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 박사의 남도 풀꽃나무] (75) 층층마다 꽃, 층층나무
가지 수평으로 퍼지며 여러 층 이뤄

층층나무.
층층나무.

 계절이 바뀌는 길목, 무등산국립공원 평두메습지 가는 길에 눈길을 사로잡는 나무가 있다. 가지가 층층이 벌어져 마치 정성껏 쌓아 올린 탑처럼 보이는 나무, 바로 층층나무다. 연둣빛 새잎 사이사이로 자잘한 흰 꽃 무리가 수줍게 고개를 내민다. 가까이 다가서니 은은한 꽃향기가 코끝을 간질인다. 가지 끝마다 피어난 꽃송이에 꿀벌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가 이내 다음 층으로 느릿하게 날아오른다. 거친 껍질에 손바닥을 대어보면 느릿하게 흐르는 수액의 맥박이 전해져 오는 듯하다. 이러한 순간, 세상의 모든 소란이 스르르 잦아들고 마음속에도 잔잔한 평온이 피어난다. 뜨거운 여름 한복판에도 층층나무 아래에서는 온화한 위로가 그늘처럼 사람을 감싼다.

 ‘층층나무’라는 이름은 나무의 가지가 위로 솟지 않고 수평으로 퍼지며 여러 층을 이루는 생육 형태에서 유래한다. 가지들이 규칙적으로 마디마다 층층이 포개지듯 자라는 모습은 마치 정갈한 계단이나 오래된 탑처럼 보인다. 국어사전에서도 ‘층층(層層)’은 ‘겹겹이’, ‘단계적으로 차곡차곡’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그 시각적 이미지와 나무의 실제 형태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지역에서는 ‘꺼그렁나무’, ‘물깨금나무’라고도 불린다.

층층나무.
층층나무.

 생태적 특징은 층층나무과에 속하는 관속식물이다. 산지의 계곡 주변에서 흔히 자라 키 20m에 달하는 낙엽활엽 큰키나무이다. 수피는 어두운 회갈색이며, 어린 가지는 녹색이거나 적색을 띤다. 잎은 호생하고, 털이 없다. 측맥은 5~8쌍이다. 꽃은 5~6월에 복산방화서에 달린다(복산방화서는 꽃자루가 비슷한 길이로 모여 평면이나 구형으로 꽃이 피는 모양을 나타냄). 열매는 핵과로 8~9월에 흑색으로 익는다. 산록과 골짜기의 비옥하고 토심이 깊은 곳에서 잘 자라나 습지에도 강하다. 내공해성은 약하나 내한성이 강하여 우리나라 어디에도 생육이 가능하고 조경수 또는 정원수로도 심는다. 층층나무도 친척이 있다. 말채나무와 곰의말채나무다. 이들과는 잎과 꽃의 배열 방식으로 구분된다. 층층나무는 말채나무에 비해 측맥이 6~9쌍으로 많고, 곰의말채나무에 비해 잎이 어긋나고 가지 끝에 모여 달린다.

 무등산국립공원은 그런 층층나무들이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숲이다. 그리고 그 남쪽 끄트머리, 제4수원지와 맞닿은 곳에 작은 생명의 그릇인 평두메습지가 있다. 이곳은 도시의 끝자락, 경작지와 주거지가 맞닿는 지점에서 뜻밖의 야생성을 품고 살아가는 곳이다. 멸종위기종과 철새들이 잠시 내려앉고, 봄이면 습지식물들이 꽃잎을 펴 올리는 이곳은, 겹겹이 쌓인 생명의 시간들이 고요히 흐르는 살아 있는 공간이다. 이 습지를 이루는 식생의 상당수는 무등산 숲과 생태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층층나무는 그 사이사이에서 조용한 매개자가 된다.

층층나무.
층층나무.

 하지만 이 소중한 공간은 오랫동안 위협받아왔다. 경작지 개발, 도로 확장, 기후 위기… 너무도 익숙한 위기 앞에서, 많은 자연이 스러졌다. 그러나 이곳은 달랐다. 수많은 시민들과 지역 단체, 그리고 생태학자들이 함께 힘을 모았다. 평두메습지를 지키기 위한 서명운동, 생태조사, 생물다양성 대탐사, 어린이 환경교실과 생태해설사 양성 등, 겹겹이 쌓인 노력과 연대의 시간이 이곳을 다시 되살렸다. 그리고 마침내, 2020년 12월 무등산국립공원내 특별보호구역 지정, 2024년 5월 국제 람사르습지로 지정 및 등록을 마쳤다. 약 9년 만에 이룬 쾌거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자주 층층나무를 떠올렸다. 한 그루의 나무가 겹겹이 가지를 펼치듯,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손길이 차곡차곡 모여 숲과 습지를 지켜낸 것이다. 그렇게 층층나무는 단지 숲의 나무가 아니라, 이 시대의 연대와 생명 존중을 상징하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조용히 서 있지만 누구보다 단단하게, 누구보다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는 나무.

층층나무.
층층나무.

 층층나무를 보노라면, 그 이름은 단순한 ‘형태’를 넘어선 ‘삶의 방식’을 떠오르게 한다. 급하게 위로만 뻗는 대신, 넓게 펼치고 천천히 나아가는 방식. 함께 어우러지며 자라는 방식. 그리고 뿌리 내린 자리에서 묵묵히 사계절을 견디는 방식. 그것은 곧, 우리가 자연과 맺어야 할 관계의 방향이기도 하다.

 오늘도 평두메습지의 입구 어딘가에서 층층나무는 조용히 잎을 흔들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곁을 누군가가 지나가며, 이 나무가 말없이 품고 있는 생명의 시간과 우리가 함께 쌓아야 할 책임의 무게를 문득 느끼게 할지도 모른다.

 나는 믿는다. 한 그루 나무의 구조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손끝이 모여 결국 지구의 생명을 지켜낸다는 것을. 그리고 그 겹겹의 노력 위에, 언젠가 더 많은 야생이 돌아오리라는 것을.

 그래서 이번 주 토요일(2025년 6월 14일), 람사르습지 지정 1주년을 기념하며 평두메습지 걷기대회가 열린다. 층층나무도 볼 겸, 자연의 생명력을 다시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주말 산책을 조심스레 권해본다.

층층나무.
층층나무.

 △참고 문헌

 https://species.nibr.go.kr/index.do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http://www.nature.go.kr/kpni/index.do/ 국가표준식물목록

 김영선

 환경생태학 박사

 광주전남녹색연합 상임대표

 코리아생태연구소 부소장

 부산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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