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22나 F-35처럼 전투기의 스텔스 성능이 발달한 요즘도 치열한 전장터인 중동, 이스라엘 등 세계의 하늘을 지배하는 주력 전투기는 여전히 황금독수리 F-15 이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중우세 전투기로 여러 대 운용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자체 생산한 T-50 초음속 고등 훈련기도 ‘골든이글’이라는 멋진 명칭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대개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것들에 흔히 이 골든이글이란 명칭을 붙인다. 절대로 빼앗기지 않아야 했던 로마군의 군기 Aquila(아퀼라) 또한 골든이글의 라틴어명이다. 신성로마제국과 프로이센 그리고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상징 또한 이 검독수리였고 그들을 독수리군단이라 부르기도 했다. 가끔은 머리가 두 개인 검독수리 문양도 있었고 혀를 날름거리는 문양도 쓰이기도 했지만, 그들 모두는 지금까지 하늘의 제왕이라 불리는 검독수리의 표상이다.
특히 검독수리는 한때 세계를 제패해 ‘팍스 몽골리카’를 이룩한 몽골의 혼 또는 상징이라 부른다. 그리고 지금도 몽골이나 카자흐, 키르기스스탄에선 여전히 검독수리를 이용한 여우나 토끼 그리고 늑대 사냥 등을 실제로 하고 있다. 독수리 사냥은 예전엔 취미이자 생계 수단이었지만 요즘은 관광 자원으로 잘 활용하기도 한다.
독수리라 하면 가끔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앞에 아무 수식어도 없는 독수리는 벌처vulture라 부르고 주로 스캐빈저scavenger 즉 주로 죽은 동물을 먹는 사체 청소부들이다. 하지만 그 앞에 한 자라도 수식어가 붙으면 그야말로 랩터 즉 맹금류라 부르는 무시무시한 사냥새가 된다. 검독수리, 흰꼬리수리, 항라머리검독수리, 참수리 등이 그들이다. 그들은 진정한 하늘의 파이터들이고 이들의 위용은 경찰이나 군대 그리고 각종 군용 무기들의 이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시다시피 새는 공룡의 후예이다. 공룡은 멸종당하지 않고 이 새들도 살아남았다. 그중에 벨로시랩터나 티라노 같은 육식 공룡들은 아마도 이 독수리들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추정해 본다. 티라노의 윤곽이나 눈매 같은 것들이 딱 이들과 비슷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검독수리는 일부일처제로 평생 다정하게 해로하고 산다. 육아도 당연히 평생 함께한다. 워낙 험준한 절벽 끝에 둥지를 만들기 때문에 스스로가 아니라면 그들을 해칠 만한 천적이 없다. 이들은 여우나 늑대도 사냥하지만, 그들보다 10배나 무거운 산양들도 사냥한다. 그런 엄청난 덩치를 사냥할 때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갑자기 기습공격해서 절벽에서 떨어트리는 방법을 택한다. 매우 끔찍하지만, 사냥꾼의 위치에선 아주 영리한 방식임은 틀림없다.
검독수리가 낮게 날면 하늘이 까매진다. 그들은 5kg 넘는 몸무게와 2m가 넘는 날개길이를 자랑한다. 마치 하늘 위에 소리 없는 전투기가 떠가는 듯 미동도 없이 활공 또는 선회하다가 사냥감을 발견하면 시속 300km 넘는 속도로 내리꽂힌다. 그 힘은 사람의 뼈도 부러트릴 수 있을 만큼 가공하다. 초기의 사람들은 그렇게 거대하고 강한 그들을 보고 어찌 외경을 품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비행기가 없던 시절에 그들은 절대적인 경외의 대상이었고 하늘에 사는 신의 대리인쯤으로 보였을 것이다. 인간의 결코 정복할 수 없는 것들을 적 혹은 신으로 삼아 받들어 왔다.
하지만 그들의 능력을 일부 흉내낼 수 있게 되자, 그 동물들은 신의 지위에서 다시 밑바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토록 동경하던 그들을 오히려 적대시까지 했다. 그래서 지금의 맹금류는 대부분 멸종위기에 몰려 있다. 현대에 와서야 이 동경과 미움 가운데 과학이 끼어들어 그들을 ‘자연의 균형자’라는 생태 지위를 부여하고 최소한의 보호를 받게 하고 있다. 역사는 돌고 돈다지만 다시는 대상을 마음대로 들었다 놨다 하는 야만의 시절은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검독수리를 보면서 한때 세상을 호령했지만 한순간에 거리의 청소부로 전락한 한 왕의 독백 노래가 떠오른다. Viva la Vida!
최종욱 (수의사)
▲검독수리 (golden eagle, 금수리, 검둥수리, 검수리)
- 학명 : Aquila chrysaetos
- 분류 : 척삭동물 > 조강 > 매목 > 수리과 > 검독수리(8아종에서 현재 6아종 존재)
- 크기 : 평균 날개길이 57~63cm, 꽁지길이 31~35cm, 몸무게 약 4.4kg, 몸길이는 수컷이 81cm, 암컷이 89cm로 다른 맹금류처럼 암컷이 더 큼
- 식성 : 먹이는 소형 포유류, 조류, 파충류 등 다양. 약 400종의 넘는 것으로 알려짐
- 수명 : 평균 20~30년(최대 40년)
- 서식지 : 한국을 비롯하여 아시아·유럽·미국 등지에 분포한다.
- 번식 : 둥지는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산지 낭떠러지 바위틈에 굵은 마른 나무가지를 모와 만 들고 봄에 2개의 흰색 알을 낳음. 45일 후 부화
- 천적 : 새끼는 파충류 맹금류 등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성체는 천적이 거의 없음
- 멸종위기등급 : 관심대상(LC : Least Concern, 출처 : IUCN), 한국에서 천연기념물 243-2호,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 보호받고 있음
