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방 우리책들] 개의 설계사(2023 아작)
챗 GPT와 각종 편의를 위한 AI가 범람하는 시대다. 우리는 인공지능을 편안한 삶을 위해 사용하면서도 인공지능이 우리를 넘어설까 두려워한다. 편리한 기능을 위해서라면 인공지능이 인간과 가장 흡사해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므로, 우리는 윤리적 문제가 없는 인간 노예를 바라는 것이다. 만들어진 영혼은 타고난 영혼과는 다른 가치를 지닌다고 여겨지니 말이다.
하지만 과연 인간의 영혼은 언제나 옳고 고결할까? 윤리적 문제가 없고 존재만으로도 정당할까? 단요 작가의 장편소설 ‘개의 설계사’(2023, 아작)는 이러한 질문을 정면으로, 노골적으로 돌파한다.
인공지능 설계사인 주인공 ‘도하’의 세계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호의 넘치는 세계와 다르다. 그는 무언가 파괴되고, 찢어지고, 고통받는 세계를 상상한다. 충동적으로 죽음과 고통을 따른다. 어렸을 적 이 사실을 알게 된 도하의 동생이 그를 평생 단속하며 살아가는데, 기분을 멍하게 만드는 약을 먹으면서 얌전히 살아가는 도하는 동생과의 관계를 자기 삶의 가장 중요한 역학으로 여긴다. 복종하고 또 단속하는 역학 안에서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쾌감을 얻는 법을 알아낸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도하의 인공지능 설계사무소에 ‘릴리’라는 연예인이 나타난다. 그는 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다. 어렸을 적부터 미디어에 노출된, 가장 완벽한 존재인 릴리. 모두가 그를 사랑하고 또 너무 사랑해서 그를 괴롭힌다. 도하는 이러한 삶을 살고 있는 릴리에게 관심이 생긴다. 릴리는 부모와의 소송에서 사용할 법적 지식을 가진 인공지능을 요구했지만 도하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공지능을 만들어주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도하는 릴리에게 ‘개’를 만들어준다.
개의 설계사라는 제목은 여기에서 나왔다. 하지만 제목에도 들어가고 등장인물로도 나타나는 ‘개’가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그저 단순한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 반려동물로서의 개만은 아니다. 인간이 설계하여 만들고, 영혼을 수정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로서의 개를 말한다. 릴리를 붙잡아두고 고통스럽게 하는 ‘백해나’라는 존재를 개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할 때, 어째선지 주인공 도하는 즐거워 보인다.
“백해나한테 직접 따져보는 건 어때?”
“아뇨, 그러고 싶진 않아요. 속 시원하게 짜증을 내고 싶을 때도 많지만 뭔가가 계속, 마음이 소리로 변하려는 걸 가로막아요. 왜 솔직해질 수가 없는지, 사실은 백해나를 걱정하고 있는 건지 항상 고민하게 돼요. 불평을 잔뜩 늘어놓긴 했어도 백해나도 불쌍한 사람은 맞으니까요. 그리고 전 이미 제 삶을 넘겨주기로 약속했으니까요. 이 불편함이 양심인지 연민인지 책임감인지는 모르겠어요.”
“좋아, 그건 설정값이야. 그러니까 이름은 마음대로 붙여도 돼.”
나는 질문이 이어지기 전에 서둘러 개의 전원을 껐고, 통신망 접속에 간섭을 일으킨 상태로 기기를 워크스테이션에 연결했다. 많은 수정을 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개의 설계사’ 중에서.
그리고 개는 ‘솔직해진다’. 개의 솔직함은 너무도 날카롭고 아파서, 불안정한 삶을 살던 백해나가 결국 죽음을 택하게 될 정도다. 그렇다면 이것은 개가 솔직해지도록 한 도하의 잘못인가, 솔직해지는 선택지를 가짐으로서 조금 더 인간적이 된 개의 잘못인가, 혹은 개가 지금껏 솔직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를 다정하기만 한 노예로 생각해온 백해나의 잘못인가?
단요 작가는 개의 설계사 끝부분에 길고 긴 에세이를 덧붙였다. 언어모델로서의 AI와 인공지능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이 에세이야말로 ‘개의 설계사’가 제시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영혼은 언제나 고결한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인간의 영혼을 본따 만든 AI 또한 언제나 고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고결하다는 것은 항상 윤리적이지 않으며, 우리는 인공지능이라는 개념 자체가 얼마나 비윤리적인지,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의 영혼을 수정하거나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떠올려보아야 한다. ‘개의 설계사’는 이러한 폭력성을 “폭력성을 제어하며 살아가는 인간”을 통해 설명한다. 보편적인 기준으로 선하거나 옳다고 여겨지지 않을 인간을 통해서 말이다. 인간의 영혼은 언제나 고결하지 않다. 그것이 인간이고, 우리는 그렇기에, 고결함과 윤리에 대해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문의 062-954-9420
호수(동네책방 ‘숨’ 책방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