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삶]
동물을 접하면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의 하나가 ‘다이앤 포시’의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그녀는 제인 구달처럼 르완다의 깊은 비룽가 산맥 속으로 들어가 인류의 기원을 찾는 고릴라 연구를 했고 어느덧 투쟁적인 고릴라 보호 운동가가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계속 밀렵당하고 있는 고릴라를 보호하려다 밀렵꾼들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그녀는 ‘안개 속 고릴라’라는 책을 내었고 그 책과 그녀의 비참한 죽음으로 인해 신비 속 고릴라의 실체가 전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그녀와 일면식도 없지만, 이 글을 통해 나의 야생동물 길잡이가 되어 주신 다이앤 포시를 다시 한번 추모한다.
고릴라는 1861년, 프랑스계 미국인 탐험가 폴벨로니뒤샤이유(Paul Belloni Du Chaillu)가 적도 서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동안 살아있는 고릴라를 사냥한 후, 그 표본을 영국으로 가져와 최초로 문명 세계에 그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 고릴라는 크게 마운틴고릴라와 로랜드고릴라로 나누어진다. 마운틴 쪽이 체구가 더 작고 털이 더 진하고 길다. 두 종류의 고릴라 모두 워낙 희귀해서 다 멸종위기 목록 맨 앞에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사막과 사바나 초원이 중심인 아프리카에서도 열대우림 숲속과 높은 산악지대에서 거의 세상을 등지고 수컷 가장을 중심으로 10~15마리의 가족을 이루면서 아주 평화롭게 살아간다. 가장의 책임감이 커지면 등이 하얗게 변하거나 털이 다 빠지는데 이렇게 변한 수컷을 특별히 ‘실버백’이라고 부른다.
고릴라는 워낙 조용하고 깔끔해서 저녁마다 새 잠자리를 숲 바닥에 만들고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잠을 잔다. 그들만이 사는 세상은 천적도 거의 없고 평화롭기 그지없다. 그들의 이 그윽한 평화를 방해하는 것은 오직 사람이다. 고릴라들은 세상에 알려지기 이전부터 원주민들에게 고기와 숯을 만들기 위한 벌목장을 위해 지속적으로 밀렵을 당해왔다. 단지 그 수가 많지는 않아 그나마 명맥을 유지해 오는 정도였다. 그러다 콩고와 르완다 내전 등에 의해 사람뿐 아니라 고릴라까지 대량 학살이 일어났고 심지어 그들을 인질로 삼아 몸값을 요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고릴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역시 자연의 주적은 인간이란 등식이 그대로 성립된다.
고릴라가 전 세계에 소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우리와 닮은 그런 커다란 덩치의 동물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경외감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그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 만든 영화가 그 유명한, 1933년부터 여러 버전으로 만들어진 ‘킹콩’이다. 킹콩은 그냥 괴물로만 묘사된 것이 아니라 미녀와 야수처럼 감정이 있는 순박한 괴수로 나온다. 영화를 보는 내내 사람들은 그에 대한 두려움보단 동정심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런 영화가 여전히 밀렵이 성행하던 근대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사실도 놀랍기 그지없다. 그나마 인간의 깊은 내면에 간직된 양심을 두드리는 영화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킹콩만큼 동물에 대한 이런 아련한 감정을 이끌어내는 영화는 보지 못했다.
고릴라는 인간의 두세 배나 나가는 그 몸집만큼 힘도 세다. 이런 특성 역시 영화로 잘 표현되었는데 특히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미스터 고’라는 영화가 대표적이다. 미스터 고는 한국 프로야구 흥행을 위해서 중국 서커스단에서 야구선수로 스카우트된 고릴라이다. 그리고 상상하다시피 집안의 화초를 다 뜯어 먹는 등 좌충우돌 사건들을 일으키지만, 야구 타자로 나와서는 쳤다 하면 홈런인 괴력을 과시한다. 실제로 고릴라의 팔 힘은 보통 사람의 10배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고릴라뿐만 아니라 침팬지나 오랑우탄 또한 사람보다 훨씬 팔힘이 세고 달리기도 빠르다.
이렇듯 나에게 최초로 동물에 대한 문화적인 충격을 준 고릴라는 동화작가 앤서니브라운의 고릴라처럼 항상 푸근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어느 유년기 생일날 친구에게 받은 아담한 사이즈의 단단한 고릴라 인형은 지금까지 평생 지니고 다닌다. 곰 인형보다 투박하지만 둥그런 몸매, 큰 얼굴, 그리고 안으로 몰린 순박한 두 눈과 가죽 같은 들창코는 언제나 평화로움과 안정감을 선사한다. 고릴라는 발견 당시부터 항상 멸종위기 상태였다. 지금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아 겨우겨우 멸종의 굴레를 피해 가는 중이다. 그러나 그가 사는 곳은 언제든 전쟁이나 테러 같은 모든 걸 일시에 뒤집는 급변 사태가 올 수 있는 곳이다. 동물보다도 아니 어쩌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일지 모르는 호미니드(사람과)동물 고릴라, 그들의 운명을 감히 한주먹도 안되는 우리 인간군상들이 마구 쥐고 흔들고 있다.
최종욱 <수의사>
▲고릴라(大猩, Gorilla)
- 학명 : Gorilla(Geoffroy, 1853)
- 분류 : 척삭동물 > 포유강 > 영장목 > 유인원과 > 서부고릴라(G. gorilla)와 동부고릴라(G. beringei) 2종(種)/서부로랜드고릴라·크로스강고릴라,마운틴고릴라·동부로랜드고릴라 4아종/ 마운틴고릴라는 산악지대에서 주로 서식, 로랜드고릴라는 저지대 습지나 호숫가에서 서식
- 크기 : 몸길이 수컷 170~185cm, 암컷 150cm, 무게 : 수컷 135∼275kg, 암컷 70~90kg
- 식성 : 버섯·셀러리·죽순 나무의 연한 잎·양치류, 과일 등 섬유가 많은 식물, 작은 곤충, 주행성
- 수명 : 40~60년
- 서식지 : 아프리카 열대우림, 우두머리 수컷과 암컷 여러 마리와 새끼들이 무리형성
- 번식 : 임신기간은 약 255~270일이며 한 배에 한 마리 출산, 성 성숙 : 수컷 10년, 암컷 8년
- 천적 : 인간, 간혹 표범
- 멸종위기등급 : 위기(EN : Endangered, IUC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