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전라도] 전라도사찰 특집⑳

실상사. 지리산 실상사 홈페이지 갈무리.
실상사. 지리산 실상사 홈페이지 갈무리.

 남원(南原)은 전북 특별자치도 동남부에 있는 도농복합시이다. 삼국시대에는 백제, 가야, 신라가 뺏고 빼앗는 접전이 벌어졌다. 남북국시대에는 신라의 5소경의 하나인 남원경으로 승격됐고 후삼국 시대에는 후백제가 지배했다. 고려 시대에는 남원부가 설치됐고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쳤다.

 조선시대에는 남원도호부를 설치됐고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이 함락되어 관군 4000과 군민 1만이 장렬히 전사하여 만인의총(萬人義塚)을 세워졌다. 23부제 개편되자 전라도를 전주부, 남원부, 나주부로 나뉘었고 13도제로 개편되자 전라북도 남원군이 되었다. 동남쪽에는 지리산이 솟아있고 서남쪽에는 섬진강이 흐른다.

 천왕봉 아래 넓은 들판에 창건

 실상사(實相寺)는 전북 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지리산 북쪽 기슭에 있는 사찰로 조계종 제17교구 금산사의 말사이다. 신라 흥덕왕 때 증각대사(證覺大師) 홍척(洪陟)이 당나라에 유학을 다녀와서 창건했다. 증각대사가 세운 아홉 개의 절인 구산선문(九山禪問) 중 첫 번째 사찰로 선종(禪宗)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풍수지리설에 따라 지리산 천왕봉 아래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고 하여 만수천(萬壽川) 변의 넓은 들판에 사찰을 세웠다 “일본이 흥하면 실상사가 망하고 일본이 망하면 실상사가 흥한다”라는 구전이 전한다. 고려의 호국불교 정책으로 발전했으나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쇠퇴했다.

 실상사는 조선 세조 때 화재로 폐허가 되어 철불·석등·석탑 등만 200여 년 동안 남아 있었다. 숙종 때 대가람으로 중건했고, 순조 때 다시 중건했다. 고종 때 숭유억불을 주장하는 유생들의 방화로 소실되어 또다시 증건했다.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을 배경으로 낮에는 토벌대가, 밤에는 빨치산이 점거하며 수난을 겪었다.

 낮에는 토벌대, 밤에는 빨치산 수난

 실상사에는 백장암과 서진암, 약수암 등의 암자를 비롯해 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실상사는 사적 제309호로 지정됐고 국보 제10호 백장암 삼층석탑, 보물 제33호 수철화상능가보월탑 등 국보 1점과 보물 11점이 전해진다. 실상사 입구 해탈교 양쪽에 세워져 있는 석장등은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지리산 천년송은 전북 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 와운(臥雲) 마을 뒷산에 있는 반송으로 수령 500년을 추정한다. 지리산의 구름도 누워간다고 와운마을 사람들은 노거목을 천년송이라 부르며 매년 정월 초 열흘에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천년송은 천연기념물 제424호로 지정됐다.

저자 서일환.
저자 서일환.

 서일환 언론학 박사, 행복한요양병원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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