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스펙트럼으로 보면 필자는 진보에 가깝다. 출신 지역도 그렇고 삶의 궤적도 그러하다. 호남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태생적 한계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렇기에 나는 보수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역설적이게도 보수의 존재 가치를 인정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이 있듯이 보수가 있어야만 진보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을 보면 머지않아 보수는 궤멸될 것 같다. 건전한 보수는 사라지고 보수라고 참칭하는 극보수만 남을 것 같다. 건전한 보수와 극 보수는 다르다. 원래 보수란 국가의 안정과 질서를 중시하는 집단이다. 법과 규칙을 지키며 전통적인 가족 가치나 종교적 가치를 지키려는 성향이 강하다. 이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건전한 보수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소위 보수라고 하는 집단들의 언어나 행동을 보면 그들이 과연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지향하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12월 비상계엄의 여파
지난해 12월 3일 한밤중에 대통령이 느닷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무장한 군인들이 헬기를 타고 유리창을 깨며 국회 의사당에 난입했다. 또 일부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들이닥쳤다. 다행히도 시민들이 국회의사당 앞으로 몰려들어 온 몸으로 무장한 군인들을 막아섰다. 국회는 계엄 선포 2시간 만에 계엄 해제 의결을 하면서 윤석열의 내란은 하룻밤도 아닌 ‘4시간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불행 중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로부터 60여 일이 지났다. 충격의 여진은 하루도 멈추지 않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여진의 진원지는 바로 우리나라 보수라 자처하는 집단, 국민의힘이다. 자신들이 배출한 대통령이 헌법을 유린하며 내란을 일으키던 그날 밤, 100여 명의 국민의 힘 소속 의원들은 비상계엄 해제 결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12월 7일 첫 번째 탄핵 소추안 표결에도 12월 14일 두 번째 표결에도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고 대부분이 불참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탄핵은 반대하고,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을 옹호하지 않는다면서도 대통령 관저에 몰려가 체포나 구속은 반대하는 표리부동한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백골단으로 불리는 반공청년단을 국회로 끌어들이고, 전광훈 앞에서 90도로 머리를 조아리고, 서부지법에 난입해 시설을 훼손한 폭도들을 애국시민이라고 부추기고 있다.
말로는 ‘비상계엄을 반대한다’, ‘폭력을 반대한다’고 하면서도 헌법을 유린한 내란 수괴를 옹호하고, 폭력을 일삼는 극우 세력을 감싸기에 급급하다. 더 나아가 이제는 우리나라 헌법재판을 전담하는 최고기관인 헌법재판소조차 흔들고 있다.
보수의 궤도이탈, 진보의 길도 흔들린다
필자는 보수의 궤멸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나라의 보수는 점점 썩어가고 있다. 특히 12·3 내란 이후에는 썩는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이념을 떠나 도저히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반 보수적인 말과 행동을 일삼아 정치판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극우와 보수는 다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극우가 곧 보수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국민의힘은 더 이상 건강한 보수집단이 아니다. 그들은 내란 우두머리와 한 배를 타고 이 나라의 헌법 질서를 파괴하며 광란의 질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가 미치광이가 되면, 진보도 마찬가지가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이제라도 국민의힘은 정상적인 보수로 다시 돌아오기 바란다. 역사는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기록할 것이다.
김봉철 조선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