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곰순의 귀촌일기] (101) 2025년을 맞이하며

곰돌곰순은 한재골로 바람을 쐬러 가다 대치 마을에 매료되었다. 어머님이 다니실 성당이랑 농협, 우체국, 파출소, 마트 등을 발견하고는 2018년 여름 이사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마당에 작물도 키우고 동네 5일장(3, 8일)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막걸리에 국수 한 그릇으로 웃음꽃을 피우면서 살고 있다. 지나 보내기 아까운 것들을 조금씩 메모하고 사진 찍으며 서로 이야기하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 연재를 하게 되었다. 우리쌀 100% 담양 막걸리, 비교 불가 대치국수가 생각나시면 대치장으로 놀러 오세요 ~ 편집자주.

집 한쪽에 잠자고 있던 바둑판과 바둑돌을 꺼내어 먼지를 닦고 자리해 보았다.
집 한쪽에 잠자고 있던 바둑판과 바둑돌을 꺼내어 먼지를 닦고 자리해 보았다.

 2025년 을사년, 푸른뱀의 해. 뱀, 하면 아무래도 헉, 무시라~, 하는 놀란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운동이나 산책길에 아주 가끔 뱀이 지나가는 걸 보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섬뜩, 하니까요. 성경 ‘창세기’에도 뱀이 하와를 유혹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현실에서는 ‘뱀 공포증’이라는 말도 있지요.

 하지만 뱀은 긍정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전통 신화와 전설에 용이 되기를 꿈꾸는 뱀, ‘이무기’가 나오곤 합니다. 뱀이 천 년 동안 수행을 하면 허물을 벗고 용이 될 수 있다고 하는. 또 동양에서 뱀은 십이지신에 속하는 동물이기도 한데, 지혜와 통찰, 풍요와 번영, 윤회, 여생을 상징하는 의미라고 하지요.

 그런데 올해는 ‘푸른 뱀’의 해라고 하니, 뱀의 긍정적 의미에 ‘푸른색’의 의미가 더해졌습니다. 푸른색은 전통적으로 생명력과 성장을 상징한답니다. 긍정적인 뱀의 상징과 푸른색의 상징이 만났으니 ‘푸른 뱀’의 해인 2025년은 ‘지혜로운 기운이 강한 생명력으로 성장을 돕는다’는 의미가 만들어지겠지요.

 곰돌이는 새해를 맞이하여 집 한쪽에 놓여 있던, 먼지가 켜켜이 쌓인 바둑판을 꺼냈답니다. 먼지를 닦는 시간이 마치 수행자가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는 그런 시간이라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바둑판 뒷면. ‘이창호’ 친필 사인이 있다.
바둑판 뒷면. ‘이창호’ 친필 사인이 있다.

 소탐대실(小貪大失)? 부득탐승(不得貪勝)이라!

 작년 연말,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굵직했던 여러 일을 떠올리고 정리해 보았습니다. 아내와 말다툼과 감정싸움을 하기도 했던 일도 있었고, 가족간에 크게는 아니어도 여러 감정을 소모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직장 동료들과, 모임과 활동에서, 지인들 사이에서도 힘든 일들이 있었고.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 순간의 감정이, 최선이라며 했던 말과 행동들이 시간이 지나, 좀더 객관적인 눈으로 분석해 보면, 실은, 작은 일에 욕심냈고, 자존심을 지키려 했고, 작은 이익을 위해 그랬던 일이 대부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겉으로는 ‘우리’를 위한다면서.

 이런 걸 두고 바로,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 하지 않았을까. 작은 걸 탐내다 정작 큰 걸 잃어버린다는. 곰돌이 스스로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깊이 생각하다 보니, 이와 관련된 자료들이 있을까, 인터넷을 찾아보았답니다. ‘소탐대실’ 고사성어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네요.

 진 혜왕이 촉을 공격하려 했으나 촉으로 가는 길을 알지 못해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답니다. 그때 한 신하가 촉 제후가 욕심이 많은 걸 이용해서 공격하자고 제안합니다. 돌로 소를 만들어 비단으로 치장하고, 소가 지나간 자리에 황금을 쏟게 하여, ‘소가 금똥을 눈다’라는 소문을 퍼뜨리자고. 진 혜왕이 촉 제후에게 이 소를 선물을 보낸다고 하니, 촉의 제후가 욕심이 많아 신하를 보내 소를 맞이했습니다. 촉 성도까지 따라 들어간 진 신하들이 촉으로 가는 길을 알 수 있었겠지요. 결국 진 혜왕이 군사를 일으켜 이 길을 따라 촉을 공격할 수 있었고, 촉은 망하게 되었답니다.

 바둑에 ‘위기십결’이 있습니다. 바둑을 두는 데 필요한 열 가지 격언, 교훈, 비결, 비책이라는 의미. 바둑에 임하는 자세와 작전에 임하는 여러 방법을 정리해 놓은 일종의 기훈인데,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로도 활용됩니다. 이중 가장 첫 번째 격언은 ‘부득탐승(不得貪勝)’인데, ‘승리를 탐하면 이기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위기십결 전체를 아우르는 격언이자, 바둑을 두기 전 마음 자세를 바르게 만들어주는 격언입니다.

 ‘작은 것만 보다 정작 큰 걸 놓쳤다’는 의미의 말은 손자병법에도 있습니다. “전투에는 지더라도 전쟁에는 지지 마라.” 전쟁에 임할 때 생각하고 준비해야 할 게 많은 거처럼, 오늘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도 그렇겠지요. 새롭게 출발하고 도전할 때 많은 사람이 그중 가장 중요한 건, 자세, 즉, ‘마음가짐과 의지’라고 합니다. 위기십결의 첫 번째가 ‘부득탐승’인 거처럼.

이창호의 부득탐승(라이프맵)
이창호의 부득탐승(라이프맵)

 최선을 다하는 하루가, 시나브로 쌓이기를

 작년 연말 출장으로 늦은 곰순이를 기다리다 잘 보지 않던 TV를 이리저리 돌려보다 ‘바둑 TV’를 보게 되었습니다. 귀촌 이후 아예 바둑의 ‘바’자도 생각나지 않았는데. 그런데 ‘바둑 TV’를 보는데, 이상하게 아주 친숙하고 익숙한 감정과 사고 상태로 ‘모드전환’이 일어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형들에게 바둑을 배운 후 고 3까지 ‘5급’ 정도 두었습니다. 보통 5급까지는 책 몇 권 정도 보고 스스로 연구하면 도달할 수 있는 경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3급, 1급으로 가는 길은 그 정도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자세와 접근, 방법들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지요. 그래서인지 대학을 진학하자 자연스레 바둑에 대한 관심도 사라졌습니다.

 20여 년이 지난 40대 초반쯤 갑자기 바둑이 확~, 땡기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있는 바둑책 코너를 보았더니 3급/1급으로 가는 포석, 정석, 맥, 중반전, 끝내기, 사활/묘수풀이 등의 책들이 있었습니다. 27살 무렵, 백수로 지낼 때, 하릴없던 마음을 다잡기 위해 독하게 마음먹고 3급, 1급 책들을 샀었지만, 반년 만에 포기했던 기억이.

 40이 넘어 다시 바둑을 두려하니,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이창호의 책 어느 구절에 고민을 해결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바둑 급수를 올리고 싶어 비법을 찾는 사람이나, 실로 오랜 만에 다시 바둑을 두는 사람한테 반드시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수읽기지요.”

 반년 정도 사활, 묘수풀이 책들을 들고 살았습니다. 오전에, 학원에서 짬 날 때, 집에 돌아온 저녁 시간에, 심지어 자기 전에도 머리맡에 두고 한 두 문제는 꼭 풀어보고. 심지어 3, 4일 이상을 해답지를 보지 않고 끙끙대며 풀었던 문제들이 많았습니다. 이후 3급/1급으로 가는 책들을 함께 보면서, 1년쯤 지나 동네 기원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4점으로, 다음 해에는 3점, 그리고 2점, 맞수로 두었는데, 어느 순간 원장님이 “이제 백을 잡으시오.”

 그 뒤, 이사하고, 귀촌하면서 자연스레 바둑과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0여 년이 흘렀는데, 왜, 갑자기 ‘바둑 TV’가 아주 익숙하게 느껴졌을까요. 한 해를 돌아보며, 또 한 해를 설계할 때, 무의식적으로 보통 해마다 갖는 마음가짐으로는 안 되고, 앞으로는 좀더 단단하고 아~주 멀리 내다보는 호흡으로, 하나씩 준비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가야 한다는 걸 알았을까요.

 바둑은 ‘꼼수’로 실력이 늘지 않습니다. 그런 비법도 없지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최선의 수를 연구하여 한 수, 한 수 ‘정수’로만 두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도 한 급수 올리는 걸 장담할 수가 없지요. 아마 불꽃이 튀는 거처럼, 둘의 마음이 어느 지점에서 만난 거 같습니다.

 2025년, 푸른 뱀의 해를 맞이하는 우리 마음은 기대와 희망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커져만 가는 우리 사회와 세계 정세를 보면, 다른 한쪽에서는 두렵고 불안함 마음이 없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브레히트가 이렇게 노래했나 봅니다. “빗줄기에도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듯이.” 한 수, 한 수 최선을 다해 ‘정수’를 찾아 바둑돌을 진중하게 놓는 거처럼, 지혜로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하루가 시나브로 쌓여, 우리 모두가 기대하는 변화와 성장이 아주 조금은 이루어지기를 바라봅니다.

 곰돌 백청일(논술학원장)·곰순 오숙희(전북과학대학교 간호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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