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제가 규정한 바는 없습니다만, 굳이 표현하자면 아시아적 생산양식과 비슷한 전라도적 정치양식라고 할 수 있을까요?”
칼 마르크스가 살아 돌아와 지금 돌아가는 전남, 광주 등의 정치 양태에 관해 묻는다면, 이런 식으로 답해줄 것 같다는 기자의 상상이다.
주지하는 것처럼 아시아적 생산양식은 마르크스가 동양 국가의 작동 방식을 보고 내린 이론이다. 시민의식, 계급의식이 강한 서양과는 다른 국가 통치 방식을 두고서다.
특히 토지를 국가가 통제하며 정치, 군사력을 휘두르는 동양만의 독특한 중앙집권적, 전제적 방식을 말이다.
어떻게 아시아적 생산양식이 전라도적 정치양식으로 비유되냐고 할 수 있겠다. 전라도의 중앙정치 성향, 함몰되다시피 하는 양태가 반복하며 더욱 강해지는 것 같아서다.
대선후보 단일체제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지금이 아닌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일극을 보는 김영록 전남지사의 언급에서도 절절히 묻어난다.
호남대망론을 들고 나왔다가 철회한 김 지사는 지난 8일 조기 대선 불출마 선언에서 “시대정신의 중심에는 이재명 대표가 있다”며 그와 동행하겠다고 했다.
‘와우!’ 김 지사의 불출마 변을 들으며 기자 자신도 모르게 나온 감탄사, 탄식이다.
물론 김 지사는 2월 출마 결심을 굳혔다며 경선을 하더라도 절대 네거티브 공세를 펴지 않겠다고 해온 터여서 일견 이해되는 바가 있다. 그렇더라도 이렇게 일극의 정점을 찍어 준다는 게 놀라웠다. 호남 출신의 잠룡이 말이다.
민주당 대선후보로는 현재 김동연, 김두관, 김경수 등 전현직 지사 등이 거론되지만 모두 호남 출신이 아니다.
호남은 ‘될 사람’을 전폭 밀어주는 스타일이어서 나머지는 심하게 말해 관심 밖, 눈 밖이다.
이게 바로 전라도적 정치양식이다. 강력한 중앙집권적, 왕조체제적 특질이다.
이에 대해 혹자는 민주진보진영이기 때문에, 내란 종식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정권 교체가 시대정신이기 때문에, 전라도의 단합된 모습이 무엇보다 시급하고, 다른 어떤 가치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할 수 있겠다.
그러면 앞서 언급한 ‘3김’ 대선후보군은 이런 시대정신과 도도한 정치적 흐름을 거스르는 존재고, 퇴화 인물인가.
이번 대통령 탄핵 선고가 나오기까지 민주당도 인정하듯 시민의 힘이 있었고, 그들의 승리다. 민주당이 정권을 차지하라는 즉각 명령이 아니다.
민주 정부를 세울 만한 인물이 민주당에 있으면 민주당 후보가, 그 인물이 이 대표이면 이 대표가, 다른 인물이라면 다른 인물이 거머쥐어도 좋다는 폭넓은 기회의 장을 제공한 것이다.
한데 마치 이 대표와 각을 세울 듯한 대선후보가 나오면 안 될 것 같다는 잠재의식, 검열의식은 무엇인가. 일극체제를 미리 상정하고 대오를 형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마르크스는 아시아적 생산양식을 규정하면서 이 폐쇄된 체제에선 정치적 역동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전라도적 정치양식에서 보자면 민주 시민의식이 여러 갈래로 펼 수 있는 공간이 좁아지거나 성장판이 열리지 못하는 결과를 맞게 되는 것이다.
호남대망론이 무엇인가. 김대중(DJ) 대통령 이후로 한 번도 대권을 차지하지 못했고, 필적할 만한 하거나 대선판을 호령할 후보가 배출되지 못한 안타까움 표현 아닌가.
때문에 이 역할을 할 인물이 필요하고, 그러자면 아무래도 광역단체장으로 신망이 두터운 김영록 지사, 또는 견줄만한 후보가 나와주길 바라는 게 매우 자연스럽다.
설령 이 같은 잠룡이 대권가도에서 중단하거나 완주하더라도 유의미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손 치더라도 다음에 나올 대권주자가 있기에 길닦기하는 부수적 효과가 있다. 그렇게 자꾸 두드려야 대권 문이 열릴 것이다.
이런 관점에 대해 정국을 보는 아류에 속하거나 지엽말단적이라고 평가절하거나, 일극체제의 장애물이란 것으로 치부한다면 호남에서 잠룡이 승천할 때는 언제인가.
전라도적 정치양식이 유독 중앙집권적 성향이 강한 것은 그렇게 뭉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구국의 결단이고, 이후 지역발전도 그렇게 해야 도모가 가능하다는 저간의 본능적 인식이어서 뭐라고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 또한 역사의 굽이굽이 형성된 결과물, 퇴적물이므로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
하지만 종국적으로 그런 반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가발전을 하지 못하는 숙명이므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날 하늘에서 구세주가 내려와 이 사슬을 끊어주거나 진정 깨어 있는 시민이 늘어나야 가능할 것 같다. 이 전라도적 정치양식을 넘어서는 게 말이다.
정진탄 전남본부장 겸 선임기자 chchtan@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