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kangaroo in Austria.’ 동유럽 빈 여행 중 ‘오스트리아엔 캥거루가 없다’는 문구가 새겨진 기념품들이 즐비해 눈길이 꽂혔다. 남반구의 ‘오스트레일리아’와 유럽의 ‘오스트리아’를 헷갈리는 관광객이 그만큼 많았던 모양이다. 화가 날 법한 현실을 반전시켜 아예 상품화해 버렸다. 우리에게 ‘없음’을 ‘자산’으로 만든 신박함이 상술보다 지혜로 여겨져 구매 욕구를 더 키웠다.
‘있음’을 확인하는 건 쉬우나 ‘없음’은 실재화가 어렵다. 증명 대신 활용, 반전의 스킬을 문학에서도 발견한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를 쓴 정재찬 한양대 교수. 그는 저서에서 김광균의 시 ‘설야’ 를 해설하며 ‘없음’을 증명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는 구절로 각인된 시다. 눈 오는 밤은 고요해서 그런 소리까지 들릴 듯하다거나, 애초에 들릴 리 없는 그 소리처럼 절정의 고요로 읽힐 수 있겠다. 즉 소리 ‘없음’이다. 없는 소리를 증명하는 방식을 정 교수는 광고에서 차용했다. ‘이 소리가 아닙니다’로 각인된 용각산 광고다. 여러 잡소리를 더한 뒤 이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없음’을 감각화하는 것이다. 예의 광고에서 여러 소리를 등장시킨 뒤 마지막 카피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가 그 절정이다.
하지만 이는 청각적 효과이지 ‘없음’이란 본질이 변화할 리는 만무하다.
‘없음’의 실체는 ‘있음’과 짝을 이룸으로써 확연하다. 하지만 세상을 있음과 없음, 선과 악, 미와 추 같이 상반되는 두 가지 개념으로만 분류할 수 있는가? 이같은 이분법적 사고방식에서 비극이 잉태된다.
FIFA 중징계 부른 광주FC 미숙행정
최근 본보는 광주FC가 행정 실수로 FIFA로부터 중징계를 당했다는 단독기사를 이어가고 있다. 최초 보도 후 구단 측이 3자를 통해 ‘기사를 쓴 의도가 무엇이냐?’며 탐문해 왔다. ‘예전에 광주FC 관련 기사를 잘 쓰지 않았는데, 갑자기 비판 기사가 나온 배경이 뭐냐?’ 는 식이었다. ‘어떻게 알았느냐?’와 ‘혹시 발행인이 변경돼 그런 것인가?’라는 얘기까지 거론되니 당혹스러웠다.
우회적으로 연락해온 이에게 말했다. “사실만 봐라. ‘뭔 (숨겨진) 의도가 있겠냐마는 ‘없음’을 증명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성도 못 느낀다”고.
본보의 기사는 광주FC가 어처구니없는 행정적 실수로 국제축구연맹(FIFA)로부터 ‘선수 영입 중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는 ‘팩트’에 기반한다.
사정은 이렇다. 광주FC는 지난해 알바니아 출신 아사니 선수 영입 당시 내야 할 ‘연대 기여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2001년 FIFA가 도입한 ‘연대 기여금’은 해외 이적 선수 발생 시 이적료의 5%를 선수가 성장한 소속팀과 학교에 기여금 조로 기부하도록 한 금전이다. 광주FC가 내야 할 잔여 기여금은 총 3000달러(한화 424만 원)였지만 구단 실수로 이를 누락했다.
지난해 8월 송금 당시 문제가 발생했다. 최초 광주FC가 FIFA에 낸 연대기여금은 실제 납부해야 하는 금액보다 소액이 부족했다. 금액이 부족한 걸 확인한 FIFA는 지난해 9월 광주FC에 전액 반환했다. 문제는 이 반환 금액이 원래 송금했던 계좌가 아닌 다른 계좌로 입금되면서 광주FC가 본도 보도 시까지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FIFA가 수차례 연대기여금 납부를 통보했지만 광주FC는 대응하지 않았다. 이미 연대기여금을 완납했다고 착각, FIFA의 통보를 행정적 착오로 인식했다는 게 본보 취재 결과다.
지난해 12월, 결국 FIFA는 ‘선수 영입 중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광주FC는 이 역시 모르고 있었다. 이후 여러 선수를 영입해 국내리그 뿐만 아니라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엘리트(ACLE)까지 출전했으니, 결과적으로 해당 게임에 부정선수들이 출전한 셈이 됐다.
비난할 상대 찾지 말고 제도 개선 힘쓰길
이렇게 중차대한 사고를 인지하고 취재해 보도했는데 의도를 따지자면 어쩌자는 건가? 사실 관계엔 관심 없다는 의미인가? 의도가 ‘있고’ ‘없고’에 따라 대응이 달라지는 이분법적 사고라면 재발 방지·제도 개선이라는 본질은 묻힐 수밖에 없어 우려스럽다.
의도가 있다고 하면 “거봐?”하며 무시할 것인가? 없다고 하면 “왜 이러세요?” 구슬릴 텐가? 현상에 대한 이분법적인 양극화. 진실이 희생되는 프레임이다.
문제가 생기면 비난할 개인이나 집단을 찾지 말라고 했다. 한스 로슬링과 그의 자녀가 함께 쓴 사회·통계학 교양서 ‘팩트풀니스’에서 제시하는 ‘비난 본능’이다.
저자는 상황을 초래한 여러 원인이 얽힌 시스템을 이해하고 개선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개인을 비난하다보면 다른 이유에 주목하지 못해 앞으로 비슷한 문제의 재발을 방지하는데 힘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같은 비난 본능을 억제하기 위해 희생양을 찾으려는 생각을 버리는 게 중요하다.
‘팩트풀니스’에 기반해 광주FC에게 지금 들려주고픈 한마디는 이것이다.
‘악당을 찾지 말고 원인을 찾으라.’
채정희 편집국장 goodi@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