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좋은 말은 공자가 다 하고 좋은 일은 안자(안영)가 다 했다”
공직사회가 엉망이 되었다. ‘나라 잘 되는 데는 열 충신으로도 모자라지만 나라 망치는 것은 혼군(昏君)이나 간신(奸臣) 하나면 충분하다’는 옛말이 괜한 말이 아님을 실감하고 있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왕조체제를 벗어난 지가 10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그 때보다 못한 일들이 나라와 공직사회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나라의 기강이 무너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망국의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길 밖에 없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이 난국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런 현상에 대한 역사적 성찰로서 역대 중국의 청백리들을 소개하여 반면교사로 삼고자 한다. 많은 격려와 질정을 바랄 뿐이다.
글쓴이 김영수(한국사마천학회 이사장)는 지난 30년 넘게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司馬遷)과 그가 남긴 중국 최초의 본격적인 역사서 3천 년 통사 《사기(史記)》를 중심으로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그 동안 150차례 이상 중국의 역사 현장을 탐방했으며, 많은 저역서를 출간했다. 대표적인 저서에는 ‘간신 3부작’ 《간신론》 《간신전》 《간신학》, 《사마천 사기 100문 100답》, 《성공하는 리더의 역사공부》 등이 있다. (편집자주)
안영에 대한 역대 평가와 가치
청백리 안영에 대한 역대 평가들을 통해 태생 보수 안영의 인품을 확인해보자. 먼저 《안자춘추》에 나오는 공자의 평이다.
“백성을 구휼하면서도 자랑하지 아니하고, 세 임금을 보좌하고서도 자기의 몫으로 여기지 않으니, 안자는 과연 군자로다!”
다음은 《논어》에 보이는 평이다.
“자기의 옳은 것으로써 남의 잘못을 반박하지 아니하고, 겸손한 말로 허물을 피하였으니 의롭다고 할 것이로다!”
“안평중(晏平仲)은 사람 사귀기를 잘 한다. 오래도록 공경하는구나!”
후대의 평가들 중에 “공자가 가르치면서 지칠 줄 몰랐던 성인이라면, 안자는 몸소 실천하여 교화되도록 했던 현자였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여기서 훗날 “천하의 좋은 말은 공자가 다 하고, 좋은 일은 안자가 다 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안영은 큰일에 온몸을 바쳐 참여하되 결과의 분배는 한 발 물러서 관조했던 인물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안영이 고귀한 신분의 청백리로 남을 수 있었다. 맨 앞에서 언급했듯이 안영은 근검절약이 몸에 밴 귀족이었다. 집도 허름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임금이 늘 좋은 집을 지어주려고도 하고 땅도 내리지만 그 때마다 사양했다. 그러면서 안영은 “이웃이 중요하지 집이 뭐 중요합니까”라고 했다. 안영은 이렇게 결과와 성과의 분배에 있어서는 늘 한 발 물러서서 사양했던 사람이었다.
안영은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일이 터지면 일단 수습을 위해 애를 썼다. 비유하자면 물이 엎질러지면 무조건 긍정적으로 처리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우선 주워 담고 그릇을 챙겨야지 왜 엎질러졌는지, 누가 엎질렀는지 따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님의 독화살 비유와 같다. 독화살에 맞으면 화살을 뽑아야지 누가 쏘았는지, 화살은 어디 날아왔는지, 독은 어떤 성분인지 따지고 있다간 사람이 죽는다는 이야기다. 안자는 바로 화살을 뽑고 독을 제거하는 스타일이었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안영은 자신의 외모, 즉 콤플렉스를 잘 활용했던 것 같다. 모자란 듯, 다른 사람의 경계심을 풀게 했다. 모자람의 미학, 비움의 동력, 낮춤의 윗자리, 곡선이 직선보다 가깝다 등등.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깊게 보자면 철학적인 계시와 심오한 메시지를 던지는 사람, 그가 바로 안영이 아닐까?
어록에 투영된 안영의 인품
끝으로 안영의 어록을 통해 그의 인품을 좀 더 들여다보자. 소리 내어 읽으면 그 의미와 메시지가 한결 더 가깝게 다가온다.
“백성을 사랑하는 덕보다 더 큰 덕은 없다. 백성을 즐겁게 하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참, 당연한 말인데 진하게 들린다.
“가까이 있는 신하는 침묵하고 멀리 있는 신하는 벙어리가 된다 해도 백성들의 수많은 입이 쇠를 녹인다.”
안영이 바른 충고와 직언 그리고 여론을 얼마나 중시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정이 엄하면 아래에서 말을 하지 않는다. 아래에서 말하지 않으면 위는 들을 수 없다. 아래에서 말하지 않는 것은 벙어리라 부르고, 위에서 듣지 못하는 것은 귀머거리라 부르고 싶다. 벙어리, 귀머거리만 있으면 나라에 해가 되지 않고 어쩌겠는가?”
유명한 어록이다. 통치자는 소통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더 이상의 설명은 사족이다.
다음은 재미있는 일화다.
경공이 아끼는 영자라고 하는 후궁이 죽었다. 경공이 얼마나 영자를 아꼈으면 그 시신 곁에서 몇 날 며칠이고 떠날 줄 몰랐다. 기록에 “살점이 땅바닥에 붙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앉아있었다”고 할 정도였다. 시신은 썩어가고 있는데 임금이 저러고 있으니 다들 안절부절이었다.
안영이 나서 경공에게 이웃나라 용한 점쟁이가 죽은 사람도 살린다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경공의 귀가 번쩍 뜨였다. 얼른 데리고 오라고 하자, 안영은 죽은 사람을 살리려면 목욕재계하고 옷을 갈아입고 와야 한다고 했다. 경공은 좋아라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침소로 갔다. 안영은 바로 영자의 시신을 염했다. 목욕재계하고 옷을 갈아입은 경공이 와서 보니 시신이 사라지고 없었다. 경공이 화를 내며 물었더니 안영은 태연하게 “시신이 썩어 가는데 염하지 않는 것, 이걸 육시라고 합니다. 염하지 않고 놔두면 어떻게 됩니까. 다른 사람들이 다 비웃습니다”라고 했다. 경공도 어쩔 수 없었다.
공자의 평가 중에서 이 대목은 안영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가장 대변한다. “별이 아무리 반짝여도 달이 밝게 비치는 것만 못하고, 작은 일을 아무리 많이 이루어도 큰 폐단 하나 없애는 것만 못하다.”
물론 자질구레한 폐단도 없애야 한다. 아래에서 치우냐, 위에서 치우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안영은 재상으로서 나라와 백성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큰 폐단을 없앴다는 지적이었다.
“가난한 백성의 근심은 비웃으면서 좌우의 아부하는 웃음은 높이 사다니, 그러다가는 나라에 아무런 희망이 없어집니다.”
경공에게 한 충고로 돌직구다. 필요하면 서슴지 않고 돌직구를 날린 사람이 안영이었다.
이런 돌직구도 있다. “수시로 묻는 임금은 위험하긴 하지만 명대로 살 수 있겠으나, 묻기를 꺼려하는 임금은 제 몸 하나 보존할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인재들과 상의하고 그들의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들으라는 지적이다. 임금이 모든 일을 다 알고, 다 할 수 없지 않냐는 당연한 지적이다. 임금이 식견이 좀 딸리고 자질이 모자라더라도 능력 있는 인재들에게 수시로 묻고 의견과 충고를 받아들이면 제 명에 살 수 있다는 참으로 살 떨리는 충고가 아닐 수 없다.
안영은 “친한 사람하고 멀어질 때는 자기 합리화가 뚜렷한 법이다”라는 아주 현대적인 말도 남겼다. 헤어질 때 사람들은 대개 상대를 헐뜯음으로써 자신을 합리화시킨다. 그러면서 안영은 “그런데 어리석은 임금 눈에는 이런 자가 믿음직해 보인다”는 말로 간신을 멀리 하라고 꼬집는다.
“사람의 장점을 보고 일을 맡기되 그 단점을 두고 억지를 부리지 않으며, 잘하는 점을 보고 맡기되 그 졸렬함을 두고 억지 부리지 않습니다. 사람을 쓰는 대략의 원칙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치의 요체에 대한 경공과의 대화다. 모든 대목이 새겨들을 만하다.
* 경공: 청렴한 정치를 하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 안영: 그 행동은 물과 같습니다. 물이 탁해지면 더렵혀지지 않는 것이 없고, 맑으면 씻어내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요컨대 임금 당신이 맑으면 된다는 직설이다.
* 경공: 청렴한 정치를 하되 빨리 망하는 경우는 그 행동이 어때서 그렇습니까?
* 안영: 그 행동은 돌과 같습니다. 눈으로 보아도 단단하고 만져도 단단하기만 합니다. 안과 밖이 모두 단단하기만 하니 오래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쉽게 망하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잘 했는데 망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는 질문이다. 안영은 융통성이 없어서 그런 결과를 초래한다고 딱 잘라 지적했다. 깊이 새겨들어야 할 어록이다.
* 경공: 백성을 부유하게 해주고 편안히 해주는 일이 어렵습니까?
* 안영: 쉽습니다. 임금이 욕심을 줄이면 백성이 부유해지고, 남의 말을 바르게 들으면 백성이 편안해지지요. 이 두 가지만 하면 됩니다.”
김영수 (사)사마천학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