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 박사의 남도 풀꽃나무] (67) 오순도순한 행복, 약난초
한방 비늘줄기 뿌리 약재로 사용해 붙여진 이름
탐방로를 따라가다 계곡에서 만난 약난초가 꽃이 폈다. 봄이 오고 여름이 가까이 오면 마음이 설렌다. 조만간 약난초 꽃이 피어날 시기이기 때문이다. 꽃대를 세우고 층층이 꽃을 아름답게 피워내느라 애쓰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자주빛이 섞인 갈색꽃 20여 개가 무리지어 아래로 피고, 난초과의 특이한 입술 모양의 꽃잎은 홍자색을 띤다. 그 꽃잎 속에는 아름다운 꿀주머니가 보일 듯 말 듯 하다. 이렇듯 아름다운 고운 속살을 보려면 허리를 숙여 반가운 인사를 건네야 한다.
약난초는 한방에서 비늘줄기와 뿌리를 약재로 사용해 붙여진 이름이다. 뿌리가 항암효과가 클 뿐 아니라 종기·종양·악성 부스럼 등에 자주 사용한다. 희귀약초로 항암작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갈수록 사라져가는 약난초이다. 특히 꽃피는 시기도 짧고 햇볕을 받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은 등 꽤 까다로운 특징을 지니고 있다. 난초과에 속하며 식물구계학적종 특정식물 Ⅲ등급으로 총 2개의 아구에 분포하는 식물이다. 한국적색목록의 준위협종(NT)에 해당한다.
생태적 특징은 숲속에서 드물게 나는 여러해살이풀로 지생란이다. 가짜비늘줄기는 난상 원형으로 염주처럼 이어진다. 잎은 1~2개가 비늘줄기 끝에서 나와 겨울이 지나면 마른다. 긴 타원형 모양의 잎은 대개 1장으로 푸른 상태로 겨울을 났다가 꽃이 피고 나면 시들어 9월경 새잎이 다시 돋아난다. 꽃은 5~6월에 피는데 잎 옆에서 길이 30~50cm 정도의 꽃줄기가 나와 곧추 자라며 15~20개의 연한 자줏빛이 도는 갈색 꽃이 한쪽으로 치우쳐서 밑을 향해 달린다. 입술꽃잎은 윗부분이 3개로 갈라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북 내장산, 지리산, 전남 조계산, 두륜산, 완도, 보길도, 거제도 등 주로 남부지역에 자생한다.
약난초가 속한 난초과 식물은 약 2만 5000종으로 국화과와 비등할 정도로 종수가 많다. 꽃잎의 특이한 구조를 지닌 꽃과 해당 수분매개자와의 정교하고 복잡한 수분 현상이라는 수분 신드롬 때문이다. 난초과 식물 중 약 30%가 땅 위에 살고 나머지는 나무·바위·틈 사이에 살고 있다. 특이한 점은 꽃구조가 대부분의 꽃식물과 다르다. 단자엽식물이기 때문에 꽃받침과 꽃잎이 각각 3장씩이다. 맨위에 있는 꽃받침을 등꽃받침, 좌우 1장씩을 곁꽃받침이라고 부르고 곁꽃받침 사이에 입술꽃잎이 있다. 입술꽃잎 속에는 꿀이 든 긴 통이나 주머니가 있다. 이런 꽃구조와 특이한 수분매개자와 관계 때문에 땅 위에서 난초의 결실률이 낮다고 알려져 있다.
그럼 어떻게 진화를 거듭해 그 많은 난초과 식물들은 종수가 많아졌을까?
찰스 다윈(1809~1882) 등 진화생물학자들은 수분 신드롬 때문에 오히려 난초의 꽃이 다양하고 종수가 많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분매개자인 땅속 곰팡이가 없다면 난초과 식물은 1년이고 100년이고 새싹을 피워내기 어렵다. 난초과 식물은 씨가 발아하거나 어렸을 때 영양을 얻기 위해 땅속 곰팡이의 도움이 필요하다.
대부분 난초과 식물의 씨는 먼지와 같이 작고 가벼워 바람에 의해 멀리 날아가 새로운 곳에 정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곳에 곰팡이가 함께 있으니 언제든지 지구상 꽃식물 중 가장 많은 종수를 차지하는 난초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런데도 환경부는 난초과 식물을 멸종위기식물로 가장 많이 지정·관리하고 있다. 곰팡이를 만나 새싹을 띄우기 때문에 쉽게 발아하기도 어렵고, 종수는 많지만 개체수가 매우 적고 더욱이 꽃이 예뻐서 뿌리째 뽑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약용식물로 항암효과가 높은 약난초는 보전의 관심 대상이다. 만약 자연에서 약난초와 같은 난초과 식물을 만난다면 큰절하듯 만나고 모르는 척 돌아와 주는 것이 자연의 도리이다.
이러한 약난초를 체계적으로 보전하기 위해서는 첫째 서식지 보호 및 복원이 필요하다. 약난초는 숲속의 습한 환경에서 잘 자라므로 서식지 훼손을 막는 것이 절실하다. 개발로 인해 훼손된 서식지를 복원하고, 보호지역으로 지정하여 출입을 제한해야 한다. 특히 무분별한 샛길 개설을 방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둘째, 불법채취 방지가 필요하다. 약난초는 한약재로 쓰이거나 희귀성 때문에 무분별한 불법채취가 훼손 원인이다. 보호지역의 감시활동을 강화하고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역주민과 협력하여 보호의식을 높이고 채취를 줄이기 위한 시민 캠페인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셋째, 생태환경교육 및 홍보가 필요하다. 약난초의 생태적 가치와 보호 필요성을 알리는 생태환경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해야 한다. 특히 학교, 지역사회, 환경단체와 협력하여 보호 활동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탐방객을 대상으로 서식지 보호의 중요성을 알리는 안내판 설치와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서식지 모니터링 및 연구가 필요하다. 약난초의 분포지역을 조사하고 개체수 변화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여 체계적인 보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보전방안을 통해 오순도순 행복한 약난초의 꽃을 계속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https://species.nibr.go.kr/index.do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http://www.nature.go.kr/kpni/index.do/ 국가표준식물목록
글·사진= 김영선
환경생태학 박사
광주전남녹색연합 상임대표
한국환경생태학회 부회장
부산대학교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