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필의 터무니를 찾아서] ‘진짜 여행자’와 마주하는 방법

산성대에서 바라본 월출산 천황봉.
산성대에서 바라본 월출산 천황봉.

 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나무나 풀과 달라서 이리저리 활발하게 몸을 움직이다 귀소하는 특성을 지닌다. 그러면서도 지역으로부터 벗어나거나 혹은 아예 멀어진 사람들에게는 일견 “굽은 소나무가 선산 지킨다”라는 말로 냉대하거나 무시한다. 간혹 그러지 않은 마을도 있지만 대부분의 지역은 다그러려니 하면서 입을 다문다. 지방 소멸의 시대, 생활인구의 증대에 사활을 건 지방정부와 유관기관은 어떻게든 지역과 연계를 맺는 사람들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 다양한 고육지책을 내어놓는다. 한데 거기에 굽은 소나무로부터 배제 대상이 바로 굽지 않아서 밖으로 나간 소나무일런지도 모른다.

 대중에서 개인으로

 하여튼 그 제외된 이들은 그렇다손 치고 그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관광객의 유입이다. 늘 주장하지만 관광객이라고 통칭하는 말에는 당사자인 여행주체자가 생략되어 버린 것이다. 여행하는 본인이 주체가 아니라 객체화 되어 타인에게 비춰주거나 통계상의 머릿수에 포함되어 버린다. 그런 관광의 타자화된 관성이 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정도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저마다 국외를 향한 배낭여행이 붐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산성대에서 바라본 영암읍내 전경.
산성대에서 바라본 영암읍내 전경.

 그때 관광을 추동화 시켰던 여행사들의 티켓 파워와 정보력이 가장 왕성하게 돋보였지만 몇 해 지나지 않아 스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유는 여행을 다녀온 이들간의 정보 교환이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활발하게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저렴한 항공권의 구매처나 현지에서 안심하고 식음과 숙박을 할 수 있는 곳, 반드시 들러야 할 매력물이 있는 곳에 대한 정보는 여행사 보다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 더 앞서기 때문이었다.

 그런 경향들은 국외여행에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국내여행에서도 변화를 가져왔다. 관광버스에 40여명이 함께 단체여행을 하던 패턴이 점차 코레일을 이용한 기차여행이나 렌터카를 이용한 여행, 자가운전의 여행 등으로 소규모화, 개별화 되기 시작했다. 또한 잘 알려진 관광지 중심의 여행이 소도시의 여행이나 지역 사람들만이 찾는 숨겨진 명소를 찾는 여행 등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와 인구통계학적인 변화, 대가족 중심 체제에서 핵가족화 혹은 1인 가구 등의 증대와도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여기에 정보통신의 발달 특히 광인터넷을 통한 실시간의 정보소통과 대규모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그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인싸의 시대, 인생샷의 시대, 유튜버의 시대, 인플러언스의 시대가 되었다. 과거 빅마우스라 할만한 것들이 대부분 휴대폰 안에서 해결되는 그런 첨단 테크놀로지의 시대로 와 있고, 사람들은 처음에는 따라 하기에서 시작해 이제는 그것을 응용하여 자신의 방법으로 느끼고 즐기고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지역이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

 대중관광의 시대에서 이제 개인관광의 시대로 변화해 오고 수도권이 전체 인구의 2분의 1을 넘어서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사는 세상에 지역은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조차 듣지 못한 날들을 몇해 동안 보내는 곳이 수두룩한 현실이 되었다. 그런 지역에 희망이 여행자의 유입을 통한 생활인구의 증대라는 점은 모든 지자체가 안고 있는 과제인데 거기에 더해 행정안전부에서는 한 지역에 3시간 이상 체류하는 이들을 생활인구로 계산하여 숫자가 많은 지역에는 국고 지원을 더욱 확장하겠다는 발표를 했으니 지자체간 관광객 유입을 위한 총성없는 전쟁은 이미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고, 어느 지역이나 축제를 더 늘리겠다는 정책이나 야간 체류관광 중심으로 가겠다는 실효적인 방법론이 곳곳에서 발표되고 있다.

산벚꽃.
산벚꽃.

 문화관광재단을 책임지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도 이런 상황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이곳 저곳으로부터 영암을 찾아오겠다는 손님들에 대한 코스의 설정이나 숙박과 식음료 부분, 뷰포인트의 제공 등이 어쩌면 매일 일과 중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 있다. 그러니 과거, 핸드폰으로 편하게 사진을 찍고 SNS에 공유하던 것도 이제는 한 장의 사진이라도 무거운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하여 촬영하고 올리는 일이 일상화 되었다. 게다가 다른 이들과의 변별력은 여행자들이 움직이지 않는 시간대를 이용하여 좀 더 선도 높은 화면을 구축하려 노력하고 있다. 지난 겨울부터 시작된 노정은 어제까지도 그렇게 카메라와 더불어 양질의 화면을 만들고 공유하는 순간을 만들었던 것이다.

 지난 일요일 자주 오르던 월출산 길을 이번에는 새로운 길로 바꿨다. 산성대로 오르는 길이었는데, 그 이유는 영암 사람들이 왜적이 출몰하면 영암성에서도 싸웠지만 이곳 월출산 산성쪽으로 올라와서 입보농성을 했는데 그 흔적으로 산벚나무와 떼죽나무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맘때면 벚나무꽃이 장관을 이룬어 정말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는 것이었다. 험난하다는 바윗길을 피해 계곡길을 따라 올랐다. 이제 진달래는 한풀 죽어가고 철쭉이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느림보 노각나무는 이제야 새싹을 올리고, 층층나무의 새싹은 층위를 이루어 빛나고 있어 눈부셨다. 한시간반을 걸어 오른 산성대, 간밤에 강풍이 벚나무의 꽃들을 다 앗아가 버렸다. 아쉽고 원망스러웠지만 내년에 오면 될 걸 하면서 걸음을 돌렸다. 영암읍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얼레지꽃.
얼레지꽃.

 몰랐던 얼레지, 새롭게 본 월출산

 다음날 월요일은 월출산의 얼레지꽃을 촬영하기로 되어 있어 하늘아래첫부처길로 올랐다. 대동제라는 저수지가 출발지점이고 곧 이어 영암군의 상수원인 대곡제가 나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구정봉으로 오르는 길, 오분도 되지 않아 작은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 이미 져버린 얼레지의 꽃대가 보인다. 2023년 9월부터 수없이 오른 이 길에 얼레지가 있었다고 생각지도 못했다. 산을 오를때마다 내 눈길을 지표면에 있는 작은 풀들이 어떻게 꽃을 피우는가 살피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얼레지의 잎이 있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던 것이다. 내가 아는 정보는 월출산의 최정상인 천황봉 근처와 강진쪽으로 내려가는 바람재쪽에 군락이 있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적어도 구정봉까지는 해찰하지 않고 가리라 마음 먹은 산행이었는데 헛 웃음이 나왔다.

 이제 과제는 늦게 피어난 얼레지를 만나는 것이었다. 오르는 길, 산사면 비탈의 축축한 곳 모든 곳에는 얼레지의 잎이나 꽃대가 있었다. 이리 흔한 얼레지의 분포 현황을 몰랐다는 사실이 내게는 충격이었다. 그렇게 구정봉과 가까워지니 깊은 숲이라서 그러는지 몇몇 꽃대가 남아있는 얼레지꽃이 보였다. 몸을 굽히고 그도 안되니 무릎을 꿇고 이조차도 클로즈업이 안되니 아예 엎드려서 얼레지꽃을 담는다. 심도를 깊게하여 클로즈업하고 이번에는 광도를 낮게도 해 보면서 스십여컷을 찍는다. 이 꽃을 처음 만난 것은 1989년 철원이었다. 군대 생활을 하며 만난 꽃중에 얼레지와 처녀치마와 앉은부채, 매발톱꽃, 타래난초, 붉은병꽃 등이 가장 인상이 깊었었다. 그후 합천의 가야산에서 장성의 백양사에서 만나고 십여년만에 영암에서 만났으니 이날은 운수 좋은 날이 분명했다.

사자저수지의 반영.
사자저수지의 반영.

 얼레지를 찍고 나니 현호색이나 괴불주머니, 별꽃 등이 눈에 들어왔다. 야생화와 근접해서 만나며 이들의 생김을 보면 어쩌면 이리 곱게 피어날까 경외감이 든다. 그렇게 산 바닥을 기다시피 하니 별안간 비가 오기 시작했다. 하산하여 사진을 정리하고, 다음날 새벽 새롭게 조성하고 있는 구림한옥스테이라는 숙박시설로 갔다. 오전 다섯시 사위는 새소리와 닭울음소리와 풍경소리속에서도 고요한데 보름달이 이우러진다. 그 달과 한옥의 처마를 사진에 담으려다 뜻을 이루지 못했다. 수동 카메라에 익숙했던 터라 디지털카메라의 매뉴얼을 다 숙지하지 못한 탓이다. 공부 안 한 나를 자책하며 천황사쪽의 사자저수지로 향했다. 바람결이 일지 않은 새벽이면 월출산의 상봉이 고스란히 저수지에 잠긴다는 것을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화순의 세량지 못지 않은 비경을 간직한 저수지이기에 이번에는 반드시 카메라에 담겠다는 나의 의욕을 바람도 편들어 주었다.

 안개와 구름 사이로 하얀 뭉게구름이 다가온다. 그 뒤를 넘어 청명한 하늘이 드러날 듯 했다. 그렇게 시간을 기다려 찰칵. 데칼코마니라고 했다. 저수지가 Mirror Pond가 되어 주었다. 하루가 행복했다.

감나무에 앉은 후투티.
감나무에 앉은 후투티.

 다음날 주민관광협의체 분들과 쌍계사지의 물길 정비와 공부를 겸해 오르는 길, 세상에 감나무밭 가장 자리에 인디언추장새라고 애칭하는 후투티가 있다.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는데 도망가지 않고 외려 내쪽으로 온다. 이런 운수좋은 날이 또 있을까 싶은데 감나무에 앉으며 이번에는 머리털을 곤두세운다. 드디어 추장다운 풍모와 만나고 나는 셔터를 연신 누른다.

 ‘유명한 것’ 아닌 ‘지켜온 것’ 보러 간다

 사실 터무니를 찾는 나의 여행은 어찌보면 일상이다. 거기에 이런 풍경들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찾아가다 두리번 거리는 사이에 마주하는 것들이 렌즈로 들어와 광주드림을 통해 여러분과 만나는 기쁨을 함께하는 것이다. 유명짜한 것들은 이미 낡아가고 있다. 지역의 속살과 만나고, 그곳을 지켜온 분들에게 최소한의 보답으로 무언가를 사드리거나 먹고, 머물러 주는 것이야 말로 지방 소멸 시대에 진정한 여행이라 할 수 있다. 영암군도 이런 일상의 장면을 가지고 여러분을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다.

 글·사진=전고필(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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