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곰순의 귀촌일기] (102) 새해 초, 새끼 흰냥이가 찾아오다
곰돌곰순은 한재골로 바람을 쐬러 가다 대치 마을에 매료되었다. 어머님이 다니실 성당이랑 농협, 우체국, 파출소, 마트 등을 발견하고는 2018년 여름 이사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마당에 작물도 키우고 동네 5일장(3, 8일)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막걸리에 국수 한 그릇으로 웃음꽃을 피우면서 살고 있다. 지나 보내기 아까운 것들을 조금씩 메모하고 사진 찍으며 서로 이야기하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 연재를 하게 되었다. 우리쌀 100% 담양 막걸리, 비교 불가 대치국수가 생각나시면 대치장으로 놀러 오세요 ~ 편집자주.
2025년이 시작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마당에 못 보던 새끼 흰냥이가 나타났습니다. 여느 냥이들처럼 집사들을 보자마자 내빼기 급했습니다. 쫓은 것도 아닌데.
창밖을 보며 관찰하는데 집사가 마당에 없는 걸 아는지 다시 토방으로 올라와 식사를 했답니다. 그러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도망가고, 들어가면, 다시 토방에 올라오고.
신기한 건, 며칠 동안 새끼 흰냥이가 토방과 마당을 아주 제 집처럼 다녔답니다. 밖에서 들어온 냥이들이 한참을 경계하거나 무서워서 거실 창문쪽 토방으로는 잘 올라오지 않았는데.
하, 자기야, 저거, 참 신기해요. 붙임성이 너무 좋은 거 아니에요. 다른 데서 기르던 애가 아닐까요. 밖에 나왔다 집에 가는 길을 잃어버렸나? 근데 우리를 보고 너무 놀라는 걸 보면, 분명 길냥이가 맞는 거 같은데. 아니, 다른 집에서 우리처럼 계속 먹이를 주었던 게 아닐까요? 집을 나가지를 않잖아요. 곰돌곰순이 며칠 동안 서로 이런저런 근거를 대면서 나름 합리적인 추론을 해 보았답니다.
근데, 하루가 갈수록 새끼 흰냥이가 하는 짓이 참 말도 안 되게 귀엽습니다. 무슨 터줏대감 마냥 거실 창문 바로 앞 해바라기 하기 가장 좋은 방석 위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명당 자리마다 찾아다니며 쉬거나 잠을 청하기도 합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여기서 오래 머물던 냥이라고 오해할 법도 한.
자기야, 아예 여기에 정착하려는 거 같지요? 그러게, 그럼 이름을 지어줄까요? 고민하다, 백설기같이 하얗다고 ‘설기’라고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왕할머니 고양이, ‘흰냥이’가 다시 찾아오다
자기야~, 저~기, ‘흰냥이’ 아니에요? 어~, 어디요, 어디? 저~기, 대문 앞 의자 위에 봐봐요. 와~, 세상에~, ‘흰냥이’네~.
옛말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면 버선발로 마중 나간다던데, 곰돌곰순이 딱, 그랬습니다. 곰돌이는 닭가슴살 들고 뛰어나가고, 뒤에서, 곰순이, 자기야~ 쭉쭉이도, 그러더니 이내 본인이 들고 뒤따랐습니다.
대문 앞으로 달려갔더니, 세상에, ‘흰냥이’였습니다. 도망가거나 움직이지도 않고, 곰돌곰순이 오는 모습을 지켜보더니, 갑자기 의자 밑으로 내려가더니 이내 선반 쪽으로 올라갔습니다. 그곳에서 곰돌곰순이를 빤히 쳐다보는데, 예전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대문 앞에 놓아 둔 식판이 텅, 비어 있길래, 사료를 얼른 채워놓으니, 이내 선반에서 내려와 가까이 다가오더니, 잔뜩 경계를 하면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심스레 닭가슴살을 내밀었더니 움찔, 하더니 이내 맛있게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참, 여러 감정과 생각이 교차를 했답니다.
3, 4년 되었을까요? 그 동안 통 보이지 않아, 이제 다시는 오지 않으려나, 했는데. 기억을 찾아, 본능이 시키는 대로, 몸이 가는 대로, 예전의 집사들을 찾아왔네요. 이번 겨울에는 먹이 구하기가 유난히 힘들었을까요. 곰순이 내미는 쭉쭉이도 맛있게 받아 먹었습니다.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계속 찾아왔습니다. 하루는 보이지 않아, 다시 안 오려나, 했더니, 다음날 또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아침 식사를 하다가도 흰냥이가 나타날 때가 되었는데, 하며 대문쪽을 쳐다보곤 합니다. 와서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이면, 밥을 먹다가도 얼른 달려나간답니다.
하루 이틀 집사를 보고 있던 마당의 냥이들이, 며칠 지나자 대문으로 달려가는 집사를 뒤따라옵니다. 자기들이 볼 때 처음 보는 성묘인 하얀 고양이가 나타났는데, 집사가 자꾸 고기를 주는 걸 알아차린 거지요. 그런데 역시, ‘흰냥이’는 ‘흰냥이’입니다. 자기 주변으로 다가오는 새끼 냥이들이 자기가 먹으려는 닭가슴살을 노리고 달려들면, 그냥, 조용히 바라보거나, 뒤로 몇 걸음 물러납니다.
너희들은 아까, 밥이랑 간식이랑 먹었잖아~, 하면서 곰돌곰순이 쫓아내도 소용없습니다. 간식을 ‘흰냥이’ 쪽으로 밀어주어도, ‘흰냥이’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에휴, 하고 집사들이 한두 걸음 물러나면 간식은 금세 없어져 버립니다. 그렇게 며칠 보낸 뒤에, ‘흰냥이’가 나타나면, 거실에서 나갈 때 닭가슴살을 호주머니에 숨겨놓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대문쪽으로 걸어가서는, 그냥 일 보는 거처럼 이쪽저쪽을 둘러보다, 냥이들이 안 본다, 싶으면, 얼른 ‘흰냥이’에게 간식을 건네줍니다.
자기야, 근데, 우리가 냥이들을 차별하는 거 아닐까요. 그러니까~, 괜히 마음이 그러네. 아니, 그래도 ‘흰냥이’는 또 그러다 안 올 수도 있으니까. 마당에 있는 얘들이야, 삼시 세끼 밥에다 간식에다 많이 먹으니까요. 그니까, 어쩔 수 없겠지요, 하고는 서로 웃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귀촌 이후 처음으로 찾아온 고양이가 ‘검냥이’, ‘흰냥이’였습니다(‘곰돌곰순의 귀촌일기’ 1, 2화). 흰냥이가 첫째, 둘째, 셋째, 막내를 낳았고, 이후 셋째가 낳은 새끼들이 계속해서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떠나고 했으니, 지금 마당에 있는 냥이들은, 외부에서 스스로 찾아 들어온 몇 마리를 제외하고는, 다 ‘흰냥이’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흰냥이’는 집안 혈통으로 볼 때, ‘시조’가 되고, 문파로 볼 때 ‘개파 조사’가 되지 않을까요. 그러니 ‘흰냥이’는 지금 마당에 있는 냥이들에게 ‘왕할머니’가 되겠습니다.
손주에게 공격받고 자리 비켜준 흰냥이
그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 생각해 보니, ‘검냥이’, ‘흰냥이’가 네 마리 새끼들을 데리고 한 해 내내 마당에서 지내던 때, 어떤 고양이도 마당에 들어온 적이 없었다는 걸, 곰돌곰순이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검냥이’가 ‘흰냥이’를 떠난 뒤, 마당에 온갖 무늬의 성묘 고양이들이 드나들게 되었다는 것도.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잎싹’이 평생의 꿈이던 알을 품었을 때 왜 족제비가 나타나지 않았었는지, 뒤늦게 알아차린 거처럼.
‘나그네’ 청둥오리처럼, 그때 ‘검냥이’는 식사가 끝나면 항상, 대문 옥상 난간 위에 앉아 있거나, 왼쪽 담장 위나 앞쪽 담장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곰돌곰순이 지금도 가끔 장난스레, ‘남~~자~’ 하며 ‘검냥이’의 얼굴 표정 흉내를 내는데, ‘검냥이’의 포스가 어마 무시했었다는 것도, 그래서 근처 길냥이들이 아예 마당으로 출입할 수 없었다는 것도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흰냥이’는 다음 해 셋째가 낳은 손주 냥이 ‘짱이’에게 몇 번 공격을 받더니,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니, 그 뒤로 몇 번 나타나 조용히 식사를 하거나, 옆집 뒤안 지붕에서 마당을 내려다보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으나, 그 후 아예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짱이’는 새끼였는데도 제 구역을 지킨다고 ‘흰냥이’에게 달려들곤 했었지요.
‘짱이’는, 자기를 쳐다보던 할머니 ‘흰냥이’의 서글프던 눈빛과, 옆집 뒤안 지붕에서 자신들의 노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할머니의 평화로웠던 시간을 알 수나 있을까요. 그리고, 한참을 망설이고 망설이던 끝에, 몇 번 찾아오던 걸 끝으로, 아예 자신의 평안하고 안전한 쉼터를 포기하고 물러났던, 결단의 시간들을 알기나 할까요.
불경에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만나면 헤어짐이 정해져 있고, 떠난 건 반드시 돌아온다’는 말이지요. 흔히, 앞에 건, ‘이별’을, 뒤에 건, ‘재회’를 강조할 때 쓰이곤 합니다. ‘윤회’를 강조하는 불교 교리에 따르면, ‘진리’가 되는 말이겠지요.
하지만 현실에서 볼 때, 인간은 결국, 죽게 되니, 헤어짐은 필연인데, 다시 만나는 건, 꼭 그렇지는 않은 거 같습니다. 헤어짐이 한 번의 만남이 되기도, 여러 번의 재회가 되기도 하지만, 아예 못 만나기도 하니. 그래서 앞의 건 필연, 이지만, 뒤의 건, 생각이나 기대, 바람 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보면, 또 한 번의 만남이 얼마나 귀할 수 있는지, 다시는 보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날 수도 있었는데, 다시 만난다는 그 자체만으로, 얼마나 소중한 의미가 있는 건지, 그러니 그 재회의 시간이, 얼마나 지속될지, 감히, 가늠할 수 없기에, 사람들은 그 시간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는 것도 그러겠지요. 갈수록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세상이 되어 가다 보니, 이번에 만나고 헤어지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함부로 기약할 수 없기에, 헤어짐이 그토록 서운하고, 그래서 두 손을 놓지 못하는 거겠지요.
곰돌곰순이 냥이들 얘기를 하다, 지금까지 마당의 냥이들 중에, 치즈 색깔은 없는 거 같애, 했더니 ‘삼이’가 ‘치즈’를 낳았습니다. ‘흰냥이’가 가고 난 뒤로 이제 하얀 고양이는 없네, 했더니, 연초에, 바깥에서 새끼 하얀 고양이, ‘설기’가 들어오고, 다시는 보지 못할 줄 알았던 ‘흰냥이’도 다시 나타났습니다.
세상이 바람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가도, 그래도, 하는 기대를 갖기도 합니다. 불확실성이 극도의 혼란함으로 이어질 거라 모두가 걱정하는 2025년 한 해의 시작에, 그래도 지나고 보니, 이만하길 정말 다행이네, 하는, 아주 조금일지라도,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바라봅니다.
곰돌 백청일(논술학원장)·곰순 오숙희(전북과학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