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방 우리 책들] 점과 선과 새(2024, 창비)
꽃샘추위가 용을 쓰는 모습 뒤로 봄이 무르익고 있다. 꽃이 피고 햇빛이 반짝이며 점점 새소리가 들린다. 철새들이 여름을 맞아 이 땅에 날아들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찬란하게 빛나는 빌딩숲 사이를 노니다가 머리를 박고 죽음에 이르는 일들이 우후죽순 늘어날 일도 얼마 남지 않았고 말이다.
환경부와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하루 약 2만 마리, 연간 800만 마리의 야생조류가 고층 빌딩의 유리창, 도로의 투명 방음벽과 같은 인공적인 구조물에 충돌해 부상을 입거나 폐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온라인 기반 자연 활동 공유 플랫폼 ‘네이처링’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조사가 게재되어 있는데, 이미 2025년 들어 인공구조물 충돌로 인한 조류 폐사가 천여 건이나 발견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출처 : 24.04.26. www.naturing.net). 유리 건물과 인공 구조물, 하늘로 날리는 풍선과 폭죽놀이 등이 나날이 생태적으로 주목을 받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런 이야기는 그림책으로도 그려진다.
조오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점과 선과 새’(2024, 창비)는 까마귀와 참새의 비행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좋은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참새는 거대한 유리 건물의 투명한 벽에 머리를 박고 쓰러진다. 까마귀는 혼비백산 참새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고, 참새를 치료한다. 거기서 자신의 오랜 계획을 이야기한다. 참새가 양 팔을 벌린 너비와 비슷한 정도의 간격으로 동그란 점을 찍는 것이다. 유리에 점을 찍고 선을 그으면 아무리 투명한 유리라도 그저 뚫려있는 줄 알고 그 사이로 날아드는 새들이 줄어들 것이다. 까마귀와 참새는 함께 점을 찍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다!
우연히 만난 다른 새들이 함께 선을 긋고 점을 찍는다. 점과 선과 새다. 조류 충돌로 흠집이 난 거대하고 미끈한 유리벽이 더 이상 아닌, 색색의 점과 선으로 장식된 면들이 춤추듯 이어진다. 조오 작가의 부드럽고 따뜻한 색들로 빌딩숲은 사라지고, 점과 선과 새들만 남는다. 그들은 붓을 든 채 다 함께 춤을 춘다. 살아남기 위한 춤이다.
그랬다면 좋았을텐데…….
‘점과 선과 새’ 중에서.
사실은 그 모든 것들이 까마귀의 환상이었다. 참새는 치료받지 못한 채 죽었고, 까마귀는 황망히 창문 앞에 서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저 멀리, 유리창에 비치는 빌딩숲에서 빛이 반짝인다. 그 빛은 마치 동그란 흰색 점 같다. 하나, 둘, 그리고 여럿, 새들이 충돌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의 숫자가 페이지를 가득 채우며 그림책이 끝이 난다.
“이 책은 어릴 때 학교 창가에서 본 새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오랫동안 묻어 두었던 말을 이제야 조심스레 꺼내 봅니다.
각기 다른 목소리가 모여 만들어 낼 기적을 믿으며,
어딘가에 살고 있을 작은 새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합니다.”
‘점과 선과 새’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책은 까마귀의 꿈을 담은 책이다. 오래도록 주변의 새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이 일을 멈출 수 있을지 고민했을 것이다. 당장 내 옆의 존재들이 죽어나가는 것 때문에 오래도록 골몰했을 것이 느껴져 책을 읽는 내내 까마귀가 참 기특하고, 고맙고, 또 측은했다.
인간들 중에서도 그런 고민을 한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실제로 요즈음에는 고속도로를 달리다가도 독수리 그림자 형태의 스티커가 붙어있는 방벽이나, 통유리창으로 벽을 세운 카페 같은 곳에 점 모양 스티커가 붙어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슬프게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조오 작가는 이런 책을 썼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자신이 아는 까마귀를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꽃과 봄이 만개하는 만큼 죽음도 만개한다. 즐거운 행사로 폭죽이 터질 때마다 하늘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동물들은 위험에 처한다. 점과 선이 찍고 그려진 유리 건물들은 보기에는 부산스러울지 몰라도 생명을 살린다. 우리 인간은 이런 조용한 죽음들을 밟고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계속 점과 선을 새의 몫으로 놓아두는 것은 옳은가?
광주는 2024년을 기해 ‘야생조류 충돌 저감’에 관한 광역시·자치구 조례 모두 보유한 지역이 됐다. 조류충돌 방지테이프를 지원해주는 사업도 매년 진행하고 있다. 올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꽃구경과 물놀이, 자연의 도움을 받은 살맛나는 순간들이 우리를 도울 또 다른 1년이다. 우리도 자연을 도울 수 있는 한 해가 된다면, “그렇다면 좋을” 것이다.
문의 062-954-9420
호수(동네책방 ‘숨’ 책방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