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 박사의 남도 풀꽃나무] (71) 어리병풍, 고요한 숲의 병풍처럼
병풍쌈보다 잎이 작고 어려 붙여진 이름

어리병풍.
어리병풍.

 솜털같은 새순이 조용히 땅을 밀어 올린다. 단풍잎처럼 생긴 새순은 우산 모양으로 차츰 자라난다. 바위와 땅이 만나는 곳이나 바위틈새에서 꼿꼿이 잎을 내고 꽃을 피워낸다. 유난히 잎이 커서 병풍처럼 펼쳐져 눈길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꽃대는 식물 전체의 2~3배로 높이 올려 화려하지 않지만 흰색으로 핀다. 꽃대가 높다 보니 바람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피는 눈물 나게 작은 꽃, 어리병풍의 고고한 자태가 반갑기만 하다.

 어리병풍은 병풍쌈보다 잎이 작고 어리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식물 종들은 자생식물 중에서 잎이 가장 크고 모두 나물로 먹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래서 이런 종을 묶어서 ‘병충취’라고 한다. 어리병풍과 병풍쌈은 비슷하게 생겨서 혼동하기 쉽다. 어리병풍은 잎몸의 가장자리가 비교적 얕게 갈리거나 최대 중간까지 갈린다. 병풍쌈은 깊게 갈리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어리병풍은 병풍쌈과 함께 국화과에 속하며 박쥐나물속 식물로서 세계적으로 80여종이 살고 있다. 병풍삼은 잎과 줄기에서 독특한 향기가 나며, 개병풍은 2022년에 멸종위기식물에서 해제된 식물이다. 어리병풍은 식물구계학적 특정식물 Ⅳ등급으로 한 아구에만 분포하는 식물이고 한국적색목록의 관심대상종(LC)이다. 외국에 없는 우리나라의 고유종으로 해외로 잎 한장 반출 못 하는 승인대상이다.

 어리병풍의 생태적 특징은 깊은 산 숲속 낙엽이 두껍게 쌓인 축축하고 반 그늘진 곳에서 높이 60~100cm쯤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는 곧게 서고, 줄이 있고 윗부분에 털이 약간 있다. 잎 앞면과 뒷면 맥 위에 털이 약간 있고 잎자루는 짧다. 꽃은 7~8월에 피는데 연한 황색이고 꽃차례가 줄기 끝에 달린다. 모인꽃싸개는 길이 8mm, 너비 5mm이고 꽃싸개잎 조각은 5개, 피침형이고 밑부분에 1~2개의 꽃싸개잎이 있다. 씨로 번식한다. 우리나라 충북 속리산, 민주지산, 경북 주흘산, 전북 내장산, 덕유산, 전남 담양, 무등산, 지리산 등에서 자생한다.

어리병풍.
어리병풍.

 이렇듯 어리병풍은 우리나라 고유의 자연환경 속에서 자라나는 ‘자생식물’이다. 자생식물은 인위적으로 재배되지 않고 자연상태에서 자라는 식물로, 귀화식물을 제외한 야생식물을 뜻한다. 이들은 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생물다양성 유지와 더불어 인간에게 정서적 안정감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존재들이다. 우리나라에는 약 4,000여 종이 넘는 자생식물이 분포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어리병풍은 특정 지역에만 한정적으로 분포하는 ‘특산식물’로 분류된다.

 특산식물은 오랜 시간 지역의 환경에 적응하며 고유한 생태적 특성을 형성한 식물로, 국가 차원에서 생물주권의 상징으로도 인식된다. 특히 최근 생물다양성 협약과 나고야의정서 발효 이후, 전 세계적으로 생물자원의 보존과 공정한 이용을 위한 국가 간 협력이 강조되며, 한반도의 특산식물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어리병풍을 비롯해 개느삼, 미선나무, 섬현호색, 히어리, 섬시호 등 약 360종이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관리되고 있으며, 이들은 모두 우리의 생물주권을 지키는 소중한 자산이다.

 특산식물은 단지 야생에서 자라는 풀이나 나무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태적 정체성과 자연문화의 일부이며, 후손에게 물려줄 귀중한 생명 자산이다. 특히 어리병풍이 바람결에 조용히 흔들리며 내뿜는 은은한 향기는 우리 생물자원의 소중함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넓고 무성한 잎으로 오직 이 땅에서만 자라는 어리병풍. 눈부시지는 않지만 오래도록 빛나는 그 존재 앞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자연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 어리병풍은 단순한 하나의 식물을 넘어, 우리가 지켜야 할 자연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사람의 손길 없이도 때가 되면 피어나고,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꺾이지 않으며, 고요한 자리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그 모습은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어리병풍을 바라보는 일은 자연을 들여다보는 일이자, 우리 삶을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이 작고 고요한 식물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성실하게, 눈에 띄지 않아도 흔들림 없이 각자의 위치에서 제 자리를 지켜나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리병풍은 오늘도 숲속 어딘가에서 조용히 피어나, 우리 곁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며, 더 지속가능한 내일을 꿈꾸게 한다.

 △참고 문헌

 https://species.nibr.go.kr/index.do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http://www.nature.go.kr/kpni/index.do/ 국가표준식물목록

 글·사진= 김영선

 환경생태학 박사

 광주전남녹색연합 상임대표

 한국환경생태학회 부회장

 부산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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