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난 4일 전남도청 입구에선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뭔가 이루고 난 뒤의 뿌듯함, 홀가분함 같은 것이었다.
속으론 ‘이제 됐다’ 하는 쾌감도 있었으리라. 새 정부를 향한 기대감으로 충만한 표정이 만나는 공무원마다 느껴졌다.
무엇보다 지난해 다 될 것 같은 국립의대 신설이 얼토당토않은 비상계엄으로 공중분해 된 쓰라림을 만회할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이뿐이겠는가마는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며, 지역 미래 설계를 제대로 해볼 수 있겠다는 막연하지만, 확실한 기대감이다.
물론 새 정부 출범을 지역발전의 지렛대 차원으로만 접근하고 계엄, 내란 같은 중대 사건에 분연히 떨쳐 일어선 정의감을 빼놓아선 안 될 것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지역 발전 지렛대로
‘약무호남 시무국가’이거늘, 정의감을 호남에서 배제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상상도 못 한다.
현재 국립의대 신설 같은 절박한 문제가, 군공항 이전 같은 난해한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안 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황 속에서 뭔가 ‘확실한 손’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안도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취임사에서 밝혔듯, 때로는 호남의 대통령이 되어 호남의 소망을 들어줄 것이다.
또 때로는 영남의 대통령이 돼 그곳의 숙원을 들어줄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통합 대통령의 초석을 다질 것이다.
지금 정치권, 경제계, 언론 등에서 요청하고 있는 것 모두 통합과 치유가 아닌가. 분열과 대결로 점철된 저간의 사정이 그 시급성을 웅변하고 있고, 이에 동의하지 않을 국민이 없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은 모두 ‘통합을 외치지만 실제 그것을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로 귀결된다.
그런데 ‘다음 말’이 어눌하다. ‘다음 말’은 통합을 실천하는 방법론인데, 소위 지식인과 엘리트라는 사람들은 중앙정부 시각에서 조망하고 논할 뿐이다.
다시 말해 정권 창출에 결정적 역할을 한 호남의 미래를 어떻게 할 것인가와 연관시키지 않고, 그럴 생각도 없어 보인다.
통합을 위한 행보로 무엇이 있을까, 우선 지역민의 입장에서 호남에 하나, 영남에 하나, 이런 식으로 지역 발전사업을 던져주는 게 적절하느냐의 물음으로 바꿀 수 있겠다.
사실 이런 기계적 균형은 일면 적절성을 확보한다. 무슨 말이냐면 부산으로 해양수산부를 이전하면 전남에는 농림축산식품부를 옮겨주는 것이다.
나아가 전남은 정권 창출을 선도했으므로, 예를 들어 농협중앙회를 이쪽으로 동시에 옮기는, 이른바 ‘+α’를 주는 게 더 적합하고 합리적이다.
전남이 농림축산식품부, 농협중앙회 같은 기관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면 모를까, 설령 그런다고 하더라도 억지로라도 떠넘겨주는 게 은혜를 받은 정부의 도리가 아닐까 한다.
‘기계적 중립’과 ‘역차별’ 사이
자칫 통합이란 말이 ‘대등하게 대한다’는 식의 일반적 언어로 풀이되면, 전남은 상대적으로 찬밥 신세나 비슷한 위치에 설 수 있음이다. 결론적으로 통합의 오류가 된다.
마치 김대중 대통령이 호남인 중용 인사만 펴면 안 된다며 기계적 균형을 맞추다 보니 호남인 역차별이란 소리가 나온 것과 같은 이치다.
호남은 지금 부의 축적, 정부 내 두터운 인물층으로 굳이 새 정부까지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할 처지가 아니다. 한마디로 배가 고프다.
통합이 진정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그럴 만한 경제적 하부구조를 호남에 만들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앞으로 새 정부가 국정과제로 펴갈 국가 균형 발전이란 것도 기실 호남 우선 발전과 다를 바 없다.
혹시 호남이 역사적으로 워낙 ‘없이 살다’ 보니 조금만 먹거리 사업을 던져줘도 만족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배은망덕이 아닐 수 없다.
호남은 이번에도 대권주자 한 명 없이 열렬히 정권 창출을 도왔다. 이런 곳이 어디에 있는가.
이 지역은 정의로우면서 풍요로운 것이 늘 화두다. 이 두 가치가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새 정부는 과거 정부와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통합에서 나서는 대통령이 기계적 균형이라도 잘 맞춰주면 그것대로 감사할 일이지만, 진정 통합을 추진하는 대통령이라면 그간 잃어버린 겅제성을 호남에 벌충(+α)해주는 것이 옳은 일일 것이다. 그것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정진탄 전남본부장 겸 선임기자 chchtan@gjdrea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