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삶]

노루
노루

 노란 고라니일까? ‘노루’란 이름은 참 정겨운 이름이다. 노란 사슴이라 노루란 설도 있고 잘 논다고 해서 노루란 어원설도 있다. 박목월 시인의 ‘청노루’에선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이라고 노루를 멋지게 표현했다.

 예부터 노루는 신성한 동물로 사냥꾼들도 잡기를 꺼렸다고 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맛이 좋아 노루고기를 육포로 만들어 즐겨 먹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내륙에선 노루 보기가 아주 귀해졌다. 비목이란 가곡에서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란 슬프고 아름다운 가사가 나온다. 거기에 나오는 궁노루는 수컷 생식기 주변에 향이 나는 생체 주머니를 가지고 있는 ‘사향노루’이다. 우리나라에선 현재 거의 멸종된 상태로 알려져 있다.

 고라니 역시 예부터 보노루 또는 복작노루라고 불렸다. 꽃사슴을 제외한 우리나라 사슴은 그러니 다 노루였던 셈이다. 노루가 고라니나 사향노루와 다른 것은 노루는 수컷이 일반 사슴처럼 뿔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사슴에 비해 가지도 적고 뿔도 작다. 뿔이 다 성장해도 가지가 세 가지 이상을 넘지 않는다. 이것은 일단 산에서 나뭇가지에 걸리지 않기 위함이고 둘째로 다른 수컷과의 과열 경쟁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노루는 일부다처제이긴 하지만 수컷 한 마리가 일정한 세력권을 가지고 겹치는 암컷들과 교제하는 구조다. 그들은 8~9월의 짧은 결혼 기간을 가지고 후에는 암컷 홀로 새끼를 낳고 기른다. 노루 뿔은 타 수컷과의 경쟁보단 주로 자신의 영역을 나무줄기에 표시하는 데 요긴하게 쓰인다. 육식동물인 호랑이나 표범 그리고 곰이 주로 쓰는 방식이다.

 노루는 한때 한반도 전역에 폭넓게 살던 동물이었다. 그러나 지속적인 사냥과 주로 산 중턱에 사는 덕에 전쟁과 기근으로 인한 서식지 파괴로 이젠 육지에서 거의 보기 힘들고 졌다. 그러니 다행히도 제주도에서 사람들의 무관심과 자연보호 덕분에 한라산 자락에서만 3000여 마리가 살고 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로드킬과 농가 출현 등으로 차츰 골칫거리가 되어가고 있다.

 노루는 참 고라니와 생활 습관이 닮았다. 단독생활을 하고 생김새도 엇비슷하다. 둘 다 수영을 잘한다. 그리고 울부짖을 때도 둘 다 ‘악악!’하고 고함지르듯 운다. 그 둘의 주요 구분 포인트는 노루 수컷의 작은 뿔과 그리고 전체 노루의 유난히 빛나는 하얀 엉덩이이다. 귀 모양도 조금 다르다. 그렇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갛고 노루 궁둥이는 하얗다. 그래서 나무 위에 털처럼 하얗게 달린 버섯을 노루궁뎅이 버섯이라고 한다.고라니와 궁노루 수컷은 뿔 대신 흡혈귀 같은 기다란 한 쌍의 뾰족 송곳니를 가지고 있다. 노루는 주로 산 중턱이나 정상 부근에 살고 고라니는 풀밭이나 산자락에 산다. 그래서 고라니는 흔하게 우리 주변에 볼 수 있지만, 노루는 산에서만 드물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릴 적에는 그마저도 구별이 힘들다. 고라니 새끼인가 하고 키우면 어느새 하얀 궁둥이의 노루가 되어 있기도 하다.

 노루는 우리 옛이야기에도 단골로 등장한다. 흔히 사슴으로도 전해지지만 ‘선녀와 나무꾼’에서 나오는 동물도 노루라고 한다. 식물에도 노루란 이름이 많다. 봄의 전령사인 작고 앙증맞은 보라색 꽃도 ‘노루귀’이고, 먼지떨이 같은 빨간 꽃을 층층으로 피우는 식물을 ‘노루오줌’이라고 한다. 재봉틀이나 장도리의 두 개로 갈라진 부분을 ‘노루 다리’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고라니는 많지만, 노루는 이제 거의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고라니는 인간 주변에서 번성하지만, 노루나 산양은 인간이 사는 환경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산에만 소수가 고립되어 사니 유전적 다양성도 떨어지고 해서 차츰 멸종의 길을 스스로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동물도 임계 수치가 있고 그 이하로 떨어지면 급격한 멸종으로 내몰리게 된다. 그땐 사람이 어쩔 수 없이 개입해야 그나마 전멸이라도 막을 수 있다. 지금의 산양과 반달곰이 그렇고 이젠 청노루와 궁노루가 아무도 모르게 그 단계를 밟고 있지 않은지 심히 염려된다.  최종욱 (수의사)

 ▲노루(獐(장), Roe Deer, Chinese Roe)

 - 학명 : Capreolus pygargus

 - 분류 : 척삭동물 > 포유강 > 우제목 > 사슴과 > 노루속 > 시베리아노루(2아종)

 - 크기 : 몸길이 95~151cm, 체중 15~50kg

 - 식성 : 초식성(풀, 나무줄기, 나뭇잎, 나무순)

 - 수명 : 평균 10~12년

 - 서식지 : 중국, 카자흐스탄, 한국, 몽골, 러시아, 높은 산림지대, 계곡, 들판

 - 번식 : 임신기간 통상 150일~300일(착상지연현상), 한번에 두마리의 출산, 4~5개월후 이유

 - 천적 : 인간, 눈표범, 시베리아호랑이, 아무르표범, 스라소니, 몽골늑대, 들개

 - 멸종위기등급 : 최소관심(IUCN)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드림투데이(옛 광주드림)를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드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