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곰순의 귀촌일기] (110) 우아하고 고결한 꽃
곰돌곰순은 한재골로 바람을 쐬러 가다 대치 마을에 매료되었다. 어머님이 다니실 성당이랑 농협, 우체국, 파출소, 마트 등을 발견하고는 2018년 여름 이사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마당에 작물도 키우고 동네 5일장(3, 8일)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막걸리에 국수 한 그릇으로 웃음꽃을 피우면서 살고 있다. 지나 보내기 아까운 것들을 조금씩 메모하고 사진 찍으며 서로 이야기하다 여러 사람과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 연재를 하게 되었다. 우리쌀 100% 담양 막걸리, 비교 불가 대치국수가 생각나시면 대치장으로 놀러 오세요 ~ 편집자주.
클레마티스 꽃 이름을 알아내다
귀촌 이후 꽃농원을 자주 찾으며 여러 꽃을 심고, 가꾸고, 알아가며 지내던 어느 날, 산책하며 어느 집 앞을 지나는데 화사하니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줄기는 가느다란 게 쭉 뻗어 있고, 꽃잎이 여러 장 방사형으로 피어 있는데 작은 꽃도 있고, 큰 거도 있었습니다. 그날은 꽃 이름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 꽃을 사러 농원을 들렀는데 전에 보았던 그 꽃이 있었습니다. 자기야, 이거 그 꽃 맞죠? 맞네, 맞아. 이거, 이름이 머에요? 어머어머, 이름도 예뻐라. 자기야 이거 살까?
꽃 화분이 비쌌습니다. 그래도 해마다 핀다면 못살 게 없다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알아보는데, 결정적으로 월동하는지 장담을 못하는 주인장. 실내에서 주로 관상용으로 기르면 좋다고 하고. 한 해만 보기에는 가성비가 떨어지는 거 같아, 아쉬운 발걸음을 떼었습니다.
그렇게 잊어버리고 지내다 3년 전 어느 날, 마당을 거닐던 곰순이 왈, 자기야 여기에 그때 보았던 그 꽃을 심으면 어때요? 그리고 저기랑, 저~기도. 곰순이 가리키는 곳마다 덩굴을 타고 올라가는 꽃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했기에 곰돌이도 동의했겠지요.
근데, 그때 좀 비싸지 않았어요? 인터넷으로 구매하면 좀더 쌀 거에요. 한번 알아볼게요, 하는데, 둘다 꽃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1주일만 지나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농반진반 이야기하곤 하는데, 몇 년 전이라 아무래도 이름을 기억하는 건 무리였지요.
자료 찾는데 일가견이 있는 곰순이 핸드폰으로 한참 조사하더니, 자기야, 이 꽃 아니에요? 어디 어디, 아, 맞네, 맞어. 어떻게 딱 찾았어요? 꽃 이름이 ‘클레마티스’입니다. 씨를 뿌리면 잎이 나오면서부터 줄기가 뻗어 올라가는 성장 속도도 빠르고, 추운 겨울도 이겨낸다고.
화려하고 청순하게 피어나는 클레마티스
봄이 되면 온 마당에 꽃들이 피어납니다. 4월에서 5월, 두 달이라는 자연의 시간은 인간의 지혜로는 감히 따라 할 수도 없고, 따라가지도 못할 정도의 놀라운 변화를 보여줍니다. 귀촌의 즐거움 중 크게 두 가지를 꼽아 보면, ‘자고 일어나면 날마다 기대와 설레임이 생기고, 똑같은 하루가 단 하루도 없다.’
5월 중순이면 클레마티스 꽃이 한 송이씩 피기 시작하는데, 마당을 산책할 때마다 곰돌곰순은 언제 꽃 피나, 하며 오매불망 고대했답니다. 클레마티스가 자리한 곳은 모두 세 곳으로, 인동덩굴 옆 아치, T자 화단 아치, 논 담쪽인데, 어느 곳에서 먼저 필까, 하며 두리번거렸겠지요.
그러던 5월 말 클레마티스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아래쪽에서 먼저 핀 곳도 있고, 아래와 위에서 동시에 핀 곳도 있습니다. 꽃봉우리들은 왜 그리 많은지, 자기야, 이 꽃송이들이 다 핀다는 거잖아요, 하며 놀라기도 합니다. 하루이틀만 지나도 금세 여러 송이 꽃들이 피어 있는 걸 확인하게 됩니다. 그럼, 이미 지난 그 하루이틀 사이에 꽃 피는 걸 놓친 거보다 이틀 새에 갑자기 여러 송이가 확, 피어 있는 걸 더 놀라워하지요.
그러다 보니 저녁에 만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먼저 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해 주는 말이, “자기야, 오늘도 한 송이 피었어요.”, “오늘은 어땠어요?”, “자기야, 오늘은 여러 송이가 피었어요.” 하고 있습니다.
꽃 색깔은 연분홍색, 자주색, 보라색인데 처음부터 꽃 안쪽과 바깥쪽 색이 다르게 피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 색이 더 옅어지거나 붉어지기도 합니다. 전체적으로 화려하면서도 청순함이 묻어나옵니다.
T자 화단은 작은 아치를 세우고 덩굴식물이 타고 올라가며 꽃을 피우면 좋겠다고 생각해 재작년 아치 양옆에 클레마티스 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작년 늦가을 왼쪽 줄기보다 오른쪽 줄기가 일짝 말라가는 걸 보고는 놀라서 아래쪽을 보니 줄기가 잘려있었습니다. 냥이들이 화단 밑으로 숨기도 하고, 해를 피해 낮잠을 자기도 하는데, 그때 부러져서 꺾였나 봅니다.
월동하고 필까, 새로 심기도 머해, 그냥 두었는데, 올해 잎이 피어나는 걸 보고는 바로 꽃씨를 심었습니다. 이제 어린 줄기가 어른 손 한 뼘 정도 올라오는 중이니 내년에는 아치 양쪽으로 줄기가 감아 올라가며 클레마티스 꽃이 피어나는 걸 볼 수 있겠지요.
세련된 우아함과 고결한 아름다움
인터넷으로 여러 자료를 찾아보니, 클레마티스는 전 세계의 온대 지방에서 자란다고 합니다. 9월 12일의 탄생화라고 하는데, 왜 이 날일까. 이를 다룬 자료는 거의 찾을 수 없고, 대신 AI 답변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탄생화는 대게 학술적 성격보다 전통과 상징에 의해 결정된다고 합니다.
꽃말은 ‘고결’, ‘마음/정신의 아름다움’. ‘여행자의 기쁨/휴식처’ 등. 클레마티스(Clematis)는 그리스어 ‘klema’(포도 등의 덩굴)를 어원으로 하는데, 지주대를 해 주면 덩굴로 붙어서 자라나는 모양이 마음 깊은 곳의 강한 열정과 품격, 고상하고 순결함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또 마음/정신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지혜,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을 중시하여 ‘향상심’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 신전 주변에 클레마티스가 자란다고.
중세 유럽에서는 길을 가던 나그네들이 덩굴을 이루어 아름답게 피어 있는 꽃을 보느라 클레마티스 그늘 밑에서 꽃을 감상하며 아름다움에 푹 빠져, 쉬기도 했다고도 합니다. 이 외에도 서로에 대한 ‘신뢰’, ‘사랑’ 등 아름다운 꽃말이 많습니다.
많이 알려진 클레마티스 전설. 옛날 어느 마을에 금실 좋은 부부가 살았습니다. 가난해서 자식 낳기 전까지 조금의 땅이라도 갖자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일했습니다. 부인을 사랑한 남편은 부인 몫까지 열심히 일했는데 어느 날 해가 떴는데도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일어나지 못한 남편을 위해 아내는 유명한 의원을 찾아다니고, 온갖 약초를 달여 먹였는데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나도 차도가 없자 아내는 남편을 업고 다니면서 약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어느 날 쉬고 있던 걸 지나가던 노인이 보게 되었습니다. 노인은 부인에게 사정을 듣고 난 후 메고 있던 봇짐 속 약초 꾸러미에서 하나의 약초를 주며 오직 이 약초만 달여 먹이라고 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부인이 노파의 말대로 약초를 달여 먹였더니 남편이 호전되기 시작했습니다. 약초가 떨어지자, 부인은 온산을 뒤져 그 약초와 똑같은 약초를 찾아 계속해서 남편에게 달여 먹였더니 남편이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 약초를 ‘큰꽃으아리’라 부르는데, 바로 클레마티스입니다.
전설을 따라가다 보니 왜 클레마티스 꽃말이 서로에 대한 ‘신뢰’, ‘사랑’, ‘고결’, ‘아름다움’, ‘지혜’, ‘향상심’인지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만나는 사람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생명에게,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지를 다시 일러주니까요. 그 마음가짐이 항상, 좀 더 좋은 쪽으로, 좀 더 높은 쪽으로 고양되기를, 그래서 ‘향상심’을 결코 잊지 않기를, 오늘도 바라봅니다.
곰돌 백청일(논술학원장) 곰순 오숙희(전북과학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