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책방 우리 책들] 나와 없어(2022, 논장)

나와 없어(2022, 논장)
나와 없어(2022, 논장)

 다가오는 29일 전주팔복예술공장에서 2025전주국제그림책도서전이 열린다. 매년 5월마다 그림책 작가, 독자, 출판사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장이 되는 전주국제그림책도서전은 국내외 유명 작가들을 초청해 다양한 강연과 전시회를 열기도 하고, 사인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전북 전주에서 개최되는만큼 광주에서 이동하기도 그리 크게 부담이 되지 않을테니 많이들 방문해보실 수 있다면 좋겠다.

 올해 초청되어 사인회를 진행하는 작가 중 필자의 관심을 확 끌어당긴 이름도 있었다. 바로 ‘키티 크라우더’다. ‘밤의 이야기’, ‘포카와 민 시리즈’, ‘시간의 노래 얀 투롭’등 멋진 그림책들을 출판한 이 작가는 크레파스와 같은 따뜻한 색감으로 환상적 세계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환상적 세계라고 해서 마냥 포근하고 귀여웁기만 하지는 않다. 키티 크라우더의 환상적 세계는 정말이지 ‘진짜’ 같아서, 그만큼 날카롭고 또 아플 정도로 적확하곤 하다. 오늘 소개할 책은 그 중에서도 죽음과 상실, 그리고 그것의 극복을 그려낸 책 ‘나와 없어’(2022, 논장)다. ‘나와 없어’는 ‘나’, 즉 라일라의 상상 속 친구 ‘없어’를 통해 가족 이야기를 한다.

 ‘나’의 엄마는 돌아가셨고, 아빠는 그 뒤로 걱정이 많다. ‘나’는 ‘없어’를 위해 식탁에 아무 것도 담지 않은 접시를 놓는다. ‘나’는 헛간으로 ‘없어’를 데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준다. ‘엄마’가 아직 살아계실 때 ‘아빠’가 온갖 종류의 꽃씨들을 싹틔우던 곳으로, ‘아빠’는 ‘라일라’가 여기 오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아빠’는 ‘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모든 것을 피한다. 엄마가 좋아하던 히말라야푸른양귀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엄마는 이 꽃을 아주 잘 보살펴야 한다고 했어. 엄마가 해 준 이야기가 있는데, 히말라야에서는 얼음이 어는 기간이 아주 길어서, 그 사이에 이 양귀비꽃이 영영 사라질까 봐 흰눈썹울새 한 마리가 씨앗 하나를 부리에 물고 날아갔대. 흰눈썹울새는 나중에 그 씨앗을 어떤 공주의 정원에 심었고…….”

 “없어야. 엄마가 공주였을까?”

 ‘나와 없어’ 중에서.

 시간이 흘러도 ‘아빠’는 여전히 걱정이 많고, 상상 속 친구일 뿐인 ‘없어’는 상황을 마법처럼 바꿔놓을 수 없는 존재다. ‘없어’는 씨앗을 심으라는 조언을 할 뿐이다.

 왜 나는 엄마와 함께 하늘나라로 떠나지 않았을까요?

 엄마는 지금 히말라야에 있을 거예요.

 없어는 나보고 씨앗을 심으래요.

 “나가, 없어. 넌 아무것도 몰라!”

 ‘나와 없어’ 중에서.

 ‘없어’가 사라진 뒤, ‘나’는 텅 빈 정원에서 흰눈썹울새 한 마리를 발견한다. 바로 그날, 씨앗을 심은 ‘나’는 하나하나 유리 덮개를 씌워 보호하고, 민달팽이가 꽃을 먹어치우지 않게 고슴도치를 부른다. ‘아빠’는 얼마 뒤 일터의 주인에게서 자네 정원의 꽃이 예쁘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는 그토록 못 본 척 했던 정원으로 달려가, ‘나’가 라일락 나무와 히말라야푸른양귀비 사이에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너는 정말 네 엄마 딸이구나.” 라고 ‘아빠’는 말한다.

 그 이후로 ‘아빠’는 달라졌다. 걱정보다 사랑을 품고 ‘나’를 안아주었다. ‘엄마’가 남기고 갔던 ‘없어’의 인형을 드디어 ‘나’에게 선물해주기도 한다. ‘나와 없어’를 처음 읽을 때는 ‘아빠’가 참 원망스러웠다. 본인도 힘들 테지만 아이인 ‘나’는 이 상실로부터 얼마나 힘겨움을 겪을 것인가. 그것을 고려해주지 않는 모습이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어쩌면, ‘아빠’는 어른이기 때문에 현재에 머무르는 법을 걱정하는 것으로밖에 알지 못했는지 모른다.

 반면 ‘나’는 ‘없어’와의 교류로 현재에 머무는 독특한 방식을 알아낸다. 그와 함께 놀고, 싸우고, 외면하며 외로움을 느끼면서 상실이 있는 현재는 과거를 추억하는 방식으로만 온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간 것이다. 누군가를 잃은 우리의 삶은 이전과 같지 않다. 상대의 빈자리가 존재한다.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건 새로운 사람도 아니고, 강단있는 마음도 아니고, 그를 추억하고 추모하는 마음이다. 그렇게 빈자리가 더는 나를 괴롭히지 않을 때까지, 떠나간 사람이 영영 떠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설득해야 한다.

 그렇게 되고 나서야 ‘아빠’는 ‘나’에게 ‘엄마’의 선물을 전해줄 수 있었다.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 친구의 인형을 말이다. 가끔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우리를 현재에 단단히 묶어주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문의 062-954-9420

 호수(동네책방 ‘숨’ 책방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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