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 박사의 남도 풀꽃나무] (69) 새벽이슬 먹고 피는 병아리난초
난초 중 꽃 가장 작고 병아리 닮아

청산도 명품길에서의 병아리 난초.
청산도 명품길에서의 병아리 난초.

 꽃은 아무 때나 피지 않는다.

 한 계절이 저물고 다시 돌아오는 순환 속에서, 어떤 꽃들은 짧은 순간을 위해 오랜 기다림을 감내한다. 멸종위기나 희귀한 식물이라면 더욱 그렇다. 우리가 아무리 애써 보살펴도, 그 계절이 아니면 꽃을 볼 수 없다. 피어나는 순간을 놓치면 다시 한 해를 기다려야 한다. 때로는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는다.

 경사진 바위들 사이, 이끼가 자리한 틈에서 피어난 병아리난초를 만난다. 분홍빛 꽃들은 마치 봄나들이 나온 병아리처럼 앙증맞게 줄지어 선 듯, 때를 맞춰 차례로 피어난다. 척박한 암석이나 바위 위에서도 새벽이슬을 머금고 꽃을 피우는 병아리난초의 모습은 신비롭기만 하다. 짧은 계절일수록 꽃이 머무는 시간은 더욱 짧다.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면, 자연의 흐름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섬세하게 살펴야 한다.

병아리 난초.
병아리 난초.

 병아리난초는 난초 가운데 꽃이 가장 작으며, 그 형태가 병아리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난초과에 속하며, 바위에서 자라는 특성 때문에 ‘바위난초’라고도 불린다.

 병아리난초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지생란에 속하는데, 난초과 식물은 크게 착생란과 지생란으로 구분된다. 착생란은 나무나 바위 표면에 붙어 살아가고, 지생란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난초는 잔뿌리가 없으며, 땅속에 다양한 형태의 덩이뿌리를 형성한다. 이 덩이뿌리는 여름철 가뭄과 더위를 견디기 위해 휴면에 들어가는 특성을 지닌다. 생태적으로는 숲속 부식토가 살짝 덮인 습한 바위 표면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줄기는 가늘고 비스듬히 서며 높이는 8~25cm 정도다. 줄기 아래쪽에는 긴 타원형 또는 넓은 타원형의 잎이 붙어 있으며, 줄기를 감싸듯 자리 잡는다.

병아리 난초.
병아리 난초.

 꽃은 6~7월 경 줄기 끝에서 총상꽃차례를 이루며, 5~25개씩 한쪽으로 치우쳐 달린다. 연한 붉은빛을 띠는 이 작은 꽃들은 7월경 열매를 맺으며, 짧은 열매자루가 특징이다.

 난초과 식물은 속씨식물 중 국화과 다음으로 가장 번성한 식물군이며, 주변 환경에 매우 특화되어 고도로 진화한 식물이다. 난초의 꽃이 수정된 뒤 맺히는 열매에는 수십 만 개의 미세한 씨가 들어 있지만, 스스로 발아할 수 없다. 영양분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땅속의 공생 곰팡이, 즉 ‘난균’의 도움을 받아야만 발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병아리 난초.
병아리 난초.

 설령 발아에 성공하더라도, 곧바로 잎과 뿌리가 자라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작은 덩어리 형태로 생장을 시작하며 꽃을 피우기까지 보통 3~5년이 걸린다. 어떤 난초는 발아부터 개화까지 10년이 걸리기도 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난초과 식물은 서식지가 조금만 훼손되어도 생존이 어려워지고, 자연에서 자생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결국, 많은 난초과 식물이 멸종위기종이나 희귀식물로 지정될 수밖에 없다.

 이렇듯 난초가 꽃을 피우는 과정은 기다림과 인내의 연속이다. 그래서인지 "꽃길만 걸으세요!"라는 인사말이 문득 가슴 깊이 스며들 때가 있다. 꽃길은 우연히 펼쳐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청산도 명품길에서의 병아리 난초.
청산도 명품길에서의 병아리 난초.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듯이, 좋은 순간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며 묵묵히 보살필 때, 비로소 그 결실을 맞이할 수 있다. 병아리난초와 같은 희귀한 꽃이 피어나기 위해서는 계절을 알고, 환경을 살피고, 정성을 기울여야 하듯이, 우리의 삶에서도 소중한 순간을 위해 기다리고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자. 우리 또한 언젠가 피어날 것이기에.

 △참고 문헌

 https://species.nibr.go.kr/index.do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http://www.nature.go.kr/kpni/index.do/ 국가표준식물목록

 글·사진= 김영선

 환경생태학 박사

 광주전남녹색연합 상임대표

 한국환경생태학회 부회장

 부산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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