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곰순의 귀촌일기] (105) “은산철벽(銀山鐵壁)을 뚫어라”

곰돌곰순은 한재골로 바람을 쐬러 가다 대치 마을에 매료되었다. 어머님이 다니실 성당이랑 농협, 우체국, 파출소, 마트 등을 발견하고는 2018년 여름 이사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마당에 작물도 키우고 동네 5일장(3, 8일)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막걸리에 국수 한 그릇으로 웃음꽃을 피우면서 살고 있다. 지나 보내기 아까운 것들을 조금씩 메모하고 사진 찍으며 서로 이야기하다 여러 사람과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 연재를 하게 되었다. 우리쌀 100% 담양 막걸리, 비교 불가 대치국수가 생각나시면 대치장으로 놀러 오세요 ~ 편집자주.

놀란(?) 표정을 하고 있는 ‘치즈’.
놀란(?) 표정을 하고 있는 ‘치즈’.

 은산(銀山)을 만났을 때

 “선생님은 MBTI가 머에요?”

 “인터넷에 올라온 사이트에서 한번 해 보았는데, 기억이 잘 안 난다야. I성향도 있지만, E성향도 있는 거 같아서, 별로 신뢰가 안 가던데.”

 “아니에요, 그거 정확하게 맞아요.”

 팀 수업을 했던 중등 2학년 A가 던졌던 질문. 두 번 정도 수업을 해 보니, 자기 생각에 확신이 지나칠 정도로 강했던 아이. 다른 친구들의 말과 심지어 선생님 말까지도 밀어내던 아이. 쉬는 시간에 툭, 던진 질문에 답을 하다 보니 계속해서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음, 예전에 ‘혈액형을 보면 대충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건 그냥 재미 삼아 하는 거잖아. 4개 혈액형으로 사람을 어떻게 파악을 해~.”

 “아니에요, MBTI는 달라요. 16개나 되니까, 이건 정확해요.”

 “…. 혹시 인터넷 위키백과나 나무위키에 ‘MBTI’ 검색해봤니? 안 해 봤어? 거기 읽어보면, 마이어스-브릭스가 만든 유형지표라는데, 유효성과 신뢰성이 너무 낮아서 이미 학술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다고 나오던데, 일상생활에서 오용이나 논란도 많이 된다고 하고. 오죽했으면, 사이비과학이라고까지 할까.”

 “아니에요. MBTI는 정밀한 과학이에요. 진짜 제가 보증한다니까요. 친구들한테 해 봐도 딱 맞아요.”

 더 이상 대화하는 게 별 의미가 없어서, 중단되었겠지요.

 흔히,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고, 어른은 어른다워야 한다.”라는 말을 합니다. 곰돌이는 이 말을 무지 싫어한답니다. “~답다”는 말이, 너무 ‘옥죄는 말’인데다, 지나치게 ‘권위적인 말’이라서요. 말하는 사람 대부분, 진리를 내려주는 신의 말씀을 전하는 대리인처럼, 이 말을 사용하곤 하니.

 그런데 아주, 아주 가끔은, 학생들에게 깜짝 놀랄 때가 있기도 합니다. 초등 5학년 학생에게서 앞의 중 2 A학생같은 모습이 보이니. 첫 시간, 간단히 자기소개하며 서로 궁금한 걸 물어보곤 합니다.

 “꿈이 뭐에요?”

 “의사요. 한 30대까지는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벌고요, 40대부터는 세계 여행 다니면서 놀려구요.”

 귀엽기도 하고, 웃음이 나면서도, 씁쓸한 마음이 없지는 않습니다. 서로 몇 가지를 묻고 답하는데, 확인할수록 놀랍습니다. 70, 80년은 산 사람이 다시 환혼하여 지금 이 아이에게 빙의가 되었나 싶어서.

 “인생 머 별거 있겠어요, 젊을 때 돈 많이 벌고, 즐기면서 사는 거죠. 그래서 의사가 되어야죠.”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할 때도 아주 가끔 이렇게 ‘은산을 마주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귀촌해서 만난 사람 중에도 이런 사람이 있네요. 도시나 시골이나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하다고 하니, 그런 사람을 만나는 거야 머, 그리 놀랄 일도 아닙니다. “안 만나고 싶은 사람은 안 만나면 되고, 만나지 못할 사람도 없으니.”

 그런데 만나고 싶지 않고, 만나지 못할 것도 없지만, 모임을 하고, 서로 협조를 구해야 하는 관계를 맺게 되니,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만나야 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회원 활동만 하면 모를까, 모임을 이끌다 보니, ‘짊어져야 할 짐’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감당해 내야 할 몫’이라고 치부하는데도, 만날 때마다 에너지가 과도하게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부엌 식탁이나 마당 정자에서 곰순이에게 술안주 삼아 속을 털어놓으며 마음정리를 합니다.

면벽참선(?) 중인 ‘똘이’..
면벽참선(?) 중인 ‘똘이’..

 철벽(鐵壁)을 만났을 때

 “선생님, 잠깐 제 이야기 좀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자, 먼가 힘든 일이 있구나.”

 개인 수업을 하는 학생들이 수업이 좀 익숙해지고, 친밀해지면 가끔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합니다. 그럴 때는 고해성사를 받는 성당의 신부님처럼, 묵묵히 들어주게 됩니다. 추임새를 넣거나 맞장구를 치면서 편들어주는 게 좀 다릅니다. 이야기를 듣다가, 가끔은, 벌떡 일어나서, 아니 그랬다고, 이런, 이런, 씨~, 씨~, 하면 아이들이 환하게 웃기도 합니다.

 중 3 B학생이 해준 “뒤통수 맞은”, “배신당한 이야기”.

 반에서 조별 숙제를 하는데, 여러 사정으로 조별 숙제가 잘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교실에서 조원 몇 명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반장이 찾아와서 선생님이 숙제를 잘 내지 않고 있다고 야단쳤다며, 너희 조는 언제까지 낼 거냐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답니다.

 조장은 지금은 조원들이 다 모이지 않았으니까, 다 모여서 최대한 빠르게 이야기해보겠다고 했는데, 반장은 선생님한테 야단맞았다며, 빨리 결정해서 알려주라고. 이를 지켜보기 머해서 B학생이 나서서 반장한테 한소리 했답니다. 몇 번이나 조장이 그러지 않았냐, 지금 조원들이 다 안 모였다고, 빠른 시간 안에 알려주겠다고. 반장과 B학생 사이에 약간의 설전이 오고 갔겠지요.

 여기까지야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일 거 같은데, 다음 이야기부터 좀 심상치가 않습니다. 다음 날 조장이 조별 모임을 하는데, 친구들 앞에서 대놓고 B학생한테, 왜 니가 나섰냐고 “겁나게 비난”하더랍니다. 중학교 들어와서 3년 동안 사귄 친구고 나름 단짝이라 생각한 B학생은 그때 충격을 받았다고. “단짝 친구라 생각해서”, “그 상황을 정리하는 걸 도우려고” 반장한테 한 말이었고, 그걸로 “반장하고 말싸움까지 했는데.” “그럼, 지가 나서서 정리했어야 하지 않나요?”

 B학생이 더욱 힘들었던 건, 이후 단짝 친구였던 조장이 반장하고 붙어 다니면서 자신을 “생까고 다닌다”고. 거기까지도 참을 수 있는데, 다른 친구들한테 자기 욕을 하고 다닌다고. 자기하고 친하게 지냈던 과거 일들이 이상하게 바뀌어서 들리기도 하고. 이야기를 듣던 곰돌이 추임새도 넣고, 벌떡 일어나서, 허리 손을 하며, 짐짓 흥분하는 척, 해 보는데도,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B학생 이야기를 들은 이후 며칠 동안 곰돌이는, 오랜 시간 동안 파도에 휩쓸려가겠지, 하며 한쪽에 놓아두었던 기억이 다시 계속해서 환기되는 걸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다시 꺼내서 생각하는 거 자체가 힘들기만 한. 귀촌해서 하는 모임 중 가장 애정이 가고, “지금까지 그렇게까지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공을 많이 들이고 있는 모임에서, B학생과 비슷한 경험을 했었기에.

 성당의 신부님들은 고해성사 시간에 성도들이 뱉어낸 이야기들을 어떻게 다 담고 있을까. 새삼 감히 따라갈 수 없는 존경의 마음을 갖고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대나무숲에 대고 외쳐대던 이발사의 고충을 이해할 거 같은 시점이 되면, 곰순이에게 말을 합니다. 하루도 같은 날이 없기에 여러 사건이 일어나듯이, 귀촌해 살면서 이러저러한 사건들을 겪지만, 그것들 또한 ‘살아 있는 경험’으로 치부하면서 다독이고 넘어가려 하고, 대부분은 그렇게 넘어가는데, 아주 가끔은, 그렇지 않은 일도 있으니. 그럴 때 곰순이랑 나누는 술잔이 또 새로운 신비한 힘을 발휘하니, 참, 똑같은 날이 단 하루도 없습니다.

흔들리면서도 날(?) 준비를 하고 있는 ‘둥이’.
흔들리면서도 날(?) 준비를 하고 있는 ‘둥이’.

 “회피”에서 “극복”으로

 불교에서는 큰스님이 여름과 겨울에 하안거, 동안거에 드는 스님들에게 화두(話頭)를 내려준다고 하지요. 화두를 받아든 스님들은 수행 기간 동안 그걸 풀기 위해 안간힘을 쓰신다고. ‘네이버 백과사전’을 찾아 보았더니 “화두를 들 때는 어떤 분별도 들어설 여지가 없어야 한다. 마치 은산철벽 앞에 선 것과 같이 어떻게 해볼 수단도 전혀 없는 경계까지 가야 비로소 선어(禪語)로서의 화두가 그 효용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은산철벽(銀山鐵壁)은 은으로 만든 산, 철로 만든 벽이라는 뜻.

 기억도 가물가물하던 30대 초반 어느 해인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몇 권인지, 큰스님이 내린 “철벽을 뚫어라” 화두에, 수행하던 성철 스님이 “철벽은 뚫을 수 없으니, 돌아서 가면 된다”고 깨달았다는 구절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기억으로, 곰순이와 주변 사람들에게 일화를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살면서 ‘철벽’을 만났다고 느낄 때, 이 선문답이 도움이 많이 되고 있다고.

 그런데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아 보았더니, 곰돌이 ‘잘못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2권에는 이와 관련된 내용이 이렇게 나와 있네요.

 부안의 유명한 내소사에 큰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부도전이 있는데 그곳에는 해안 스님의 비도 있습니다. 해안 스님은 1974년 입적한 내소사의 조실 스님입니다. 한창 공부하던 시절 백양사의 조실 학명 스님에게서 “은산철벽을 뚫어라”라는 화두를 받았는데, 용맹정진한 끝에, “철벽은 뚫을 수 없으니, 날아서 넘는다”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성철스님”이 아닌 “해안스님”이었고, “철벽”이 아닌 “은산철벽”이었으며, “돌아서 가면 된다”가 아닌 “날아서 넘는다”였습니다. 의미가 통하지 않느냐며, 그냥 퉁 칠 수도 있는데, “돌아서 가면 된다”는 의미와 “날아서 넘는다”는 의미가 많이 다르다는 데서 오는 ‘지적 충격’이 좀 있습니다. 굳이 애써 해석하면, “돌아서 가면 된다”는 건 ‘회피성’이 강한데, “날아서 넘는다”는 건 ‘초월’, ‘극복’ 의미가 진합니다.

 곰돌이는 지금까지 ‘은산철벽’을 만났을 때 “돌아서 가면 된다”라는 ‘오해의 가르침’에 익숙해져서 굳이 안 만나거나, 침묵하거나, 회피하려고 한 건 아니었을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관계를 맺고 모임을 하면서 굳이 그런 사람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어도, 사람은 늘 변하고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얼굴을 마주 보며 지내야 하기에, 그냥 참자, 웃고 지내자, “속없는 호구” 소리 듣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내 길을 가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데.

 이게 혹시, “돌아서 가면 된다”는 ‘회피’였던 건 아니었을까. 아니야, 회피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거기에는 분명 “날아서 넘는다”는 ‘극복’의 의미도 있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그 마음마저도 나만의 합리화이자 자기만족이 아닐까.

 이제 봄이 되고 저녁 공기도 선선해지니, 곰순이와 함께 마당 정자에서 술 한잔 기울이며, “철벽은 뚫을 수 없으니, 날아서 넘는다”던 “해안스님”의 깨달음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해 보아야겠습니다.

 곰돌 백청일(논술학원장), 곰순 오숙희(전북과학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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