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곰순의 귀촌일기](109) 냥이들의 육아일기 1
곰돌곰순은 한재골로 바람을 쐬러 가다 대치 마을에 매료되었다. 어머님이 다니실 성당이랑 농협, 우체국, 파출소, 마트 등을 발견하고는 2018년 여름 이사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마당에 작물도 키우고 동네 5일장(3, 8일)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막걸리에 국수 한 그릇으로 웃음꽃을 피우면서 살고 있다. 지나 보내기 아까운 것들을 조금씩 메모하고 사진 찍으며 서로 이야기하다 여러 사람과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 연재를 하게 되었다. 우리쌀 100% 담양 막걸리, 비교 불가 대치국수가 생각나시면 대치장으로 놀러 오세요 ~ 편집자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깻잎이’
3월이 지나자 깻잎이, 까망이, 삼이 배가 조금씩 불러 오기 시작했습니다. 4월이 되고 하루하루 흐르면서부터 애들 상태를 보니 언제 새끼를 낳아도 이상하지 않을 거 같은 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곰돌곰순은 아침에 밥을 줄 때마다 나타나지 않은 날은 어디엔가 새끼를 낳았겠거니, 하루이틀 기다리면 올 거니까, 하고 이야기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깻잎이가 가장 먼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배 상태로 보면 삼이가 가장 먼저라 생각했는데. 보통은 며칠 지나 아침 밥 줄 때 나타나서 같이 먹곤 합니다. 오전에 마당에서 일하고 있을 때도 나타나는데, 좀처럼 새끼들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습니다.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집사들 없을 때 새끼들에게 가는 거지요.
깻잎이도 그러했는데, 한 달이 넘어도 도무지 새끼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이렇게 오랫동안 새끼들을 발견하지 못할 때가 없었는데. 셋째의 경우는 워낙에 이리저리 물고 다니며 보금자리를 옮기곤 했으니, 그랬다고는 해도, 다른 냥이들은 그처럼 자주 옮겨 다니지는 않았으니까요.
일주일 전 아침 공기가 차가운, 좀 이른 시간에 현관문을 열고 토방으로 나섰습니다. 그러면 왼쪽 선반에 있던 냥이들과 마당 여기저기 있던 냥이들이 달려옵니다. 그런데 오른쪽을 보니 깻잎이가 거실창 앞 초코하우스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겠어요. 아, 깻잎이가 저기에서 육아를 하고 있구나, 정말 잘 했다, 잘했어. 집도 튼튼하고, 비와 눈을 막으려 바깥을 장판으로 두른 데다 바닥도 담요로 뽀송뽀송하게 해 놓았으니.
집사들이 아무리 좋은 집을 마련해 주어도 냥이들이 꼭 그곳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한 마리씩 들락거리는데, 그러다 어미들이 그곳에 새끼를 낳고 기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곰돌곰순은 당장은 아니어도 냥이들이 언젠가 자기들이 필요하면 언제든 이용할 수 있도록 토방과 마당, 정자, 옥상에 쉼터들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며칠 전 새벽 일어나자마자 거실 창문을 내다보니 아직 어둑어둑한데 깻잎이가 초코하우스 앞에서 쉬고 있고, 어미 곁을 새끼냥이들이 아장아장, 뒤뚱뒤뚱, 비비고, 뒹굴거리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바라보다 영상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어제, 오늘 보니 이제 새끼들이 바깥으로 나오기 시작합니다. 깻잎이도 더 이상 안에서만 육아할 수는 없다는 걸 아는 거지요.
그런데 바깥으로 새끼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깻잎이가 얼마나 새끼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지, 아예 멀리 가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그루밍을 하거나 젖을 먹이거나 그럽니다. 커피 한 잔 타서 나와보니 깻잎이 그네 밑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초코하우스 쪽에는 새끼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깻잎이가 집으로 들여보낸 후, 자는 걸 확인하고는 집이 잘 보이는 곳에서 멀찍이 떨어져 휴식을 취하고 있는 거지요.
‘까망이’의 첫 육아
까망이는 작년 6월경 갑자기 마당에 나타나 처량하게 울어대던 새끼냥이였습니다(92화 참조). 한동안 집사들을 피해 도망다니더니 한 달여가 지나 셋째 새끼들, 깻잎이 새끼들과 함께 어울려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두 달여가 지나서야 간식을 주면 다가오는 까망이를 조금씩 만져볼 수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현관문을 열면, 가장 먼저 까망이가 달려 나와 곰돌이 앞에서 왔다갔다 합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다리 사이를 왔다갔다 하다, 곰돌이 허리를 펴면, 먼저 계단을 내려갑니다. 그리고는 앞장서 대문 옆 창고까지 곰돌이를 인도하고는, 사료를 꺼내 준비하는 걸 지켜보다 다시 토방으로 졸래졸래 인도합니다. 곰돌이 걷다 멈추면 얼른 따라오라고 울어댑니다. 그게 하루도 빠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이쁜 짓을 많이 하던 까망이가 봄 어느 날 보니 살이 좀 올랐나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른 아침마다 앞장서 인도하며 걷는 까망이의 배가 점점 불러오는 모습에서 아, 시간은 이렇게 흐르는구나를 알아가기도 했답니다. 금방이라도 출산할 듯한데, 어디에 새끼들을 낳을까. 여느 날처럼 아침 일찍 곰돌이를 인도하며 걷는 까망이를 보니 배가 홀쭉했습니다. 어, 까망아, 너 출산했구나했지요. 이렇게 바로 나와도 돼? 했더니 까망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얼른 오라고 울어댑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새끼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식사 때면 늘 먼저 나와 있고, 밥을 먹은 후에도 계속해서 토방이나 현관 방충망 앞에서 간식 주라 울어대니까요. 곰돌곰순이 참 궁금했겠지요. 도대체 쟤는 새끼들을 어디에 두고 늘 밥만 먹으면 토방에서 사는지. 왜 새끼들한테 가지 않는지. 혹시, 어릴 때부터 어미가 하는 걸 자연스럽게 배웠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일주일 전쯤 까망이는 마당 소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토방 선반에서 찍찍, 소리가 났습니다. 어, 새끼냥이 소리인데, 설마, 하며, 선반의 비를 막아주는 비닐 커튼을 조심히 밀어내면서 안쪽 상자를 보니 세상에, 새끼들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냥이들을 보면 곰돌곰순이 쉽게 찾지 못하는 곳에 새끼들을 낳고 길렀는데, 까망이는 떠-억, 하니 밥 먹는 곳 바로 앞 선반의 상자를 육아 장소로 정했네요.
모든 냥이가 외모도 다르고, 개성도 다르지만, 까망이는 좀 유별납니다. 유기묘로 마당에 들어와 집사들을 피해 돌아다니던 두어 달만 그렇지, 이후로 붙임성 하나는 다른 냥이들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입니다. 식사 때면 항상 앞장서 인도하고, 밥을 먹고 난 후, 집사들이 마당에서 일하거나, 정자에서 쉴 때도 늘 간식주라고 졸라댑니다. 먹어도 먹어도 늘 허기져 하는 거 같아, 그렇지~. 곰돌곰순은 새끼 때 버려져서 아마, 영혼이 허기져서 그러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첫 육아인데도 새끼들하고 있는 시간보다 어째 토방이나 마당 여기저기에서 쉬거나 자는 모습이 더 많이 관찰됩니다. 에구, 첫 육아라 오죽 힘들면 그럴까, 하다가도 가끔은 곰돌곰순이 좀 걱정이 되겠지요. 까망아, 새끼들하고 있어야지, 얼른 올라가라, 해 보지만, 집사들 곁을 잘 떠나지를 않습니다. 그래도 모든 어미가 다 똑같으니, 까망이도 집사들이 없는 하루 많은 시간을 새끼들과 보내겠지요.
‘삼이’의 지혜로운 육아
가장 배가 불렀던 삼이가 가장 늦게 새끼를 낳았습니다. 깻잎이, 까망이는 홀쭉해져서 지내는데도 삼이는 여전히 배가 불렀는데, 아니, 더 심해져 갔는데, 어느 날 하루 정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식사 시간에 나타나더니 그 뒤로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며칠 동안 밥 먹을 때만 보이더니, 어느 날부터인가는 자주 보였습니다.
삼이는 ‘외출냥이’의 표본입니다. 오전에 마당과 정자에 나가 보면 보이지 않다가도 일하고 있으면 담을 넘어 오거나, 옆집 지붕을 걸어와 대문 옆 선반으로 툭, 뛰어내려 마당으로 내려옵니다. 쉬는 날에 보면 오후 늦게서야 들어오기도 합니다. 셋째처럼 다른 곳에서 낳았다가 좀 크면 데려오려나, 싶은 생각도 들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외출했다가도 꼭 들어오는 걸 보면 아마 마당 어딘가에 새끼들이 있는 거 같기는 했습니다.
이번 봄에는 비가 오는 날이 잦은데, 그런 날은 아침 운동을 옥상에서 합니다. 지난주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 옥상에서 운동한 지 한 시간 정도 지났는데, 갑자기 눈 앞으로 쓰-윽, 하고 삼이가 지나갔습니다. 어, 삼이야, 너 언제 올라왔어? 삼이는 신청도 안 하고 그대로 계단을 내려갔는데요. 언제 올라왔지, 아니, 잠깐, 지금까지 여기 있었나, 그럼, 아, 하고 얼른 옥상에 있는 냥이 집들을 살펴보았겠지요. 두 개 집 중 앞쪽 작은 집에 새끼들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올라온 곰순이에게 말했더니, 역시나 놀랍니다. 세상에, 그럼 우리가 옥상에서 운동하는 날이 자주 있었는데, 그때 삼이가 새끼들하고 있었다는 거잖아요. 운동하다 보면, 간식주라 따라 올라온 다른 냥이들과 함께 삼이도 섞여 있어서 전혀 짐작을 못했는데.
실은, 깻잎이와 까망이가 출산하고 나서 곰돌곰순이 삼이 걱정을 좀 했더랍니다. 셋째처럼 삼이도 훌쩍 떠나버릴까 봐.
곰돌곰순이네 냥이들 시조라 할 수 있는 흰냥이의 첫 새끼였던 ‘셋째’. 셋째와 5년여를 함께 지내다 보니, 아주 나이 들어 거동이 힘들 때까지 곰돌곰순이와 함께 지낼 줄 알았답니다. 지금 함께 지내고 있는 냥이들 대부분의 어미이기도 하고. 그런데 작년 초가을 무렵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야말로 감쪽같이. 반년이 넘도록 얼굴을 비추지 않고 있습니다. 한 번은 올만도 한데. 서운하게.
흰냥이를 닮아 새침하기도 하고, 우아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았던 셋째는, 절대 집사들에게 먼저 다가오지 않았는데, 새끼들을 육아할 때는 닭가슴살을 주면 절대 혼자 먹지 않고 꼭 새끼들에게 가져다주었답니다. 어미였던 흰냥이가 그러했듯 두 번, 세 번 주어도 역시 마찬가지로. 눈치도 빨랐기에 마당의 냥이들이 늘어나는 걸 보고는 어느 날 흰냥이가 새끼들에게 자리를 비워준 거처럼, 셋째도 며칠 동안 이웃집 지붕 위에서 마당의 냥이들을 내려다보더니, 훌쩍, 떠나버렸지요.
삼이가 며칠 동안 아침밥 먹을 때만 보일 때는 셋째처럼 그러는 줄 알고 내심 걱정했는데, 다행히 옥상 쉼터에 새끼들 보금자리를 잡았네요.
어차피 성묘가 되면 냥이들이 독립을 하지만, 이건 좀 다르답니다. 곰돌곰순은 냥이들이 출산과 육아를 안정되고 안전한 곳에서 하고, ‘외출냥이’ 시기를 지나 보내면서 충분히 세상 속으로 나갈 준비를 한 후에 독립했으면 한답니다. 그래서 삼이가 참, 현명하게 보이겠지요. 흰냥이와 셋째의 ‘배려 깊은 지혜’와는 또 다른 모양의 ‘삼이만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삼이가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마당의 여기저기를 살피며 힘들게 육아를 하겠지만, 새끼들과 함께 다른 냥이들과 오랫동안 공존의 길을 모색하기를 바라봅니다.
곰돌 백청일(논술학원장), 곰순 오숙희(전북과학대학교 간호학과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