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도시 랜드마크는 ‘숲’
국내외 도심 숲이 도시의 ‘얼굴’ 된 사례 많아
매립장·군기지 공간 ‘숲’ 조성 도시 가치 높여
광주 군공항 이전 논의가 장기간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는 가운데, 시민사회는 군공항 종전부지를 단순한 개발지가 아닌 도시숲으로 조성하기 위한 ‘백만평 광주숲’ 조성 운동을 일찌감치 시작했다.
군공항이 이전되면 남게 될 250만 평 부지 중 100만 평을 시민이 머물며 도시의 정체성을 새롭게 그려내며 미래 자산으로 이어갈 수 있는 숲으로 조성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2023년부터 시작된 이 캠페인은 단순한 녹지 확대를 넘어 광주의 미래를 상징하는 도심 속 랜드마크 숲으로서의 기능을 제시하고 있다.
이미 세계 곳곳에는 도심 숲이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기능하는 사례가 많다.
대표적으로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는 1857년 조성돼 약 102만 평 규모를 자랑하며, 도시의 소음과 혼잡 속에서 자연의 평온함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공연, 축제, 스포츠, 생태 교육이 어우러진 복합 문화 공간으로 기능하며, 뉴욕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자리 잡고 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티주카 국립공원’도 약 1000만 평에 달하는 세계 최대 도시 숲으로, 브라질에서 가장 방문객이 많은 국립공원이다.
과거 이 지역은 사탕수수와 커피 경작으로 산림이 황폐화돼 침식이 심화되고 강수량이 감소하는 등 생태 위기에 직면했으나, 복원 사업을 통해 열대우림 생태계를 되살려 생물 다양성과 생태 교육의 거점이자 도시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런던 도심에 위치한 하이드파크는 약 42만 평 규모의 공원으로, 16세기 왕실 사냥터에서 시민들의 여가와 사색의 공간으로 거듭났다.
런던의 고밀도 시가지 속에서 시민 정신과 여가가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공원이 아니라 도시민이 자연을 체감하고 공동체 활동을 이어가는 등 “녹지 공간이 도시의 품격을 높일 수 있다”는 도시 계획의 철학을 실현한 대표적 공간으로, 도시 생태의 중심축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도시숲이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사례들이 있다.
서울 성동구의 ‘서울숲’은 과거 군용 탄약고와 정수장, 경마장이 혼재한 부지를 2005년 시민사회와 서울시가 협력해 조성한 약 35만 평 규모의 복합 도시숲이다.
조성 초기 ‘시민참여형 도시숲’을 표방하며 민간기금과 자원봉사로 운영돼왔고, 군사시설과 산업유산이 남긴 공간에 숲이 자리 잡으며 서울의 생태, 문화, 시민활동이 결합된 대표적 도시 브랜드로 정착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월드컵공원’도 과거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15년간 복원해 조성된 생태공원이다.
하늘공원, 노을공원, 평화의 공원, 난지천공원, 난지한강공원 등 5개의 테마 숲이 조성됐고, 그중 하늘공원은 억새와 초지로 구성된 생태 명소로 ‘재생 도시 서울’을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됐다.
부산의 ‘시민공원’은 미군 기지였던 ‘캠프 하야리아’를 시민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대표 사례다.
2014년 조성된 이 공원은 ‘기억의 숲’, ‘시민 광장’ 등을 통해 단순한 녹지를 넘어 문화와 여가의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다.
군사적 상징이던 공간이 공공녹지로 전환된 사례로, ‘바다만 있는 부산’이 아닌 ‘숲도 있는 부산’이라는 도시 이미지를 확장시켰다.
울산의 태화강 국가정원은 산업화 시기 공업용수로 사용되던 강변이 심각한 오염을 겪은 뒤, 생태 복원을 통해 2019년 대한민국 제2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된 사례다.
‘죽음의 강’이라 불릴 정도로 훼손됐던 공간은 현재 십리대숲, 수생식물원, 시민축제 등이 어우러지는 생태도시의 상징으로 재탄생했으며, 울산의 이미지를 바꿨다.
특히 십리대숲은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생태관광지로, 울산의 대표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국내외 도시들은 과거의 상처를 숲으로 치유하며, 도시의 정체성과 품격을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다.
쓰레기 매립장, 활주로, 군사기지, 산업 폐수로 상징되던 공간들이 숲으로 전환되면서, 도시의 이미지를 바꾸고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숲은 단순한 공원이나 녹지를 넘어, 도시의 정체성과 시민의 삶의 질을 드러내는 상징적 공간, 곧 도시의 진짜 랜드마크로 기능하고 있다.
이는 광주 군공항 이전 부지 활용의 방향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높은 건물이나 개발 인프라보다, 시민이 머물고 기억하고 되돌아보는 숲이 진짜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는 흐름에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김영선 광주전남녹색연합 상임대표는 “최근 산불 등의 원인은 기후 위기와 도시의 건조화가 반복되는 데 있다”면서 “이런 문제를 선제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것이 숲”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숲은 공기 정화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도시 안의 쉼터가 된다”면서 “도시가 콘크리트 위주로 개발되면 심리적으로도 메말라질 수 있는데, 숲은 그걸 어루만져 주는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광주가 ‘민주주의 선도 도시’에 걸맞게, 경험해 보고 싶은 도시, 오고 싶은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숲에 그 해답이 될 수 있다”면서 “앞으로의 미래는 숲이 도시를 살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영 숲해설가광주전남협회 상임대표도 “도심에 숲이 생기면 다양한 생물들이 찾아오고, 이동이 어려운 어르신들도 쉽게 산책하며 자연을 경험할 수 있다”면서 “아이들 역시 생명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는 교육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소음 저감, 매연 흡수, 공기 정화, 습도 유지, 생물 다양성 증진 등 숲이 주는 생태적 효과는 매우 크다”면서 “숲이 도시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고 그 주변에 인프라가 조성된다면 이상적인 공주형 도시 모델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백만평 광주숲’ 시민운동은 지난 2023년 11월 광주시청 앞 잔디광장에서 발대식을 열고 공식 출범했다.
이후 정책 토론회와 시민 캠페인 등을 통해 군공항 종전부지 활용에 대한 시민 의견을 수렴하고, 도시숲 조성의 필요성과 가치를 공유해나가고 있다.
박현아 기자 haha@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