역’이 있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아주 간단한 사회 공헌 활동조차 거의 없었다. 광주만큼 경기 일정이 촘촘한 울산 HD가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것과는 무척 대조적이다. 지역 연고 개념도 희미해서 유스 출신 선수들도 타 구단 이적을 ‘탈출’처럼 반긴다. 구단의 홍보 마케팅도 지역 기관 및 소상공인들과의 상생에 소극적이다. 선수단 구성에도 지역 6개 대학 축구부에 대한 작은 배려(입단 테스트)조차 없다. 광주FC 최고의 스타로 꼽히는 이정효 감독만 해도 그렇다. 겨울 이적 시장에서 직접 밝혔듯이, 광주FC는 “좋은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구단”에 불과하다. 프로의 세계에서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당연한 논리로 셈하자면, 매년 15억 안팎의 연봉을 주고 고용한 이정효 사단이 떠나고 나면, 구단에 남는 게 하나도 없는 게 온당한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시민구단 존립 이유 되새겨야 할 때
감독이 떠나도 구단이 건재할 수 있도록 훈련 기법, 각종 경기와 선수 기록, 선수단 운영 시스템 등을 철저히 자산화하고, 유소년 팀과 공유해야 하는 거 아닐까. 매년 운영비로만 연간 110억을 시에서 지원받으면서도, 막상 지역 사회와의 접점이 많지 않으니, 체육계 안팎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올해부터 구단의 부족한 재정 확충을 위해 다양한 후원 제도를 시행할 계획이라지만, 과연 지역민들의 관심과 호응을 끌어낼 수 있을지, 갈수록 의문만 더해간다.
예전 대학 농구가 큰 인기를 끌던 농구 대잔치 시절 연세대 최희암 감독은 “연필 한 자루 만들어 본 적도 없는 니들이 이런 생산성 없는 공놀이를 할 수 있는 건 팬들이 있어서 가능하다"고 일갈했다. 비단 선수뿐만이 아니라 구단 모든 임직원도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성적, 흥행, 성과에 별로 큰 영향을 받지 않는 현실에 안주하려고 한다면 공놀이 방식도, 구단의 존립 형태도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올겨울, 구단 안팎의 문제로 주춤하는 사이, 새 시즌 개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아무쪼록 2025년에는 시민과 함께 꿈꾸고, 함께 만들어 가는 광주FC가 되길 바라본다.
김태관 P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