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서’ 포함 입찰…광주 서점들 “진입장벽”
“국내서 2억 6000만+외서 7000만 원 묶어 불합리”
지역서점 전용 배정 예산 있으나 ‘4분의 1’ 불과해
전남대 “교수·학생 신청 자료 빠른 주문·납품 중요”
전남대학교 도서관이 국내 단행본과 외서(외국 단행본)을 묶어 일괄 입찰하는 방식으로 도서 구매 입찰을 진행되면서, 지역 서점들의 입찰 참여 기회가 사실상 축소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학 측은 지역 상생 차원에서 일부 예산을 지역 서점 전용으로 따로 배정하고 있지만, 전체 도서 예산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해 “형식적인 배려에 그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역 서점 근무자 A 씨는 본보에 이같은 실태를 제보하며 “국내서와 외서를 분리해 입찰해달라”고 하소연했다.
제보를 바탕으로 한 본보 취재에 따르면 전남대는 연 2회 도서 구매 입찰을 진행하고 있다.
먼저 지난 3월 7일 공고된 ‘2025학년도 전남대학교 도서관 국내 단행본 구매 입찰’에는 지역서점만 참여할 수 있는 국내도서 제한경쟁 입찰이 진행됐으며, 예산 규모는 9500만 원이다.
반면, 지난 4월 4일에는 지역 제한 없이 전국 업체를 대상으로 하는 일반경쟁 입찰이 공고됐으며, 입찰 금액은 총 3억 3000만 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국내서가 2억 6000만 원, 외서가 7000만 원으로 구성돼 있다.
제보자는 입찰이 ‘국내서+외서(외국도서) 통합’ 방식으로 공고됐다는 데 문제를 제기했다.
입찰에 참여하려면 국내서와 외서를 모두 납품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외서는 도서정가제가 적용되지 않아 가격 협상이 어렵고, 해외 유통망이 필요한 구조여서 영세 지역 서점이 취급하기에 현실적 제약이 크다는 것. 즉 외서를 취급하지 않는 지역 서점은 사실상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하소연이다.
제보자는 “사실상 지역서점은 참여하지 말라는 말과 다름없다”고 토로한다.
‘외서’ 때문에 입찰 참여도 못해
A 씨는 “(지역 서점이)외서를 전문적으로 취급하거나 해외 도서 유통망을 갖춘 대형 업체들과 경쟁해 입찰을 따낸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이라면서 “입찰을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제안서를 준비할 수 있는 공고 기간도 짧고 외서까지 포함된 복잡한 협상 방식이라 현실적으로 지역 업체는 참여 자체가 어렵다”고 토로한다.
전남대는 과거 국내서와 외서를 분리해 각각 입찰 공고를 냈지만, 2023년부터는 지역 소상공인을 위한 국내도서 제한경쟁 입찰과 제한이 없는 국내·외 단행본 일반경쟁 입찰로 나눠 진행했다.
대학 측은 지역 상생 차원에서 9500만 원 규모의 지역서점 대상 입찰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전체 도서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분의 1에 불과해 실질적인 상생 효과를 체감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 서점 업계는 특히 외서를 포함한 입찰 구조 자체가 지역기반 서점들의 진입 장벽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국내서 입찰은 지역 서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지만, 외서의 경우 도서정가제가 적용되지 않고, 단가 조정이나 유통 경로 확보가 어려워 납품 조건을 충족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A 씨는 “외서는 국내에서 독과점 구조가 심화돼 있고, 영세 서점이 접근하기 어려운 시장”이라며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 전공서적을 수입하려 해도 거래 자체를 꺼리거나 높은 단가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외서를 다루지 않는 서점은 입찰 평가 항목 중 상당 부분에서 점수를 받을 수 없는 구조”라면서 “국내서와 외서를 분리해 입찰하면 경쟁에 참여라도 할 수 있는데, 이처럼 참여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지역서점은 도서 유통 시장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법적으로는 대학이 국내서와 외서를 묶어 입찰 공고를 내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중소 지역서점이나 소상공인이 입찰에 참여하기 어려운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지역 경제를 고려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서와 외서를 분리해 입찰해달라”
광주 지역 서점조합 관계자 B 씨는 “입찰에 참여하지 못하면 지역 서점은 도서 유통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다”며 “지역서점 인증제를 도입한 이후 꾸준히 기반을 다져오고 있지만, 구조 자체가 배제되어 있다면 정책의 효과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학 입장에서는 예산의 효율적 집행이라는 명분이 있겠지만, 공공성을 가진 기관으로서 최소한의 참여 기회는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전남대 관계자는 “대학 도서관은 지역 공공도서관과 달리 고가의 학술자료나 전공서적 주문이 많다”면서 “대학 구성원인 교수·학생·연구자들이 신청한 국내·외 자료의 빠른 주문 및 납품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년간의 입찰 경험을 바탕으로 제한된 예산 범위 안에서 대학도서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면서 “예산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면서도 지역거점대학으로서 우리 지역 소상공인을 보호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광주광역시는 2017년 제정한 지역서점 활성화 조례를 통해 공공기관의 지역서점 우선구매를 권장하고 있으며, 2023년에는 인증제를 도입해 우선 계약을 독려하고 있다.
박현아 기자 haha@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