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의 언행(言行)은 그 자체로 표본이 된다. 당연히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공직자의 말은 국민에 대한 약속이자 자신에 대한 구속이다. 말에 신중해야 하는 까닭이다. 공직자는 자신의 말로 국민을 설득한다. 신뢰의 바탕을 까는 것이 다름 아닌 말이다.

　공직자의 언어는 격(格)이 있어야 한다. 이를 언격(言格)이라 하고, 언격은 곧 인격(人格)을 결정한다. 구사하는 언어는 격이 있어야 하고, 쓰는 표현은 쉬우면서도 수준이 높아야 한다. 말로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면 그 정책도 차질을 빚는다.

　이런 점에서 공직자는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지식과 정보를 얻는 공부뿐만 아니라 자기수양을 위한 인문학 공부가 필수이다. 여기 소개하는 춘추시대 제나라의 재상 안영은 모든 면에서 공직자의 모범을 제시한다. 인품은 말할 것 없고, 폐부를 찌르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언어는 배울 점이 많다.

　찬탈자 최저에게 굴복하지 않다

　안영이 두 번째로 모신 장공은 바른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제멋대로 구는 군주였다. 사치와 향락에 빠져 간신들을 중용하고 충성스러운 상국 안영에 대해서는 의심하고 미워했다. 안영은 하는 수 없이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낚시와 농사로 세월을 보냈다.

　어질고 유능한 신하가 떠나면 어리석은 군주는 이내 무너지기 마련이다. 어리석고 못난 장공은 안영이 사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최저 무리에게 살해되었다. 장공이 시해 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안영은 겁도 없이 조정으로 돌아가 장공의 죽음에 조문하기로 결심했다. 이러한 행동은 인의(仁義)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안영의 확고한 정치사상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장공의 피살은 조금도 안타깝지 않았지만 최저가 국군을 시해한 것은 의롭지 못한 행동이라고 여겼다. 최저의 찬탈은 나라와 백성을 위한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영의 문상은 최저의 찬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사표시였다.

　안영의 결단을 걱정하며 혹시 해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안영에게 불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자멸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러자 안영은 나름대로 계산이 선 듯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장공 때 상국을 지냈지만 장공은 나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장공의 이런 푸대접에도 불구하고 신하로서 해야 할 책임감에서 있는 힘을 다해 충고했다. 그런데 최저가 무엇을 믿고 나를 죽인단 말인가? 다시 말해 일찍이 상국을 지낸 사람으로서 국가의 이익이 중요하지 개인의 은혜와 원수 그리고 이해득실은 생각하지 않는다. 국가를 위하는 길이라면 죽음의 그림자가 닥친다 해도 나는 피하지 않을 것이다.”

　최저는 안영이 오리라고 예상치 못했다. 그런데 안영이 당당히 조정으로 들어오자 불같이 화를 내면서 보검을 움켜 쥔 채 안영을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안영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태연하게 최저에게 이치와 시비를 따졌다. 그러면서 자신은 국가를 위해 이렇게 달려왔으며 생사는 애당초 관심 밖이라고 말했다.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안영은 장공의 시체에 엎드려 하염없이 통곡했다.

　안영의 이같은 당당한 기세에 최저는 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최저에게 당장 안영을 죽이라고 부추기는 자들이 있었지만 최저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안 될 말이다. 안자의 말에 일리가 있고 행동은 정의롭지 않은가? 게다가 민심을 깊이 얻고 있는 터라 지금 그를 죽였다간 내가 민심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최저는 안자까지 자기에게로 포섭할 생각이었다.

　최저는 상당한 준비 끝에 경공을 국군으로 세우고 자신은 우재상에 취임했다. 그는 자신의 권세를 다지기 위해 또 다른 음모를 꾸몄다. 모든 문무백관으로 하여금 제나라의 시조 태공(太公) 사당에서 피를 입술에 바르며 자신에 충성을 맹서하게 한 것이다. 최저는 군대를 보내 태공 사당을 지키게 한 다음 맹서를 거부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였다.

　안영도 불려갔다. 많은 사람들이 안영이 어떤 식으로 맹서를 할 지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안영은 차분하게 피가 든 술잔을 들고 하늘을 우르르 탄식을 하면서 “원통하구나! 최저가 극악무도하게 군왕을 시해하다니! 호랑이를 믿고 날뛰는 놈이나 폭군 주(紂) 임금을 도와 포악한 짓을 하는 자들은 모두 제 명에 죽지 못했도다!”라고 외쳤다. 말을 마치자 안영은 혈주를 단숨에 들이킨 다음 분이 덜 풀린 듯 씩씩대며 최저 등을 노려보았다. 기가 질린 최저는 날카로운 검을 뽑아 안영의 가슴을 겨누고는 다시 맹서하도록 명령했다.

　순식간에 긴장감이 장내를 뒤덮었다. 안영은 전혀 두려움 없이 “창칼 앞에 뜻을 바꾸는 자는 용감한 자가 아니지. 위협을 받는다고 국가를 배반하는 것은 의롭지 못한 자들이 하는 짓이다. 머리가 잘릴지언정 가슴에 칼이 들어올지언정 나 안영은 절대 최저에게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큰소리를 친 다음 고개를 바짝 치켜들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최저가 안자를 찌르려 하자 누군가 서둘러 최저를 말리며 “이러시면 절대 안 됩니다. 장공을 죽인 것은 그가 무도했기 때문인데 국인들의 반응은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만약 의로운 신하로 평가받는 안영을 죽인다면 정말 골치 아파질 것입니다. 잠시 화를 가라앉히신 다음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십시오”라고 충고했다.

　심복의 충고에 최저는 정신을 차리고 손을 거두었다. 그런데도 안영은 멈추지 않고 최저를 향해 “군주를 시해한 일은 크게 잘못된 일이고, 나 안영을 죽이는 일이야 큰 잘못도 아닐 터인데 이 정도 밖에 못한단 말인가!”라며 호통을 쳤다. 말을 마친 안영은 태공 사당을 나와 수레에 올라 그 자리를 떠났다.

　밖으로 나오자 수행원들은 최저가 행여나 다시 달려와 안영을 죽이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서둘러 떠나자고 재촉했다. 안영은 “긴장하지 말라. 빨리 간다고 안 죽고, 천천히 간다고 죽는 것 아니잖은가? 숲에 사는 사슴이 제 아무리 빨리 뛰어봐야 그 고기가 늘 주방에 와있지 않던가? 이게 그런 이치야”라며 싱긋이 웃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유머를 던지는 안영이었다.

　안영의 돌려 까기

　풍자와 유머가 충만한 안영의 언어를 사례를 통해 감상해보자. 경공은 말을 몹시 애지중지했다. 그래서 자신이 아끼는 애마를 특별히 지정된 사육사에게 관리하게 했다. 그런데 불행하게 이 말이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화가 난 경공은 불문곡직하고 사육사를 잡아다 사지를 절단해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망나니가 칼을 들고 사육사의 사지를 절단하려는 순간 안영이 곁에 있던 경공에게 “요·순 시대에는 사람의 사지를 절단할 때 신체의 어느 부위를 먼저 잘랐답니까?”라고 물었다. 정신이 퍼뜩 든 경공은 형벌을 멈추게 하고는 사육사를 옥리에게 넘겨 절차를 밟아 처형하도록 했다.

　그러자 안영이 다시 나서 “저 자는 자신이 무슨 죄를 짓고 죽는지도 모르니 제가 임금을 위해 저자의 죄를 나무랄 테니 죄를 알게 한 뒤 옥에 가두시지요”라고 건의했다. 경공이 이를 허락하자 안영은 사육사의 죄목을 꼽으며 이렇게 나무랐다.

　“너는 세 가지 죽을죄를 지었다. 첫째, 임금께서 말을 잘 기르라고 했는데 죽게 한 죄다. 둘째, 임금께서 가장 아끼는 말을 죽게 한 죄다. 셋째, 우리 임금께서 그까짓 말 한 마리 때문에 사람을 죽이려고 하신다. 백성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임금을 원망할 것이고, 제후들이 들으면 분명 우리나라를 깔볼 것이다. 네가 임금의 말을 죽게 하는 바람에 백성에게는 원한을 사고 이웃 나라에게는 우리나라의 위세를 약하게 보이게 만들었으니 어찌 죽을죄가 아니겠느냐?”

　안영의 지적에 경공은 한숨을 내쉬며 “풀어주도록 하시지요. 풀어주세요! 제발 나의 인자함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해주세요”라며 애원했다.

　안영은 유머와 풍자로 경공의 섣부른 판단을 꼬집는 한편, 최고 권력자가 하찮은 일 때문에 위신을 잃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경고했다.

　김영수 (사)사마천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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