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필의 터무니를 찾아서] 통영1박, 그리고 부산에서의 3일

[오!늘]에서 본 통영바다의 풍경.
[오!늘]에서 본 통영바다의 풍경.
F1963의 심장과 같은 YES24책방.
F1963의 심장과 같은 YES24책방.

4월 24일 오후 차를 가지고 통영으로 향했다. 다음날 오전부터 있을 부산의 조선통신사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첫날 경유처를 그곳으로 정했다. 통영에는 문화현장에서 20여년을 한결같이 뵈었던 선배가 고향으로 돌아와 후배들을 위한 1층 공간과 쉼의 공간이자 작업장을 겸한 2층짜리 건물에 깃들여 사시고 있다. 통영주택 [오! 늘]. 껌껌한 밤, 우리 일행은 여장을 풀기도 전에 목마름을 해소하러 바닷가로 나갔다.

한국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통영의 야경은 늘 영광의 불빛과 한서린 물결이 공생한다. 우리가 머무는 처소는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해저터널을 건너는 바닷가이기 때문에 더욱 실감했다.

삼도수군의 통제영이 있었던 지역답게 경상도와 전라도와 충청도의 선진기술뿐만 아니라 맛의 비법까지 한곳에 모여 있으니 여행자들에게 통영은 뷰맛집뿐만 아니라 진짜 맛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일찍 도착했다면 다양한 생선을 골라 초장집에서 먹는 중앙시장통을 갈진데 늦은 시간이라 다찌집을 찾았다. 

광복로에서 조선통신사행렬 퍼포먼스.
광복로에서 조선통신사행렬 퍼포먼스.

다찌집에서 맛본 통영의 진미
일제강점기에 생성된 이런 요리집은 그날의 싱싱한 것을 내어놓으며, 1인당 얼마라는 가격이 매겨져 있는 곳이다. 자주 가지는 않았지만 몇해에 한번꼴로 가는 다찌집은 광주나 여타 도시가 그렇듯이 명운이 다 끝난줄 알았는데 “알쓸신잡”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기적적으로 소생했다.

그전의 다찌집은 몇몇 호사가들만이 알았거나 혹은 가격대가 높다는 부담감으로 꺼려하며 잊혀져 가고 있었던 터이다. 새롭게 조명된 다찌집은 통영 곳곳에 새로운 형태의 다찌집을 양산하며 통영방문의 절대적인 위치를 점하게 되었던 터이다. 사진으로도 다 담을 수 없을 만치 연이어 나오는 음식과 그에 곁들인 반주는 점점 통영의 밤을 무르익게 했다. 그렇게 만찬을 마치고 돌아와 선배님댁에서 요즘의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게엄이후 하루도 잠을 제대로 들지 못한 불면의 날들에 대한 분노, 이곳에 터를 잡고 집을 짓는 동안에 이뤄졌던 수많은 난관과 오를데로 올라버린 자재 비용, 건축허가를 둘러싼 행정과의 지난한 과정, 영암에서 소소하게 변화를 끌어가고 있는 이야기 등으로 시간은 새벽 두시를 가르킨다. 손님을 위한 그 공간에서 잠이 들고 또 여느 때처럼 아침을 맞이한다.

통영뱃사람들을 든든하게 해준 오래된 음식 시락국.
통영뱃사람들을 든든하게 해준 오래된 음식 시락국.

서호시장의 시락국은 술 먹은 다음날 새벽이 제격이기에 주인은 남겨두고 둘이서 시장을 두어 바퀴 돌고 마침내 장어뼈 국물이 머금은 구수한 국물에 밥 한공기 말아넣고 수저를 뜬다. 곁에서 소주 반주에 걸쳐 먹고 있는 이들이 부러워지면 나는 알콜 중독자야 라고 스스로를 제어하며 오로지 국물에 열중한다. 이런 오래된 노포의 정경에 취할 수 있는 음식점은 보물과 같은 존재다.

전국 각지를 다니며 오로지 노포만을 찾아 “백년식당”이란 책을 썼던 박찬일 쉐프는 오래된 식당이 옛고(古)자가 아니라 늙을 노(老)자를 써서 노포라고 불리는 이유는 식당의 음식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의 몸 안에 들어오기 때문임을 밝히며 “한 입 베어 물면 입안에 한 시대가 들어오는 듯한 식당”이 바로 노포(老鋪)라고 정의했다. 시대를 건너가며 불을 밝혀온 식당들이 이제는 자취를 감춰간다.

바닷일을 하는 이들의 일상은 물때의 흐름에 맡겨져 있는 터라 통영항을 들락거리는 뱃사람들의 허기를 면하고 따숩고 든든한 한끼를 드리고자 만들어낸 음식이 시락국인데 나는 국물 한사발에서 관광지 통영이 아니라 삶의 현장으로서 통영을 읽어 본다.

시락국집에서 서서 식사를 하는 이들은 대부분 뱃사람이거나 뱃일을 경험해 본 이들이다. 대부분이 의자에 앉아 편안한 국을 먹을 때 이들은 촌각도 아쉬운 상황임을 서서 이야기하고 내가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럼없이 밝힌다. 그게 토녕식이겠지. 그래서 꼬마김밥도 통이 큰 김밥이 아니라 작게 돌려 한입에 쏘옥 들어가게 만든 것이지 라고 이해한다.

해운대의 APEC하우스와 동백섬.
해운대의 APEC하우스와 동백섬.

이른 조식을 마치고 다시 선배네 집으로 들어갔다. 빵을 뎁히고 커피를 내리고 계신다. 간밤의 이야기가 길었지만 추억 한스푼 한스푼이 쌓여 미시적인 문화사의 한페이지를 우리는 복기했던 것이란 말로 가름하며 다시 부드러운 빵과 고소한 커피의 2차 조반을 아메리칸 스타일로 마쳤다. 

부산으로, 기억을 품고 향하다
이제 이별의 시간, 다시 뵐 것을 약속하고 우리는 부산으로 향했다. 먼저 코스트코에 들렸다. 애용하는 레미 마르텡이라는 술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코너에는 다른 술만 잔뜩 있었다. 실망스러웠지만 돈이 굳었다 라고 나를 달래며 F1963 으로 찾아갔다.

와이어 생산 업체인 고려제강이 오래된 공장부지를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 시킨 곳이다. 영암에 있는 대규모 정미소였던 “대동공장”의 앞날을 위해서는 참고하기 좋은 곳이라서 택한 길이다.

2019년 광주드림에 이와 관련한 여행기를 썼던 터라 줄여보면 거대한 중고 서점인 YES24는 책과 문방구와 다양한 키트상품이 조화를 이루며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경상 지역이 자랑하는 술 “복순도가”는 다른 곳으로 옮겼는지 보이지 않았다. 국제갤러리는 부산문화재단이 도맡아서 기획전을 하고 있었고, 야외 화수목 가든에는 이전보다 훨씬 더 다양한 식물들이 방문객을 반겨 주고 있었다.

취타대의 위용.
취타대의 위용.

테라로사 커피점은 진한 커피향을 외부로 발산하고 있었다.  금난새음악센터, F1963 도서관, 계절음식연구소 어보 등이 새롭게 들어온 듯 했다. 음악과 미술, 책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문화향유도 하고 쉬어 갈 수 있도록 그 딱딱한 와이어줄을 현악기처럼 다시 소환해 냈다는 것이 부러웠다.

이제 축제에 참여해야 할 시간, 부산문화재단이 정해준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셔틀 버스를 타고 해운대의 동백공원 APEC 하우스로 갔다. 에이펙 정상회담이 열렸던 역사적인 공간인터라 궁금했는데 여기 이르게 되어 뿌듯했다. 

축제의 중심에서 영암을 말하다
영암군에도 이런 좋은 컨퍼런스 홀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부러워하면서 말이다. 이곳에서는 조선통신사가 일본의 에도(도쿄)로 가는 길에 교류했던 도시의 시장님이나 부시장님들과 우리나라에서도 연관도시의 단체들이 함께하는 자리였다.

개막식과 환영리셉션을 마치고 우호 교류의 밤 만찬에도 함께했다. 부산문화재단과 이미 교류협약을 한 터이라 형제처럼 반가운 이들과 함께하는 밤은 뜨거웠다.
다음날은 본행사가 있는 날이다. 각 도시별 일본과의 교류를 발표하는 학술심포지엄에서 영암군의 국제교류의 역사와 미래를 발표했다. 그리고 일본의 왓쇼이 축제와의 교류를 희망하는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용기가 흩날리는 퍼레이드.
용기가 흩날리는 퍼레이드.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점심 식사후에는 광복로에서 약식으로 진행하는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을 참관했다. 원래 본행사가 이곳을 기점으로 진행했었는데 이번에는 북항친수공원 일원이 메인 행사장이란다. 축제 자체의 공간이 확장성을 갖게 되는 의미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각 구 단위별로 이 행사를 유치하기 위한 열정도 보여지는 모습이었다.

앞선 행렬을 놓친 우리는 광복로 일원을 쉬엄쉬엄 걸으며 부산의 정취를 느껴 보았다. 번화가이자 개항도시답게 곳곳에 환전소가 보이고, 일본인 여행자를 비롯한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조선통신사 행렬이 본격화되는 본행사장에는 내가 소속된 영암문화관광재단 6명의 동료들이 각각 복색을 갖추고 대역 배우가 되려 하고 있었다.

부산문화재단과 친구의 의를 맺었으니 응당 그렇게 호응하는 것이 도리라서 감사함을 표하고 행렬 옆으로 나도 따라 걸었다. 길의 맨 앞에는 노란색 복식의 취타대가 행렬의 웅장함과 성대함을 담당했고, 뒤이어 무장한 군사들이 가마를 탄 정사와 부사, 종사관을 삼엄하게 옹위하는 모습이었다.

그 뒤를 각각의 수행사들이 따르는데 근 2백여명의 행렬이 마치 평상시 연습을 자주했던 것 처럼 당당하게 조선통신사의 행렬을 재현해냈다. 마지막 집결지에 도열하여 관객들이 있는 객석을 바라보며 열병식과 비슷하게 도열하다 오직 태평소만의 단독 연주가 시작되었다. “애국가”였다. 여즉지 살아오면서 세상을 찢어 버리듯 울리는 그 소리가 애국가의 곡과 맞닿았을 때 이런 울림이 광장을 채우리라는 예상을 못했다.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일본에서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커다란 변형 수레를 가져온 이들의 공연도 그 긴박감에 숨을 멈추게 했다. 해운을 통해 이송하는 비용만도 만만치 않았을 터인데, 거기에 참여인원 또한 다수여서 놀라웠다. 이렇게 부산에서의 2일째를 마치고 마지막날 오전 그렇게 가고팠던 범어사에 이르렀다.

일본 키타큐슈의 쿠로사키기온야마가사.
일본 키타큐슈의 쿠로사키기온야마가사.

 범어사에서 바친 기원
목포에 있는 국립해양유산연구소가 복원한 통신사선이 오사카까지 항해를 직접 하는 것이니 이에 대해 무사항 항해를 기원하는 제를 올리는 행사에 참여함이었다.

연등이 짙게 하늘을 가리고 그 사이로 연초록이 뚝뚝 물들일 듯한 아름다운 풍광에서 주지스님의 집전으로 한일간의 우호와 선린이 지속적으로 이행되며 무사항해 또한 이뤄지길 소망하는 시간을 가졌다.

영암으로 돌아오는 길, 축제를 통해 복원하고 재현하며 소환하는 역사가 평화로 가득한 미래 비전과 닿아있음은 왕인문화축제에서도 함께 공감하며 지속해야 할 과제임이 늑골 깊숙히 파고 들었다.  
글·사진=전고필(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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