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곰순의 귀촌일기] (111) 장마 오기 전, 배려와 여유를

곰돌곰순은 한재골로 바람을 쐬러 가다 대치 마을에 매료되었다. 어머님이 다니실 성당이랑 농협, 우체국, 파출소, 마트 등을 발견하고는 2018년 여름 이사했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마당에 작물도 키우고 동네 5일장(3, 8일)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막걸리에 국수 한 그릇으로 웃음꽃을 피우면서 살고 있다. 지나 보내기 아까운 것들을 조금씩 메모하고 사진 찍으며 서로 이야기하다 여러 사람과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 싶어 연재를 하게 되었다. 우리쌀 100% 담양 막걸리, 비교 불가 대치국수가 생각나시면 대치장으로 놀러 오세요 ~ 편집자주.

냥이들이 넘나들 수 없게 담장 위에 울타리를 쳤다.
냥이들이 넘나들 수 없게 담장 위에 울타리를 쳤다.

 담장 위 울타리를 만들다

 동네를 차 운전해서 가거나 밤 산책하다 보면 길가에서 냥이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냥이들이 담벼락을 타고 오르거나, 담장 위를 걷는 걸 보는 게 아주 흔한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지나는 사람들도 거의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가끔 치킨집과 마트 앞에 진을 치고 있는 냥이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어김없이 그 곳 주인들이 가끔 간식을 주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밤 산책할 때, 가끔 간식을 준비하기도 하는데, 그런 날 만나는 냥이들은 곰돌곰순이 자리를 떠난 후에도 계속 따라오곤 합니다. 하지만 진즉에 곰돌곰순은 냥이들이 스스로 알고 찾아오는 거야 막을 수는 없어도, 일부러 유인해서 이끌지는 말자고 합의한 터라, 따라오는 냥이들을 모른 체 하고 돌아옵니다. 따라오던 냥이들도 어느 정도까지 따라오다 스스로 되돌아갑니다.

 그런데 모두가 냥이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서, 냥이들이 이 집 저 집 다니며 밭을 헤집거나 응아를 하거나 짝짓기 소리를 낼 때, 집주인들의 고성이 들리기도 합니다. 가끔 곰돌곰순의 이웃집에서도 들리는데. 곰돌곰순이 마당에서 일하거나 쉬고 있을 때 이웃집에서 그런 소리가 들리면 서로 쉿- 하기도 하고, 고성이 길어질 때는 발소리도 죽여가면서 조용히 방으로 들어옵니다. 집주인이야 꼭 우리보고 하는 소리가 아닐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꼭 우리보고 들으라고 하는 소리일 수도 있기에.

 통제할 수도 없고, 통제되지도 않는 냥이들이지만, 이웃들의 고성이 꼭 우리 때문인 거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할 말이 왜 없을까마는, 정작 할 말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침묵하게 되는 법. 그래도 곰돌곰순은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하자고 합니다. 이웃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 차원에서. 옆집과 사이에 있는 담장 위에 울타리를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그리고 냥이들이 이웃집으로 넘나드는 길목을 아예 원천 차단해야겠다고 생각을 정합니다.

 옆집에서는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자 곰돌곰순이네 집에서는 인동덩굴 옆이라 눈에 바로 뜨이는 곳. 위치가 위치이다 보니 아무래도 다른 곳 작업을 할 때보다 신경이 더 쓰이겠지요. 며칠 동안 궁리 끝에, 담장 위 밑판은 방부목으로 고정하고, 그 위로 기둥들을 세운 후 각재로 위 아래 가로로 연결한 후, 대나무 울타리를 두르기로 합니다.

 재료들을 하나씩 준비하고 인터넷으로 주문한 대나무 울타리가 도착하는 대로 작업을 시작합니다. 다 끝내고 보니 오른쪽 여유 공간까지 막아야 될 거 같아 이후 보강작업. 끝내고 보니, 보기에 좋습니다.

네 칸은 냥이들 거처, 한 칸은 다용도로 만든 선반
네 칸은 냥이들 거처, 한 칸은 다용도로 만든 선반

 냥이들의 거처, 선반을 만들다

 집 왼쪽 장작을 모아놓은 곳이 있는데, 그 옆으로 뒤안문까지 비어 있는 공간입니다. 귀촌 이후 그동안 이곳을 여러 방법으로 사용해 보았습니다. 버리기 아까운 커다란 옷걸이를 중심으로 구조물을 만들기도 했고, 철제 선반을 놓기도 했는데, 모두 시간이 지나면 철거했습니다. 효율성이 떨어지기도 했고, 녹이 스는 걸 막을 수가 없어서.

 1년여 동안 비어 있는 공간을 지켜보면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구상해도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곳은 동향이라 비와 눈이 내릴 때 바람이 불지 않으면 젖지 않은 곳이자 해가 돌아가는 정오 무렵이면 그늘이 져서 자연스레 냥이들의 쉼터가 되기도 하는 곳. 결정적으로 이번에 깻잎이와 까망이가 낳은 새끼들이 장작더미 사이를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 샘 주변에서 지내니, 아무래도 좀더 적극적으로 구상하기로 합니다.

 목재로 두 층 선반을 만들되 한쪽은 한 층으로 가스통과 소금통을 놓는 다용도실로 만들고, 다른 쪽은 두 층 선반으로 만들어 냥이들이 거처할 수 있는 냥이들 공간으로 꾸미기. 지붕은 냥이들이 높은 곳에 올라 쉬거나 구경하는 걸 좋아하니, 장판으로 깔고 필요할 때마다 종이상자나 방석을 놓기로 합니다.

 쉬는 날 오랫동안 구상했던 일을 실행합니다. 굵은 각재도 사고, 바닥에 쓸 방부목도 사고, 정자에 쓰고 남은 장판도 준비하고, 절단기도 창고에서 빼서 전기 연결하고, 그 외 여러 가지 밑작업을 합니다.

 먼저, 치수를 재서 각재를 잘라 네 개 틀 만들기. 각각을 2층 지붕으로 연결해서 고정하기. 수평기를 이용해 수평 맞추면서 1층 바닥 연결하기. 이어서 2층 바닥도 연결하고. 마지막으로 지붕, 2층 바닥, 1층 바닥에 장판을 깔면서 처마 역할도 할 수 있게 끝을 바깥으로 좀 내밀어서 고정하기.

 다 끝내고 보니 보기에 좋습니다. 물건들을 하나씩 집어 넣어보니 안성맞춤. 작업 도구들을 하나씩 정리한 후 선반을 살펴보는데, 그 사이에 냥이들이 자기 집인 줄 어찌 알고 상자를 하나씩 차지하고 들어앉았습니다. 측면에서, 사선에서, 정면에서 선반을 살펴보는데도 곰돌이 움직이는 걸 따라 보기만 하고, 쉽사리 상자에서 나오지를 않습니다. 하기야, 작업하는 내내 숨거나 따라다니면서 곰돌이 작업하는 걸 지켜보았으니, 어떤 용도인지 알아냈겠지요. 냥이들이 마음에 들어 하는 거 같아 다행입니다.

풀매기를 하는 중인 밭(아래)과 다 끝난 밭(위).
풀매기를 하는 중인 밭(아래)과 다 끝난 밭(위).

 여름 채소를 위해 밭을 정리하다

 새끼냥이들이 서서히 토방에서 벗어나 마당 여기저기를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집 왼쪽 장작더미와 샘 주변에서 지내던 새끼들도 앞마당으로 진출하기 시작합니다. 5월까지 화려함을 뽐내던 팬지, 장미, 클레마티스 꽃들이 지기 시작하고, 그 자리를 연분홍, 노랑의 낮달맞이꽃과 붉은 당아욱꽃들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팬지는 질 때가 되면 줄기들이 훌쩍 자라 옆으로 누운 상태로 계속 꽃을 매달고 있습니다. 줄기가 길지 않을 때는 보기 좋아도, 시간이 지날수록 보기가 좀 애매합니다.

 애매하다는 건, 꽃이 시든 건 아니어서 꽃만 보고 싶으면 계속 놔두어도 되는데, 줄기가 이미 한창 웃자라 옆으로 기어가는 터라, 꽃을 보고 싶어 그냥 놔두고 싶은 마음도 있고, 뽑아서 정리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면서 시기를 가늠하다 보면, 텃밭의 풀을 매야 하는데, 언제 하지? 팬지꽃이 있으니 좀만 더 있다 팬지랑 함께 하지 뭐, 하게 됩니다. 거기에 마당과 텃밭의 잎 그늘 밑에서 숨어 쉬는 냥이들을 생각해서 좀 더 늦게 하지 뭐, 하게 되고, 새끼냥이들까지 마당과 텃밭 여기저기에서 뛰고, 숨고, 구르며 노는 걸 보면, 자꾸 시기가 늦춰지게 됩니다. 그 사이 이미 텃밭은 채소반, 풀반이 됩니다.

 어느 날 오전 커피를 내려 토방에 앉아 마시며 마당을 보고 있노라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지나갑니다. 밭의 풀이 저렇게 자라고 번지는데, 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걸까? 4월부터 거의 손을 대지 않는 날이 없고, 쉬는 날이면 구상했던 일들을 하나씩 하느라 종일 일했는데, 왜 유독 밭은 손을 대지 않았을까? 게으름인가? 좀 쉬라는 건가? 냥이들에 대한 배려인가? 아니, 여전히 자신의 형형색색 꽃 피우기를 멈추지 않는 팬지에 대한 고마움인가?

 여러 이유 중 팬지에 대한 고마움이 가장 크지 않을까. 그래서 이렇게 우리 나름의 배려를 팬지에게 하고 있는 거고. 화려함과 크기가 줄어들었을 뿐 계절의 변화에 따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마땅히 그러할 뿐인 팬지. 그러니 곰돌곰순도 그 팬지의 마음을 헤아려 지금까지 오가며 늘 팬지에게 고마워했던 거겠지요. 우리 또한 마땅히 그러해야 하니, 그러한 배려 또한 마땅히 보여야 한다고.

 커피를 다 마신 후, 마음을 정합니다. 그 마음을 알았으니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해집니다. 장갑과 호미를 찾으러 가는 길에 텃밭과 주변에 피어 있는 팬지를 한 번 더 둘러보며 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를 합니다.

 팬지를 걷어내니 황토흙이 제 색깔을 드러냅니다. 개미집을 발견하고는 땅을 갈아엎으려 삽을 넣어보는데, 5센티미터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아, 이 정도로 땅이 말랐었구나.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었는데도 이렇게 마르다니. 텃밭 전체에 삽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앉은걸음으로 옮겨 다니면서 호미로 찍고, 파고, 긁어내면서 조금씩 일하다 보니 텃밭 두 개를 끝냈습니다.

 잠깐, 휴식 겸해서 커피를 한 잔 더 내려 마시고는 다시 작업을 합니다. 내친 김이라 일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점점 끝이 보입니다. 오전이라 해도 해는 뜨겁고, 숨은 차고, 허리는 땡기고, 다리는 점점 아파 오는데, 그럴 때는 마저 끝내고 쉬자 하지요. 그렇게 끝내고 나면 무언가 모를 시원함이 가슴 한편을 스쳐 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땀으로 범벅이 되었는데도 일을 끝낸 텃밭을 보는 것도 좋고, 부는 바람도 좋아서, 토방 의자에 앉아 남은 커피를 마십니다.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얼른 들어가서 씻어야지 하는 마음보다 정자 그늘에서 잠깐 쉬었다 들어가자 하는 마음이 더 커집니다.

 그새 따라온 냥이들에게 작업복 호주머니에 있는 간식을 꺼내주는데, 다 먹고도 떠나지를 않습니다. 머리와 배를 쓰다듬으며 이제 없다고 해도, 아예 정자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눕거나, 앉아 쉬네요. 그렇지요. 만족할 줄 모르게 보이는 냥이들, 늘 집사들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냥이들. 그래서 냥이들을 가리켜 ‘뮤즈’라고 하는 거지요.

 일을 끝낸 개운함도 있지만, 자신의 일에 충실함을 보인 팬지와 풀에 대한 고마움도, 냥이들에 대한 고마움도, 그리고 곰돌곰순이 이 모든 걸 겪고 생각할 수 있음에 대한 고마움까지. 바람결에 땀을 식히며 나와 주변을 돌아보는 잠깐의 시간, 감사하게도, 이런 걸 여유라 하나 봅니다.

 곰돌 백청일(논술학원장), 곰순 오숙희(전북과학대학교 간호학과교수)

[드림 콕!]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드림투데이(옛 광주드림)를 구독하세요

저작권자 © 드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