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세론’ 직면한 국힘의 마지막 ‘동아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4회 국회(임시회) 제6차 본회의에서 2025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을 마치고 퇴장하고 있다. 뉴시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4회 국회(임시회) 제6차 본회의에서 2025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을 마치고 퇴장하고 있다. 뉴시스.

# 선거는 대체로 구도와 인물, 정책 등 세 가지 요소가 씨줄 날줄로 얽혀 진행되며 이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구도다. 국민의힘 경선은 민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양한 이슈가 생산되고 있는데 특히 ‘보수 빅텐트’ 여부는 다른 변수들보다 주목도가 높다.

본격 경선 레이스가 시작되면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은 지리한 박스권을 벗어나는 추세인 데 비해 오히려 국민의힘 후보들의 지지율 합이 박스권에 갇혀버렸다. '반 이재명 빅텐트' 구상은 6·3 조기 대선이 4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구 여권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동아줄인 셈이다.

우리 정치사의 단일화 성공 사례는 1997년 DJP연합과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를 들 수 있다. DJP연합은 김대중과 김종필, 두 지역 맹주가 손잡고 이회창을 꺾으며 헌정사 첫 정권교체를 이뤄낸 경우다.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역시 진보와 중도 진영의 연합을 통해 강고했던 '이회창 대세론'을 무너뜨린 바 있다.

단일화 성패의 관건은 무엇보다 정치적 기반이다. DJ와 JP처럼 텃밭이 탄탄하거나, 노무현·정몽준처럼 세대·이슈를 기반으로 한 뚜렷한 지지층 확보가 관건이다. 2022년 대선에서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이대남'을 중심으로 지지 기반을 구축했던 것이 대선 승리의 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선 한덕수 권한대행 포함 보수 진영 주자들 지지율이 다들 고만고만한 수준이라 '빅텐트' 아닌 '스몰텐트'라는 평가가 나온다. 우상호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유승민·이준석 모두 국민의힘 출신"이라며 "자기네끼리 나갔다 들어왔다 하는 건 빅텐트가 아니라 '헤쳐모여'"라고 지적한다.

결국 유야무야됐으나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뒤에도 ‘반 문재인 연대’가 거론된 바 있다. 당시 대안으로 거론됐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대선 출마’ 가능성이 불거지자마자 20%대 높은 지지율을 얻었으나 현재 국민의힘 밖의 대안으로 꼽히는 한 대행 지지율은 그에 한참 못 미친다.

국내 정치와 거리가 있던 반 전 총장은 신선하기라도 했으나 아마도 한 대행은 윤석열 정부의 ‘올드보이’로 비치기 때문일 것이다.

# 한 대행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40년 지기’이자 내란 공모 혐의를 받는 이완규 법제처장 등을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뜬금없이 지명했다가 헌재 판결로 제동이 걸렸다.

그의 이번 비상식적 조치에 대해선 “이상한 헌재 해석을 끌어내,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탄핵이 아닌 방식으로 물러나게 하려는 쿠데타”(정성호 민주당 의원)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래서 이번 ‘알박기’가 한덕수를 후계자로 내세워도 될지 판단하기 위해 윤석열이 낸 시험문제 아니냐는 추론도 있다. 윤의 망상과 한의 노욕이 합작한 작품이었다는 얘기다.

아무튼 이번 위헌적 지명을 계기로 국힘 내 친윤계는 일제히 ‘한덕수 차출론’을 띄웠다. 김문수로 쏠렸던 극단 세력 지지세도 일부 한 대행 쪽으로 이동했다. 이후 국힘 후보와 무소속 한덕수의 ‘빅 텐트’ 단일화에 대한 보수 일각의 기대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물론 비윤계의 비판은 신랄하다. 김근식 국민의힘 송파병 당협위원장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탄핵을 반대한 친윤 세력이 ‘반명’하자고 모이라고 하면 누가 호응하겠나”라며 “이준석이 오겠나, 이낙연이 오겠나”라고 되물었다. 그는 “아마 계엄에 반대했던 한덕수도 친윤이 주도하는 깃발엔 주저할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한 대행 차출은 2002년 노무현, 정몽준 단일화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당시 양자 단일화는 지지층이 겹치지 않았고 각각 민주당 지지층과 중도층이 순기능적으로 시너지를 내 삽시간에 이회창 지지율을 추월했으나 한 대행 지지율은 김문수와 홍준표 후보 지지율이 빠져 옮겨간 것뿐이라는 지적이다.

결국 ‘한덕수 카드’는 친윤 호가호위로 탄핵까지 자초한 사람들이 대선 승리는 포기하고 선거 이후 본인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반윤찬탄’(반 윤석열 탄핵 찬성) 후보를 찍어내려는 꼼수라는 것이다. 중도 확장력을 주목받던 오세훈 서울시장과 유승민 전 의원이 경선 대열에서 이탈한 것도 그 후과로 볼 수 있다.

# 이렇듯 ‘보수 빅텐트’라는 국민의힘 대선 공학엔 빈틈이 많다. 빅텐트 대상으로 거론된 유승민 전 의원이나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등은 일찌감치 ‘내란 옹호 정당’과 손잡는 일은 없을 거라고 선을 그었다. 여기에 한 대행마저 오랜 관료 생활로 굳어진 보신주의를 결국은 뛰어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이게 정말 건곤일척의 그런 어떤 권력의지와 승부욕을 가지고 나와도 될까말까인데, 50년 관료를 했어요. 그동안에 한 번도 그런 면모를 보인 적이 없는 사람이.... 주변에서 바람을 잔뜩 넣은 건 맞는데 결국엔 못 할 겁니다.”(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

“평생 길들여진 삶을 살아온 거지요. 누가 만들어준 길. 또 꽃가마 태우고 꽃길만 걸어왔던 분인데요. 대선판이라고 하는 것은 투우의 장이거든요. 거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박성준 민주당 의원)

한 대행이 호기롭게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다 해도 반기문 전 총장처럼 세력과 자금 면에서 곤란을 겪다 중도 포기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 그렇다면 한 대행은 왜 어색하고 기이한 침묵을 이어가는 걸까? ‘출마할 계획이라면 당장 대행을 사퇴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출마를 선언하라’는 민주당 등의 압박을 받으면서까지.

“헌법 무시하고, 목에 힘주고, 대통령 행세하고, 월권과 알박기 인사하고, 국회 피해 선거운동 다니고, 관세 협상에 국익 팔아 자기 장사하고, 트럼프 통화로 언론플레이 하고. 한마디로 신종 ‘난가병’(이번 대통령은 난가?)인 노욕의 대통령병 중증이다.”(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

“한 대행은 윤석열 주변 사람들이 차선책으로 보험용 기획 출마를 시켜 놓은 겁니다. 결국은 ‘당권은 절대 한동훈한테 주지 않겠다’라는 큰 그림이 있지 않고선 이런 무리수를 두지 않죠... 이 카드로 민주당을 이기겠다 그런 생각은 아니고.”(서용주 맥 정치사회연구소장)

한 대행 자신도 계속 출마 카드를 쥐고 있는 게 민주당 견제에 유리하고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말발이 먹힌다고 계산할 수 있다. 무소속 출마 후 요행히 범보수 단일후보가 되면 만에 하나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내란 방조 혐의 등에 대한 수사를 피할 수 있다는 계산도 했을 것이고.

역시 이런저런 정권을 오가며 고위직을 역임한 노회한 내공이 돋보인다. ‘정치도의’는 커녕 ‘상도의’를 현란하게 넘나들고 있다는 느낌은 덤이다.

김대원 서울본부장.
김대원 서울본부장.

김대원 서울본부장 겸 선임기자 kdw34000@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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