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삶]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평생 달고 다니는 동물, 바로 껍질 있는 달팽이다. 야! 그거 그냥 벗어버려. 엄청 편해! 민달팽이가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나오는 방법을 몰라. 그리고 그 후의 일이 너무 두려워. 결국 그렇게 또 서로 각자의 주어진 삶을 살 수밖에는 없다.
천명을 가지고 사는 일이 그렇게 어렵다. 달팽이는 그 껍질 때문에 보호도 받지만, 또 그것 때문에 죽기도 한다. 작은 새들에게 힘겨운 먹잇감이지만 큰 동물들은 그냥 깨버리면 그만이다. 그런데 다행으로 이 미끌한 달팽이를 식용으로 좋아하는 동물들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은가? 아! 프랑스 에스카르고! 그건 예외로 치자. 뭐 식용이 가능한 맛있는 달팽이 종류가 따로 있겠지! 일전에 유럽에 갔더니 민달팽이 한 마리 크기가 개구리만 한 것에 놀랐다. 정원의 화초 정도는 하루 식량감이라고! 아고! 달팽이도 이렇게 크면 농작물에 엄청난 피해를 주는 모양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대표 명주달팽이들은 조그맣고 귀엽기만 하다. 달팽이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자웅동체’라는 것이다. 그 작은 몸에 양성이 다 들어있다니! 어지러운 결혼 후 신랑도 신부도 공평하게 똑같이 알을 낳는다. 50여 개의 알은 홀로 부화돼 나와 다시 두 성을 한 몸에 품고서 부드럽고 연한 집이 차츰 단단해질 때까지 숨어 살다 어른 달팽이가 된다. 그래도 달팽이는 둥지나 집값 걱정 없이 평생(1년여)을 사는 나름 특권층들이다. 그리고 그 집은 가우디의 건축물처럼 누구나 탐나게 아름답다.
달팽이는 치설이란 1만 개 이상의 작은 이빨들을 가지고 있는데 세상에서 이빨 개수가 가장 많은 동물이다. 그리고 눈은 더듬이 끝에 잠망경처럼 높이 놓여있다. 그리고 스스로 부드러운 고속도로를 만들어 달려(?)간다. 그 첨단 점액질 고속도로는 면도칼 위에 놓여도 보행에 지장이 없을 정도다.
패닉의 ‘달팽이’란 노래를 한때 무척 좋아했다.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더 지치곤 해! 좁은 욕조 속에 몸을 뉘었을 때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내게로 다가와 속삭여줬어.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친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 평범한 것들은 이렇듯 힘겨운 현실에 가끔 큰 위안을 준다. 우리에게 달팽이가 필요한 이유도 아마 그걸로 충분할 것이다.
생물은 아무튼 다양해야 한다. 포식자도 있어야 하고 피식자와 분해자도 있어야 한다. 아름답고 못생긴 것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 어쩔 수 없다. 그래야 자연이 깔끔하고 지속 가능하게 유지된다. 버섯을 채취하는 초보분들은 독버섯과 식용버섯의 구별을 민달팽이가 먹느냐 안 먹느냐로 구별하기도 한다는데, 아니다! 달팽이는 독버섯을 먹어 그 독을 간직하기도 한다.
달팽이는 인간의 발명품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달팽이 집의 파보나치 나선구조는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매우 안정된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질어질한 나선형 계단을 끝없이 오르다 보면 마치 달나라에 이를 것 같다.
우린 은연중에 달팽이를 닮아가려 한다. 탱크도 달팽이, 잠수함도 달팽이, 비행기도 달팽이 등등. 평소 존경하는 생물학자 권오길 교수님의 ‘꿈꾸는 달팽이’란 책 서두에 이런 말이 있다.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슬퍼하지 마라. 꿈을 갖지 못했음을 슬퍼하라!’ 왠지 달팽이의 몽환적인 꿈에 푹 젖어 드는 말이다.
최종욱 (수의사)
▲달팽이( land snail, 와우蝸牛)
- 학명 : Acusta despecta(명주달팽이,korean round Snail)
- 분류 : 연체동물 > 복족강 > 병안목 > 달팽이과 > 우리나라에는 명주달팽이, 배꼽달팽이, 참달팽이, 각시달팽이, 민달팽이 등 35종 서식
- 크기 : 패각 지름이 평균 2~5cm, 높이는 약 2~6cm 정도 되고, 개체수의 80~90%정도를 명주달팽이가 차지
- 식성 : 풀이나 나뭇잎, 상추나 오이, 애호박, 당근 등 야채, 먹는 것에 따라 똥 색깔이 달라짐
- 수명 : 명주 달팽이의 수명은 약 1년이다
- 서식지 : 산림과 습지
- 번식 : 명주달팽이는 주로 한꺼번에 50~100개 정도의 알을 축축한 흙을 파서 안에 낳는다.
- 천적 : 딱정벌레, 개똥벌레, 늦반딧불이의 유충, 들새, 뱀이나 쥐, 또는 개구리, 초파리, 개미
- 달팽이는 자연의 소중한 구성원으로, 그들의 존재는 생태계의 균형과 생물 다양성에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