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부조화‘가 부른 자학...동화 같은 사대주의 ‘망탈리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적부심사가 예정된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적부심사가 예정된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 2016년 11월 11일. 박근혜 대통령이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와 첫 전화 통화를 나눴다. 대선 승리 하루 만에 축하 의사를 전한 것이다.

그러나 한 달 후인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됨으로써 두 사람의 만남은 끝내 성사되지 않았다. 한미 정상회담은 문재인 대통령 당선 한 달 뒤, 트럼프 행정부 출범 다섯 달 뒤인 2017년 6월에야 이뤄졌다.

8년 후인 2024년 11월 7일. 이번엔 윤석열 대통령이 트럼프 당선자와 통화를 했다. 두 사람은 덕담을 나눈 후 조만간 직접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 윤석열마저도 한 달여 후인 12월 14일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됐다.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한·미 간 공조는 또 상당 기간 공백을 감수해야 한다.

트럼트만 당선되면 한국 대통령이 탄핵되는 묘한 우연이 두 번이나 반복되고 있다.

# 명태균 씨는 ‘내가 구속되면 한 달 내 정권 무너진다’고 했다. 그런데 12·3 계엄 발표 불과 몇 시간 전, 윤 대통령 운명에 대한 또 다른 예언이 있었다.

이 예언자는 "윤 대통령 본인은 감히 나를 감옥에 보내냐 얘기할 수 있지만 감옥에 가는 건 확정적"이라고 말했다.

“우파 대통령들은요. 죽기 살기로 우리가 만들어놓으면요. 탄핵이나 당하고, 감방이나 가고 말이야. 나는 윤석열만큼은 안 그럴 줄 알았거든, 근데 이건 감방 확정이야, 내가 볼 땐 이건…”

예언의 주인공은 바로 전광훈 목사다. 작년 12월 3일 오전 10시 7분 생방송(전광훈 TV)에서 ‘신통력’이 나온 것이다. 계엄 선포 약 10시간 전이었다. 사실 그는 지난 대선 당시에도 엄청난 발언을 했었다.

“대통령은 되는데 그 다음에 감방 가는 걸로, 이렇게. 내가 그 옛날부터… 나는 이 기도를 많이 하기 때문에 이 신령한 꿈을 (성경의) 요셉이보다 더 잘 꿔요. 다니엘보다 내가 꿈을 더 잘 꿔요.”

전 목사는 지난 15일 윤 대통령이 자신의 예언처럼 공수처에 의해 체포되자 ‘국민 저항권’ 발동을 주장하며 “일주일 안에 데리고 나오자”고 호언했다. 선관위를 해체하고 우파 목사와 스님들이 선거를 관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는 국민의힘 김기현 전 대표 등으로부터 선지자라고 칭송 받으며 여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 중이다. 지난 4일 저녁 한남동 집회엔 윤상현·김민전·이철규 등 친윤계 의원 12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 목사는 최근 “감옥 가는 게 소원인데, 그러면 광화문 집회 주도할 사람이 없어 못간다”고 기염을 토했다.

또 "요즘 제게 생명을 던지겠다는 메시지가 수백통 왔다"며 "그래서 '지금은 때가 아니고 언제든지 죽을 기회를 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서 효과있는 죽음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윤 대통령의 좌충우돌 항전으로 12·3 내란 사태가 길어지고 있다. 그는 전 국민이 생중계로 목도한 현실마저 부정하고 소위 ‘대안적 사실’과 황당한 궤변을 내세우는가 하면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며 지지층을 선동한다.

부정 선거 음모론에 빠져 헌법과 법률을 무시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도 억울하게 단죄받는 피해자라는 중증 망상에 빠져 있는 듯하다. 안쓰러운 일이다. 급기야 지지자들은 20일 취임하는 트럼프 당선자까지 자신들의 몽환적 ‘현실 부정’에 끌어들이는 단계에 이르렀다.

‘리짜이밍(이재명)’ 배후에 중국공산당이 있고, 트럼프는 중공을 멸망시키기 위해 대통령이 된 사람이라 취임하자마자 한국의 부정 선거를 밝혀내 윤 대통령을 구출해 줄 것이란 얘기다. ‘윤석열 재림교’가 탄생한 것이다.

미-중 패권 경쟁과 트럼프 재집권에 따른 국제질서 변화를 조악하게 연결시킨 것인데, 이런 동화같은 판타지도 지지층 일부에겐 통한다.

태극기 부대가 성조기와 함께 트럼프 지지 세력의 ‘Stop the Steal’ 구호를 들고 트럼프가 즐겨 쓰는 빨간 모자를 쓰는 이유다. 비상계엄의 위헌성을 ‘친미 대 친중’ 구도로 바꾸려는 간계하고도 어설픈 프레임이다.

트럼프 측 인사로 알려진 매튜 슐랩 미국 보수주의연합 공동의장이 최근 윤 대통령을 만났다는 보도도 망상의 재료다. 이 면담은 트럼프 당선 이후 대미 네트워크 구축 차원에서 미리 잡힌 것인데, 윤석열이 탄핵안이 가결됐음에도 이를 강행한 것이다.

# ‘윤석열 재림교’는 탄핵 이후 ‘인지부조화’에 빠진 극우 세력을 중심으로 세를 넓히고 있다. 그 신도들에겐 ‘한미일 동맹’과 ‘반중’이 복음이다.

물론 한미일 동맹은 중요하다. 그러나 독도를 한국 영해로 선언한 슈퍼 반일주의자 이승만의 ‘평화선’과 카터의 ‘인권외교’에 반발, 독자적 핵 개발로 치달았던 박정희의 반미 자주국방 노선도 한 번쯤 돌아봤으면 한다.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는 일갈은 김영삼의 발언이었고 현직 대통령으로 독도에 가장 먼저 상륙한 주인공도 이명박이었다. 미-일의 견제를 뚫고 시진핑과 함께 천안문 광장에 서서 ‘항일전쟁 및 세계 반 파시스트 전쟁 승전 70주년 행사’에 참석한 대통령은 박근혜였다.

모두 현재의 국민의힘 전신 정당 지도자들이다. 오히려 해방 이후 한일 관계가 상대적으로 좋았던 때는 태극기 부대가 혐오하는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다. 평소 즐겨듣는 유튜브 내용과 좀 다르지 않은가?

순조 1년인 1801년. 충북 제천 토굴에서 서양 군함 수백 척과 수만 명의 군대를 보내 조선 조정을 굴복시켜 달라고 한 ‘황사영 백서’. 그 편지는 잔혹한 박해에 고립무원 상태에 빠진 한 천주교인의 단발마적 비명이었다. 시대적 한계에 좌절한 전도유망 선비에게선 연민이 느껴진다.

지금은 2025년이다. 멀쩡한 주권국 헌법과 법률에 따라 감옥살이하는 자국 대통령, 그를 꺼내달라고 외국 지도자에게 갈망한다? ‘윤석열 재림교’ 신도들의 자학적 사대주의 ‘망탈리테’(mentalité 정신 구조나 사고방식)는 훗날 어떻게 기억될까.

PS 1 : 요즘 몇몇 극우 유튜버들이 하루에 천만 원씩 벌 정도로 호황이란다. 선동만 하면 코인이 들어오니 괜찮은 직업이다. 심지어 대통령을 격발시켜 계엄까지 일으켰으니 대단한 분들이긴 하다. ‘부정선거론’에 진심인 태극기 어르신들은 엄동설한 아스팔트에서 ‘물밥’을 드시고 있다.

PS 2 : 극우 집회엔 태극기와 성조기가 등장한다. 그런데 간혹 나타나는 이스라엘기는 뭔가? 주로 기독교인이 흔든다는데 이스라엘 국민 중 기독교인은 불과 2%다. 더구나 그 나라 선조는 빌라도에게 예수를 죽이라고 소리쳤던 분들 아닌가. 한미일 동맹을 강조하는 의미에서라도 이스라엘기 대신 일장기를 드는 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하다.

서울본부장 겸 선임기자 kdw34000@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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